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미쳤어요

by Hoon

오랜만에 벗들과 뭉쳤다. 이놈의 코로나 이제나 저제나 언제 끝나려나. 차일피일 미루다 기어이 모였다. 다섯이 모였는데 앓고 지나간 이가 셋이다. 다음은 내 차례인가. 조심해야지 싶지만 지금보다 뭘 더 어떻게 해야 좋을지는 모르겠다. 그저 마스크 잘 쓰고 사람 너무 많은 데 피하는 게 다다. 오늘도 붐비는 맛집은 아니다. 그래도 제법 음식이 맛나다. 숨은 보석을 발견하는 기쁨이 더 크다. 배는 채웠으므로 2차는 가볍게 생맥주에 간단한 안주 곁들이기로 한다.


생맥주에 건어물, 소시지 안주 따위를 주문했다. 첫 모금이 시원하게 수직으로 낙하한다. 찬 맥주가 밤과 어울리는 계절이다. 두 번째 모금을 들이켜며 유난히 길었던 겨울을 새긴다. 코로나 시국 2년간 묵힌 이야깃거리가 테이블 위로 넘친다. 여기 맥주 석 잔이요, 넉 잔이요. 종업원 팔뚝에 힘줄이 선다. 그의 피크타임이다. 덕분에 직장인 다섯이 퇴근 후 여가를 즐긴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일터에서의 삶을 위해. 일행이 값을 치르고 나오는데 ‘히익’ 경기를 한다. 왜, 왜, 무슨 일인데. 그가 영수증을 코앞으로 당긴다, “17만 원이 넘게 나왔네. 안주에 맥주 몇 잔씩 먹은 건데..” 정말? 진짜로? 하얀 쪽지를 돌려보며 진위를 파악한다. 많이도 나왔네. 우리가 그렇게 비싼 거 먹고 마신 건가. 혼자서 ‘쏘는’ 건 가혹하고 내일 ‘N분의 일’로 나누기로. 총무, 톡 주시오.


물가가 많이 올랐다. 하긴 술 한 병에 오천 원인 시대다. 번화가에는 오천오백 원, 육천 원 받는 곳도 드물지 않다. 일전에는 퇴근길 회사 후배 둘과 술집에 들렀다. 후배 하나가 전화를 받더니 “선배님, 제 동기 아무개가 다른 아무개와 둘이 있다는데 여기 오라고 해도 될까요?” 어어, 오라고 해, 얼마든지. 그렇게 술판이 커져서 먹고 마시다가 집에 갈 시간. 쥐뿔 없어도 최고참 선배가 사는 게 불문율이다. 계산을 치르는데 이번 달 용돈이 숭덩 잘려나간다. 많이 나왔네. 그래도 오랜만에 선배 노릇했으니 아까워하지 않기로 한다. 그렇더라도 이런 식이면 중간에 후배들 더 부르는 건 이제 망설일 것 같다.


어디 먹는 것만 그런가. 기름 값도 대기권을 뚫는다. 경유 이천 원인 세상이다. 내 차엔 경유를 넣는다. 휘발유보다 단 몇 백 원이라도 싸서 득 보는 기분이었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다. 휘발유 경유 할 것 없이 연일 가격이 오른다. 기름 값 무서워서 차도 맘 편히 못 굴릴 판이다. 움직이면 돈이라더니 실재가 그렇게 되었다. 자가용을 이용한 외출도 심사숙고해서 꼭 필요한 때에만. 코로나 끝나 가고 날 좋아지는데 우리 식구 외출 빈도는 더 줄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딸아, 이제부터 주말에 집에만 있는 아빠를 원망하지 마라. 내 탓이 아니거든.

