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 가수 변진섭이 부른 희대의 히트곡 「희망사항」의 가사다. 나도 무척 좋아했었다. 그 시절엔 어떻게 저런 노랫말이 가능했는지. 그 정도가 아니라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요즘 같아선 “젠더 감수성 어쩔!” 마땅히 핀잔을 살 만하다. 시대정신의 변천사를 체감한다.
난 그런 편집이 좋더라. 오늘은 본업과 관계있는 이야기를 해보겠다.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무척 좋아한다. 기본적인 애정이 있으나 아무것에나 마음을 주진 않는다. 나름대로 기준을 둔다. 편집의 품질에 따라 어떤 프로그램은 보다가도 리모컨을 집어 든다. 또 어떤 프로그램은 충성적인 애시청자를 자처한다.
그러면 어떤 편집을 싫어하는지 예를 들겠다. 아래는 오래전 어느 정치인이 시사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화제가 된 장면이다. 실제 방송화면에는 아래 자막만 있었다. 인물 주변의 컴퓨터 그래픽(이하 CG)은 나중에 인터넷 밈으로 돌아다니며 보태진 것이다. 사례로 들어보기 위해 빌려 쓴다. 지금 온에어 중인 프로그램 중에도 이것과 비슷한 편집 스타일인 것이 없지 않다.
편집의 과유불급
이런 편집은 한 마디로 후지다. 사족에 과유불급이다. 화면 하단 자막만 있어도 된다. 그것만으로도 편집자, 연출자의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인물 주변의 형광등 CG는 지나치고 촌스럽다. 시청자의 흥미를 일깨우지 못한다. TV는 당연히 시각적 매체이지만 보여주는 게 능사가 아니다. 독자가 아닌 시청자에게도 상상의 여지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편집 스타일은 너무 뻔하다. 심지어 이런 패턴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있다. 출연자 사이 대화 중 나온 비유를 다음 장면에서 굳이 CG로 재현한다. 보는 사람은 지겹다.
가까운 예도 살펴본다. 유명 배우들이 환경 보호를 주제로 캠핑 여행을 다니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래 장면을 보면 맥이 턱 풀린다. 출연자가 별것 없이 아침에 일어나서 씻는 상황이다. 방송 분량의 압박 때문이었을까. 굳이 다른 프로그램의 ‘타이틀 로고’를 CG로 끼워 넣는다. 같은 패턴은 얼마 못가 다시 등장한다. 이번에는 혼자 산책 중인 출연자가 멀리서 일행을 부르는 장면이다. 비슷하게 자사 교양 프로그램을 패러디한다. 문제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점이다. 맥락이 없고 불필요한 꾸밈이다. 보는 사람은 ‘굳이 왜?’라는 의문만 남는다. 의문을 품는 시청자는 차라리 고맙다. 대부분은 재미없네, 직관적 판단을 뒤로하고 채널을 돌린다. 시청률 그래프가 곤두박질치는 순간이다.
'굳이 왜' 편집의 예
최근에 이거다 싶은 방송을 보았다. 유명인들이 가면을 쓰고 나와서 노래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요새 방송에 자주 나오는 외국인 조나단이 출연했다. 중간에 진행자가 내는 문제를 푼다. 이날 문제는 해당 프로그램의 포맷이 팔린 나라들을 맞히라는 것이었다. 조나단이 진행자에게 자기가 적은 나라도 정답 중에 있느냐 묻는다. 진행자 왈 “없습니다!” 다음 컷에서 크게 실망하는 조나단이 나오는데 CG로 교복을 입혔다. 배경음악(이하 BGM)으로는 타 방송사의 학생 퀴즈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이 흐른다. 교복 CG에는 번호표를 붙인 모자, 앞섶에는 여러 개 명찰도 그려 넣었다. 깨알 같은 디테일이다. 퀴즈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알 만한 요소들을 간결하고 적확하게 표현했다. 분량은 불과 2초에 불과하다. 그 짧은 시간이 시청자를 파안대소하게 만든다. CG로 가공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그렇게 넘겼을 장면이다.
결정적 2초
폭소는 무엇 때문에 가능했을까. 전지적 편집자, 연출자 시점에서 얘기한다. 일단 앞선 여행 예능 프로그램처럼 쓸데없이 굳이 애쓴 흔적이 아니다. 필요 없거나 억지스럽지 않다. 그냥 넘어갔어도 매끄러웠을 장면과 그렇게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연출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재미의 발견이고 후자는 억지 강요다. 겨우 2초에 바친 열정이 평범과 비범을 갈랐다.
PD는 이 장면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희극적 요소를 제대로 갖추었기 때문이리라. 통상적 액션, 비통상적 리액션의 구조다. 웃음은 뜻밖의 반전에서 온다. 반전을 위해 차곡차곡 '빌드업'을 쌓는다. 코미디의 원전, 슬랩스틱도 이런 흐름을 따른다. 잘 걷다가 어처구니없이 자빠지는 코미디언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영화에도 나온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 존스 박사 앞에 아랍인 악당이 큼지막한 칼을 휘두른다. 장시간 진지하게. 가만히 지켜보던 존스 박사가 심드렁하게 권총을 꺼내 ‘빵’하고 쏜다. 말하자면 조나단이 아랍인 악당 역할이다. 기대를 품고 조심스럽게 또 천진난만하게 진행자에게 묻는다. 그보다 앞서 정답을 맞히는 이들을 열거한다. 진행자가 여러 나라를 랩하듯 말하는 장면도 정성스런 빌드업이다. 마침내 진행자가 “No!” 짧게 답한다. 상황 자체가 웃긴다.
희극의 기본 구조
재미를 극대화하기로 한다. 단, 직유법이 아니라 은유법을 쓴다. 앞에서 본 대담 프로그램처럼 자막으로 직접 드러내거나 중언부언 무의미한 CG까지 동원하지 않는다. BGM과 CG로 끝낸다. PD는 정답을 맞히려 애쓰는 조나단의 천진한 모습, 순수한 평소 이미지에서 교복 입은 학생을 연상해낸다. 그거다, 퀴즈 프로그램이다. ‘띵딩딩딩딩~’ 퀴즈 프로그램 시그널 음악의 활용은 대단히 극적이고 감각적이다. 음악 하나만으로 비유를 단번에 이해하게 한다. 교복 CG의 디테일이 완성도를 끝까지 올렸다. 무엇보다 과하지 않은 짧은 분량, 임팩트 있게 치고 빠지는 완급 조절에서 연출자의 내공이 엿보인다. 고수는 어깨에 잔뜩 힘주지 않는 법이다.
또 한 수 배운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내가 속한 일터에서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고수의 손에서 탄생한 것들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소비자는 현명하다. 허투루 만든 물건에 함부로 돈 쓰지 않는다. 시청자도 다르지 않다. 함량 미달인 방송 프로그램 보는 데 아까운 시간 쓰지 않는다.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다던가. 단 몇 초만으로 보는 이에게 신선하고 유쾌한 충격을 제공하는 것, 난 그런 콘텐츠가 좋더라. 볼 만한 프로그램이 내가 속한 일터에서 더 많아지는 것, 그게 나의 이 시대 ‘희망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