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by Hoon

예전엔 회사 후배들 호칭 가르마 타 주기를 자처했다. 경력 사원이 들어왔는데 다른 후배보다 나이는 어리고 연차는 높다. 둘이 어색한 존대어로 데면데면하다. 보다 못해 끼어든다. “음, 그럼 네가 얘한테 선배라고 부르는 게 맞겠네. 대신에 쟤가 너보다 나이는 많으니까 너도 높임말로 대우해주고.” 누군가 나서서 중재해주는 게 편리할 때도 분명 있다. 내가 꺼내기 어려운 말인데 대신 정리해준다? 땡큐지 뭐, 내 오지랖의 명분이었다.


그러다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해오던 방식대로 후배 둘을 이어줬는데 전보다 더 소통이 얼어붙었다. 내가 왜 저치를 선배라고 불러야 돼, 나한테 왜 존대하라고 하는 거야, 내가 꺼낸 중재안이 마뜩잖을 수 있겠다. 괜한 오지랖을 부려서는. 그때부터 남들의 상호 호칭에 일절 간여하지 않는다. 너희 둘이 알아서 서로 불러라. 네들끼리 편한 방법이 있겠지. 알아서들 하셔, 난 몰라.


새삼스러운 나이 문제로 요란하다. 새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이제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만 나이’만 씁시다, 바꾸려는 눈치다. 명분은 이렇다.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세는 나이’, 그것과 만 나이가 혼용되어 일상 속에서 불편이 크다는 이유다. 특히 계약서 따위의 문서에 쓴 나이 때문에 시비가 많단다. 기업에서는 임금피크제 적용을 두고 만 나이냐 세는 나이냐로 오랜 법정 싸움이 있었다. ‘연 나이’라는 것도 있다. 세는 나이에서 한 살 빼면 그것이다. 청소년 보호법 때문에 생겼단다. 똑같이 대학 신입생 됐는데 누구는 생일 지나서 술 마셔도 되고 누구는 안 지났으니까 안 되고. 한 테이블에서 그게 말이 되나. 그거 없애자고 정한 나이다. 세는 나이, 만 나이에 연 나이까지. 가짓수가 많긴 하다.


그렇다고 만 나이로 통일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 될 것인가? 난 글쎄올시다, 다. 찬성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이런 사람들도 많단다. “지금 나이보다 두 살 어려지는 거네. 아이 좋아! 서른한 살과 스물아홉 살은 느낌부터가 다르지!” 과연? 그렇다고 당신의 생물학적 수명이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기분 한 번 내자고 법 원칙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신만 어려지는 게 아니라는 핀잔에도 당당하다. 온 국민이 공평하게 두 살 젊어지는 것이니 혼란도 곧 잦아들 거라는 반응도 있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만 나이 쓴다고 혼란이 아주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같은 해 태어난 이들끼리 쉽게 편한 말 쓰는 사이가 된다. 그래서 사람 사귈 때 짐짓 나이를 묻는다. 이제 나이만 알아서는 편하게 말 놓아도 되는지 알 수 없다. 방법이 아주 없진 않다. 대신 출생 연도나 입학 연도를 묻는다. 한국인의 또래 동기를 가려내는 습성, 그것은 그 모든 불편을 이긴다. 그러한 본능에 새롭게 곤란한 구석이 생긴다. 나이 같다고 친구 먹었는데 그 친구가 어제 생일이 지났다. 오늘부터는 나보다 한 살 많다. 우리는 여전히 친구인 건가, 아니면 형 동생 사이가 되는 건가. 엄밀히 말하면 형인데 형한테 반말해도 되나. 아니면 형, 언니라는 낱말에 대한 사전적 정의까지 바뀌어야 하나.


불편하다고 없애는 게 능사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안 쓴다고 우리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삐걱거리고 흔들리는 곳을 잘 고치고 다듬어 써야지 냅다 갖다 버리면 되겠는가. 그런 점에서 인수위의 해법은 과격하다.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엄연히 우리 사회에 오랜 세월 있어온 것이다. 연령을 매개로 한 무리 지음과 서열 문화, 존댓말과 반말의 언어적 발달, 호칭의 섬세한 사용까지, 한국 사회의 전체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미봉의 계책이다.


애초에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인지부터가 의문이다. 세는 나이는 사회와 문화의 영역에 속한다. 진즉에 우리나라 민법에는 만 나이를 기본으로 하게 돼있다. 만 나이가 기본 값인 것을 뜻밖에 국민 생활상의 불편 때문에 청소년 보호법과 병역법 등에서 연 나이로 예외를 둔 것이다. 예외가 많아지다 보니 혼란이 가중됐을 수는 있겠다. 오랜 세월 민간에서 써온 세는 나이를 정부가 나서서 폐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탕탕탕’ 의사봉 세 번 친다고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란 뜻이다. 문화 양식과 사회적 합의의 변화는 어디까지나 자연 발생에 의한다.


새 정부가 할 일은, 또 할 수 있는 일은 사법 분야 안에서의 혼란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에 등장하는 나이는 별도의 표기가 없더라도 만 나이 적용이 기본이라고 다시 한번 명문화하라. 인수위가 만 나이 통일의 명분으로 든 임금피크제 분쟁, 보험 특약 시비와 같은 문제도 알고 보면 용어 사용의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별 말이 없으면 만 나이가 기본이다, 확실하게 못 박아두면 될 일이다. 혼란의 한 축이 되는 연 나이 사용도 최소화하라. 스무 살 대학 새내기들의 술자리, 한 테이블 손님 나이를 일일이 검사해야 하는 술집 주인장의 불편 정도가 아니면 차제에 만 나이로 다 묶자. 병역법, 민방위 기본법 등에 혼재하는 연 나이는 이제라도 만 나이로 되돌려야 한다.


솔직하게 얘기하련다. 나이 문제로 큰 불편 없었던 건 나뿐인가. 살면서 세는 나이와 만 나이 헷갈려서 애먹은 적 없었다. 연 나이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 말라면 하지 않았고 해야 하는 건 미루지 않고 했다. 이익을 탐내는 과정에서 나이 문제로 누군가와 법정 시비를 가려본 일도 없다. 너의 평탄하고 한가한 삶 덕분이라고 핀잔을 준다면 대거리할 말은 생각나지 않는다. 외국 사람에게 한국식 나이를 굳이 설명해야 할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에 없다. 결국 지나온, 그리고 지금의 삶에서 중차대한 문제는 아니었단 말이다.


나이 셈법 같은 건 더 나은 내 삶을 위한 우선순위에 없다. 일전에도 구술했다만 제발 이 빌어먹을 물가부터 잡아주시라. 오늘도 직장에서 점심 사 먹으러 나가기가 겁난다. 술값도 비싸서 이젠 어디 밖에서 말고 집에서만 술 마셔야겠다는 동료들도 많다. 아무리 집술, 혼술이 유행이라지만 엄연히 술집에서 마시는 운치가 있는 것인데. 제발 맘 편히 퇴근길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게 해 달라. 내 나이는 내가 알아서 먹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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