회사에서 가까운 거리에 미슐랭 원스타, 별 하나짜리 식당이 있다. 남들 다 아는 거 아는 척. 미슐랭 원스타는 우연히 지나면 들를 만한 곳, 투스타는 살짝 돌아가더라도 가볼만한 곳, 쓰리스타는 일부러라도 찾아가야 할 곳이라는 뜻이란다. 회사 근처 식당은 원스타지만 우연히 들르기엔 대기 줄이 길다. 작심하고 찾아가야 한다. 국민학교 때 배운 것처럼 겉보기 등급보다 절대 등급이 높은 별, 아니 식당이다. 이런 거 요즘 초딩 친구들도 배우나?
문득 작심하고 찾아간다. 역시나 가게 앞 대기 만원. 명부에 이름을 쓰고 기다린다. 우리 앞 팀이 하나 둘 서이 너이.. 페이지를 넘겨야 할 정도다. 회전율 빠른 것에 기대를 걸어본다. 기다려서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만 다른 데 찾아가기도 성가시다. 가봐야 어차피 또 줄 서야 한다. 잠자코 기다린다.
여기 식당은 순서가 되면 이름을 불러준다. 굳이 발 동동 굴러가며 길게 줄 설 필요가 없다. 식당 앞 통행로에 점점이 있다가 입장하면 된다. 워낙 사람이 많다. 문에서 먼 데 서서 기다린다. 이름 부르면 얼른 들어가려고 귓바퀴를 식당 쪽으로 향한다.
일행과 수다 중인데 옆통수가 뜨겁다. 뭐지 이 느낌은. 누가 나한테 눈빛으로 레이저 광선이라도 쏘고 있는 건가. 고개를 쓱 돌리다 화들짝 놀란다. 미슐랭 식당 옆 가게 쪽에서 날아온 광선이다. 가게 앞에 고기며 생선을 굽는 외부 조리대가 있다. 오너 일가로 보이는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고기를 굽고 계신다. 한데 눈빛이 살벌하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동자가 엄청난 살기를 내뿜는다. 눈썹은 자동차 와이퍼마냥 바짝 솟았다. 뭐지? 왜지? 우리가 뭐 잘못했나? 급기야 마스크 안에서 뭐라 웅얼거린다. 손가락 끝으로 우리를 찔렀다가 미슐랭 식당 방향으로 휘휘 긋는다.
무심결에 바닥을 본다. 보도블록 위에 덕테이프가 조악하게 붙었다. 시선을 직선의 시작점으로 좇는다. 미슐랭 식당과 옆 가게 경계에 이른다. 아, 구획의 표시구나. 아주머니 몸짓을 비로소 접수한다. 나와 일행이 서있는 자리가 자기네 땅이니 비키라는 뜻이다. 그 식당에서 먹을 거면 그 집 앞 땅에서 기다리라는 말이다. 저쪽으로 넘어가란 얘긴가 봐, 일행을 이끌어 미슐랭 식당 쪽으로 이동한다. 되게 빡빡하게 구시네, 볼멘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가만 보니 그 식당에는 대기 인원이 없다.
나중에 온 한두 팀이 우리가 비운 위치에 섰다. 저기 있으면 레이저 맞을 텐데, 하는 찰나. “아니, 거 XX 남의 집 앞으로 자꾸 넘어오고, 아주 내가 확 그냥 O#$%*@&!!!!!!” 욕지거리 융단 폭격이다! 어느새 외부 조리대를 보는 사람이 바뀌었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아마, 방금 전 아주머니 부군일 듯싶었다. 뜻밖의 봉변을 당한 이들이 부랴부랴 국경을 넘어온다. 저러다 큰 싸움 난대도 하나 이상할 게 없었다.
다른 글에서 밝혔지만 난 장사의 지읒도 모른다. 일생을 월급쟁이로 비교적 편하게 밥 벌었다. 직장인의 고충도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이 시국 자영업 하는 분들의 고통에 비할 바 아님을 잘 안다. 그런 나여도 저건 아니지 싶었다.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왜 장사를 저렇게 하실까. 심술궂다 못해 포악하게. 물론 장사 잘 되는 옆 가게, 샘나는 주인장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오죽하면 바닥에 선을 그렸을까. ‘이 선 넘어오면 다 내꺼!’ 옛날 초등학교 짝꿍도 아닌 것이.
아주머니 아저씨는 이치에 맞지 않았다. 내 땅이라고, 넘어오지 말라고 위협할 것이 아니라 좋은 말로 구슬렸어야 옳다. 한두 번 해봤겠냐고? 아무리 그렇대도 그건 아니다. 애먼 사람들에게 욕지거리라니, 가당치도 않다. 그런 마음으로 만드는 음식이 맛있을 리 만무하다. 굳이 따지자면 식당 앞은 공도다. 그 집 주인장 땅도 아니다. 차라리 미슐랭 식당과 더 확실하게 담판을 지었어야 한다. 거기서 알아서 손님들 통제하라고. 의사 표시를 해도 그쪽에 하는 것이 맞다.
그것보다 심각한 것은 잠재적 고객을 영영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미슐랭 식당 대기 손님들이 다 저쪽 몫인 것 같지만 다음에는 내 손님이 될 수도 있다. 욕하고 쫓아버릴 것이 아니라 시식이라도 맛 보였어야 한다. 시장한 점심시간, 공짜로 먹을 것 주겠다는데 어느 누가 마다할쏘냐. 오, 먹어보니 맛있네, 다음엔 우리 여기도 와서 먹어봅시다, 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어쩌면 미슐랭이고 뭐고 밥 한 끼 먹는 게 뭐 이리 힘드냐, 우리 이러지 말고 그냥 여기 들어갑시다, 맛도 좋네, 할 손님도 분명 있을 수 있다. 그리하여 아주머니 아저씨가 했어야 할 언행은 “손님들, 여기 서계시면 저희 손님이 들어오는 데 방해가 돼요. 미안하지만 조금씩만 그쪽으로 이동해주실까요. 그리고 이것도 좀 맛보세요. 저희 집 점심 메뉴인데 맛도 좋고 양도 푸짐해요. 다음에는 저희 집도 꼭 와서 드셔 보세요. 예, 예, 여기 더 있어요. 고마워요.”
남의 장기판에 훈수 둔다. 제 눈에 들보는 못 보는 법이다. 미슐랭 식당 밥 한 번 먹겠다며 기다리면서 별 상념을 품는다. 그 덕에 새삼스럽게 또 깨닫는다. 전화위복은 공짜로 일어나지 않는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전향적으로 상황을 인식하라. 그러려면 지혜와 인내가 필요하다. 심술궂은 주인장 식당에서 풍기는 고기 굽는 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먹어보면 제법 맛도 있을 듯도 하다. 아주머니 아저씨, 저도 오죽 안타까우면 이러겠어요. 자꾸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미슐랭이 별거예요? 음식 맛있고 서비스 친절하면 다 맛집이죠. 제가 인심 한 번 씁니다, 그래요, 조만간 한 번 가서 먹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