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만우절

by Hoon

23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99년 4월 1일 입대했었습니다. 만우절이죠. 세기말로 달려가는 98년 연말, 밖에서 한참 쏘다니고 있는데 모친에게서 전화가 들어옵니다. 아들 영장 나왔다. 날짜가 언제냐 물었습니다. 이듬해 4월 1일이라더군요. 만우절. 거짓말 같은,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 입대 날짜가 잡혔습니다.


고교 동창 두 녀석과 군 입대 길을 동행했습니다. 광석이 형님의 노래 가사처럼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아니 저는 평범한 아파트 현관문을 나섰겠네요, 나서는데 뒤늦게 눈물이 울컥 올라왔습니다. 절하며 고개 땅으로 묻을 때 겨우 참았거든요. 노랫말처럼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훈련소 앞에서 친구 녀석들과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뿜었습니다. 나 들어간다.


입대 첫날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어리둥절한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군필자분들은 다 아시죠? 둘째 날이 더 진짜인 거. 훈련소 내무반에서 기상나팔 소리에 잠을 깨는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집인지 어딘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보급품을 지급받고 처음 얼룩무늬 군복을 입었습니다. 운동장, 아니 연병장에 줄지어 섰는데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말 그대로 암담했습니다. 내 청춘이, 아니 내 인생이 기어이 발목을 잡히는구나. 2년 2개월(저 때는 군 복무 기간이 그랬습니다. 지금은 18개월이라던가요.)을 여기서 어떻게 버티나. 2001년 5월 31일. 그날이 오긴 오는 건가. 절망도 그런 절망이 없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가더군요.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놔도 간다잖아요. 육군 제32사단 신병교육대 2중대 3소대 33번 훈련병 Hoon이 자대 배치를 받아 이등병, 일등병, 상병을 지나 병장이 됐습니다. 웬걸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말년 병장을 보내고 마침내 전역. 대학에 복학해서 취업 준비생 기간을 거치더니 어찌어찌 취직. 그러다 남의 집 귀한 여식을 꼬여내 장가를 들고 애가 애를 낳는다고 감당도 못할 아비가 됐습니다. 여식을 하나 낳았는데 그 아이가 내년이면 중학교엘 가고요. 시간이 쏘아놓은 살 같습니다. 참말로요.


스물몇 살 까까머리 군인 신분일 때는 전역만 하면, 제대만 하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깃털처럼 가뿐한 몸이었고, 체력도 좋았습니다. 장래에 무엇이든 좋아하는 맞춤한 일을 찾아서 건강한 일상을 살 것으로 믿었습니다. 주위에 친한, 가까운, 마음을 부빌 수 있는 좋은 벗, 친구, 형, 누나, 동생도 많았습니다. 지난하고 고된 군 생활 동안 그들과 빈번히 편지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큰 위안을 주었습니다.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제가 누리고 싶었던 장래의 일상에 얼마나 가깝게 와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눈에서 멀어져 자연스레 그렇게 된 이도 있고, 마음에서 멀어져 보지 않게 된 이들도 있습니다. 내가 지나쳐 온 사람도 있겠고 나를 지나쳐서 멀리 가버린 사람도 많습니다. 일전에 서너 살 위 선배랑 비슷한 푸념을 맞대는데 그분이 그러더군요. 나이 먹는 게, 사람 사이에 바위섬이 돼가는 것을 배우고 겪는 일 같다. 어느덧 우리가 그런 나이에 가깝다. 그 말이 사무쳤습니다.


2년 2개월이 까마득했는데 22년도 더 훌쩍 지났습니다. 그때의 저 자신이, 그 시절 제가 보낸 날들이 떠올라서 하잘 것 없는 삶을 돌아봅니다. 저에게 4월 1일, 만우절은 23년 전, 22세 청년의 군 입대가 떠오르는 날입니다. 그가 보내온 삶을 반추하는 계기이기도 하고요. 익살스러운 장난과는 다른 감정이 침습하는 하루입니다.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고,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자꾸만 어두운 생각이 사고의 수면 위로 오릅니다.


더 어둑한 마음이 되기 전에 그 끄트머리를 움켜잡습니다. 조그만 체구로 힘든 군 생활 몸성히 마친 것, 대학 나오고 취직하고 장가 들어서 이만치 사는 것만도 대견하다. 그것도 쉬운 확률의 도전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스로 머리 쓰다듬어 봅니다. 제 인생에 앞으로 4월 1일, 만우절이 몇 번 더 남았을지 모르겠지만 모쪼록 그때마다 조금씩이라도 어른으로 영글어 지난 삶을 돌아보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따위는 그렇게 내버려 두시고요, 여러분 모두는 오늘 유쾌한 농담으로 기분 좋게 쉬어가는 하루 되셨으면 더 좋겠습니다. 게다가 불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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