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름을 크게 알린 소설가가 작고했다. 퇴근 후 귀가해서 씻고 거실 소파에 기댔다. 고단함과 개운함을 함께 느끼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엄지손가락을 문질러 화면을 넘기는데 유명 소설가의 부고 기사가 나온다. 엇, 이 분 돌아가셨구나. 왠지 모를 기분이 들어 소식을 찬찬히 살핀다. 영정 사진으로 쓰였을지 모를 고인의 얼굴에 시선이 머문다.
묘한 감정이 일었다. 내 아버지와 전혀 딴판인 눈코입인데도 ‘닮았다’고 느낀다. 허연 서리가 내린 머리카락, 군데군데 검버섯이 오른 살갗, 세월의 고랑이 된 주름살이 이 즈음의 아버지와 비슷하다. 특히 삶의 풍화에 견디다 비로소 무너졌을 여덟 팔 자 눈꺼풀은 영락없이 닮았다. 아버지와 닮은 얼굴의 이유는 얼핏 그런 까닭이리라. 어쩌면 우리 세대 아버지들의 서로 엇비슷한 초상일지도 모르겠다.
그와 내 아버지는 청춘을 함께 보낸 글벗이자 동갑내기 친구다. 두 사람의 젊은 날 인생 궤적은 아주 닮았다. 같은 대학을 다니며 한 무리의 동료들과 시, 소설, 그림으로 예술 혼을 불태웠다. 같은 지역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돼 본격적으로 문인의 길을 걷는다. 아버지가 그보다 세 해 빨랐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 중에도 그와 변변한 안주도 없이 독한 술로 예술적 허기를 달래던 얘기를 나는 어려서부터 이따금 들었다. 그와 직접 대면한 기억도 어렴풋하나마 있다. 아버지와 집에서 만난 그가 코흘리개인 나를 안았다. 그 거북스러운 냄새가 술이며 담배 때문인지는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그렇게 한 사람은 신간을 내놓기만 하면 서점가의 명당자리를 차지하는 이름 난 작가가 되었다. 다른 사람, 내 아버지는 아니었다. 단편부터 중편, 장편 연작에 이르기까지 그 못지않게 소설책을 거듭 내놓았다. 한데 그것만으로 가계를 책임질 수 없었다. 아내와 어린 두 아이의 입고 먹는 것을 위해 생업에 뛰어들었다. 글 쓰는 재주로 기업에 취직해 사보를 펴내고 보도자료를 완성한다. 지금의 내 나이쯤인 아버지였다. 다음날 출근을 앞둔 새벽, 외로운 스탠드 등 밑에서 숨죽여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던 굽은 등을 떠올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새 책을 손에 만질 수 있었다. 그 야심한 불면은 아마도 아버지의 본업이었으리라.
무엇이 같은 출발선에 섰던 두 예술가의 생을 갈랐을까. 나는 ‘운’이라고 믿는다. 그는 운이 좋았고 아버지는 아니었다. 절대로 필력의 차이라고 짐작하지 않는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후배 소설가가 선배인 아버지와 대면한 일화를 엮은 수필을 읽었다. 아버지의 소설을 읽은 후배가 스스로 묻는다. ‘왜, 이런 좋은 작품들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까?’, ‘왜 다른 동기 소설가들만큼 빛을 보지 못했을까?’ 급기야 그가 아버지에게 직접 묻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선배님의 작품 중에 「OOO」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습니다. 동기 OOO 작가나 OOO 작가의 「OOO」에 견주어도 결코 못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빛을 보지 못했습니까?” 선배,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가 답한다. “운이 없던 게지...”
일전에 유시민 작가가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가 학자며 전문 직업인, 연예인과 토크를 나눈다. 어느 출연자가 성공과 실패가 다 운 때문인 것 같다고 푸념한다. 유 작가가 옳거니 거든다. 그렇게 아는 게 낫고 좋다. 잘 된 사람은 그래야 겸손할 수 있고 안 된 사람도 지나치게 자책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승자를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고 패자를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다. 일백 퍼센트 동의하고 공감한다. 아버지의 창작자, 예술가로서의 불운을 온 마음으로 위로한다. 그것은 어쩌면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의 평안한 일상과 망설임 없이 바꾼 기회비용의 대가일지도 모른다.
짓궂게 하나만 덧붙이면 그 고약한 성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남의 비위를 맞춰 민첩하게 이득을 취할 줄 모른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앞서 거론한 후배 소설가가 아버지와 첫 대면을 앞두고 다른 이에게 이렇게 귀띔을 들었단다. “우리 언니가 OOO 씨(아버지)와 잘 아는데 ‘성질 고약하다!’고 그러더라고요.” 쉬 타협할 줄 모르는 고집스러운 성격만 아니었어도 일찌감치 세간의 이목을 끌 귀중한 기회를 얻었을지 모를 일이다. 한데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 유전 형질 안에는 좋은 것만 있지 않다. 내 성질머리도 여간한 게 아니다. 주니어 시절 회사 선배가 나를 불러 일침을 놓았다. “너 그 못된 성질 좀 죽여라. Hoon 너는 그것만 아니어도 윗사람들한테 이쁨 받을 텐데 왜 일 잘해놓고 손해를 보냐.” 그 아비에 그 아들이 어디 갈 리 만무하다.
그런 나의 아버지가 며칠 뒤면 세상에 나온 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그렇게 사연을 매조지고 싶지 않다. 얼마나 진부하고 고루한 전개인가. 누구에게 가서 자랑할 것이냐. 자식으로서 그저 나아주고 길러준 것에 대해 감사해하면 그뿐이다. 그 고마움을 큰맘 먹고 물질로도 표현할 요량이다. 돌아오는 주말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 차로 태워 집에서 가까운 호수 유원지 값비싼 한우 소고기 파는 ‘가든’으로 이끌려고 한다. 사랑하는 아들 며느리 손녀와 맛있는 것 먹으며 단란한 한 때 보내는 것, 그게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기실 이 안 좋은 아버지는 고기보다 이북식 냉면을 더 찾는다. 그 집 냉면도 일품이라니 실망하진 않으실 게다.
모친이 너희 아버지 나이 들수록 애 같아진다고 핀잔이다. 툭하면 삐치고 토라지고, 성질 받아주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 신다. 그러면서도 젊어선 안 그랬는데 안쓰럽다며 말을 닫는다. 두 모자가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으로 간주하기로 한다. 비교적 크게 안 아프고 건강한 게 천만다행이다. 십수 년 전 뇌졸중 초기 증상으로 앓으실 때 단번에 술이며 담배 끊어낸 게 오늘을 가능케 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하다. 예술가의 세계에서 피붙이 같은 그 둘을 떠나보낸 것이.
고인이 되신 소설가님과 내 아버지 중 누가 성공한 삶인지 예단, 속단하지 않겠다. 현재의 스코어로 직업인으로서 그가 더 성공했음을 부정하지도 않으련다. 다만 직업이 다가 아닌 한 사람의 일생을 두고 보았을 때 내 아버지 역시 실패하지 않았음을 자신한다. 고인의 명복과 더불어, 살아서 남은 모든 이들의 건강을 마음 깊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