나는 2000년대 중반에 처음 취직했다. 선배들 손에 이끌려 점심시간 해장국 집에 가면 한 그릇에 사천 오백 원, 오천 원쯤이었다. 육칠천 원이면 제법 비싼 밥 얻어먹은 거였다. 요즈음 비슷한 식당에 가면 팔천 원도 잘 없다. 어지간하면 구천 원이고 만 원도 흔하다. 십수 년 전에 비해 얼추 두 배 비싸진 것이다. 여기서 자괴감이 묻은 의문이 뭉친다. 세상 재화와 서비스의 값어치는 두 배가 됐는데 과연 나는? 내 연봉이 그때와 비교해 두 배가 되었대도 문제다. 그래 봤자 구매력은 똑같단 얘기다. 최소한 물가상승률에 기반해서 인상폭이 더 적용돼야 경력을 인정받는 셈이다. 머릿속 계산기에 흐릿흐릿 숫자가 찍힌다. 에잇, 망했네! 계산기 자판을 헝클어 발로 뻥 찬다.


이렇게 물가가 오르면 누군가는 이득을 봐야 한다. 해장국집, 호프집, 저기 주유소 사장님도 벼락부자가 돼야 맞다. 한데 잘 모르겠다. 지난달 회사 앞 순댓국집이 한 그릇 팔천 원에서 구천 원으로 값을 올렸다. 그 집 주인장 차가 고급 세단으로 바뀌었단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거기서 일하는 종업원 아주머니 월급이 오른 것 같은 눈치도 없었다. 가격 올렸다고 자영업 하시는 분들 벌이가 확 폈다는 소리는 아직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 그 많던 싱아는, 아니 이윤은 누가 다 먹었을까.


미친 인플레이션. 도대체 원인이 무엇인가 궁금해하던 차에 뉴스 리포트가 나온다. 다음 달 출범할 새 정부가 진단한 물가 상승의 원인은 이렇다. 코로나 위기로 전 세계에 돈이 많이 풀렸단다. 위기가 끝나가는 과정에서 경기 회복의 기대로 물가가 오른다. 동유럽발 전쟁의 여파로 원자재 공급에 문제가 생겼다. 그것 때문에 물가 상승이 가중된다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우선 기름 값을 잡기 위해 유류세를 인하하겠다고 대책을 내놨다. 아직 전기차를 구입하지 못한, 화석 연료 차량의 소유자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나라님들이 제발 이 살벌한 물가 상승의 병세를 잘 다스려 주시길 염원한다. 병부와 증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질병의 원인을 꼼꼼하게 분석해서 최대한 부작용 없는 처방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의사의 잘못된 처방이 환자의 애먼 목숨을 앗아간다는 사실은 새삼스럽다. 그런 점에서 뉴스 리포트 말미에 나온 새 정부의 대책이 자못 안쓰럽다. “인수위는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는 점을 우려하여 추가 인상에 대해 소극적 입장을 보인다. 세계 공급망 불안을 개선하기 위해 해외 자원 확보 정책을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과연 그러한가.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을 자극하기 전에 물가 상승이 실질 임금 인상을 저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구매력 답보 상태인 내 월급이 증명한다. 민간 중심의 대책 마련이란 것도 무책임하다. 새 정부의 정책 성향을 모르지 않다만 내가 바라는 건 작아도 유능한 정부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것이 아니다.

화불단행이라더니 치킨 값도 한 마리 삼만 원으로 오를 조짐이다. 지금이야말로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치킨 원가가 진짜로 많이 올랐는지, 생닭 원료비에 마케팅, 광고비는 얼마나 붙는지, 프랜차이즈 본사가 너무 많이 가져가는 건 아닌지 들춰봐야 한다. 치킨 얘기하니까 배달 요금도 문제다. 배달 한 건당 일이천 원도 아니고 사오천 원이 기본이다. 배달료 무서워서 짜장면 한 그릇도 맘 놓고 못 시켜 먹겠다. 배달 기사님들 노고의 대가가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만 배 불리고 있는 건 아닌지도 따져볼 계제다. 미쳐서 날뛰는 물가 좀 잡아주시라. 내 구매력이 어제보다 오늘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 달라. 책상 어디에 놓고 일하겠다고 애쓸 때가 아니잖은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만우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