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할, 아니 이미 대성한 대성집

by Hoon

직장이 구도심에 있으면 좋은 점 하나. 주변에 오래된 맛집이 많다는 것. 회사 구내식당 밥이 물린다. 오늘 점심은 외식을 결행한다. 친한 후배와 일찌감치 길을 나선다. 오래 줄 서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목적지는 문 연 지 60년이 더 됐다는 도가니 수육 식당. 일전에 점심 산책길에 우연히 지나는데 가게 앞에 대기 줄이 길다. 오, 이 집 유명한 덴가 보네. 언제고 와서 먹어봐야지, 했다. 그 식당이 유명 가수의 개인 유튜브 채널에 소개됐다. 오늘 출근하고 얼마 안 돼서는 친구가 단체 톡방에 “얘들아, 우리 이 집 가보자!” 올렸다. 거기가 마침 또 거기다. 잰걸음이면 갈 수 있는 거리. 그래, 오늘이다! 먼저 가서 먹어보자.


서둘렀는데도 줄이 길다. 실망하지 않는다. 벌써부터 긴 줄에 외려 믿음이 생긴다. 맛이 있긴 있나 보네. 다행히 회전이 빠르다. 줄이 훅훅 전진한다. 동행한 후배와 시시콜콜한 수다를 나눈다. 금세 출입문 코앞까지 왔다. 공연히 뒤를 돌아본다. 아까보다 더 긴 줄이 묘한 성취감을 준다. 앞에 혼자 온 손님만 들어가면 우리 차례. 마음씨 좋은 인상의 남자 주인장이 입장을 관리한다. 주인장이 앞 손님에게 기분 좋게 알은체 하며 말을 붙인다. “어이쿠, 오늘은 어떻게 낮에 오셨어요? 잘 지내셨고? 예, 저 쪽 빈자리 앉으시면 되겠네요.” 이 집 단골손님인가 보다.


우리도 드디어 자리를 잡는다. 물 잔을 내려놓은 종업원 아주머니에게 주문한다. 도가니 수육 하나랑 해장국 둘, 소주 한 병 주세요. 아주머니가 말씀하신다. “해장국 없어요. 재료가 떨어져서..” 순간 사고가 정지된다. 아니, 점심 장사 막 시작했는데 재료가 동났다고? 맛집의 위력이다. 당혹감을 물리치며 메뉴판을 다시 본다. 그럼 수육에 도가니탕으로요.


개방된 주방 한쪽에서 고기를 꺼내 숭덩숭덩 저민다. 접시에 소복이 담는다. 펄펄 끓는 탕 그릇도 쟁반에 오른다.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저건 우리 음식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머니가 우리 쪽으로 온다. 오오, 모먼트 오브 트루스. 진실의 순간. 위대한 첫 경험이다. 모락모락 김 오르는 수육 접시와 탕 그릇이 식탁으로 내려온다. 차가운 소주 한 병과 잔 두 개가 뒤를 잇는다.


모먼트 오브 트루스


후배 한 잔 따라주고 손 바꿔서 나도 한 잔. 짠! 반 모금만, 크으! 젓가락으로 도가니 수육 하나를 집는다. 특제 간장 소스에 찍어 입으로. 60년 내공의 결정체가 씹힌다. 맛있다! 누린내 따위 전혀 없이 녹진하고 고소하다. 입천장에 끈적하게 퍼지는 질감이 만족스럽다. 흡사 우유 맛이 난다. 탕 국물도 숟가락으로 떠본다. 캬아, 깊고 진한 국물에 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이래서 그 가수가 강력하게 추천했구먼. 멈출 수가 없는 맛이다. 술잔 채워서 쨍 한 잔 더. 반복 동작으로 수육 한 점 국물 한 모금.


배부르다. 시원하고 든든하게 잘 먹었다. 최고의 도가니 수육이었다. 처음엔 수육 접시가 작아서 애걔, 요만큼이야 싶었다. 한데 웬 걸. 전혀 적지 않다. 두 사람 먹기에 모자라지 않다. 탕에 들어있는 고기도 푸짐하다. 맛은 물론 양으로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먹고 보니 도가니 수육의 물성이 그런 듯도 하다. 수육 한 점 한 점이 그대로 뱃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다. 기분 좋은 포만감이 밀려온다.


대기 줄이 여전히 길다. 이런 식당은 다 먹었다고 느긋하게 이 쑤시고 앉아 있으면 안 된다. 기다리는 사람들 생각해서 얼른 일어나자. 카운터 앞으로 가서 주인장께 계산을 치른다. 수육에 탕, 소주 드셨네요, 하는데 내가 말을 보탠다. “밥공기도 하나 추가했어요, 사장님.” 주인장이 말을 받는다. “아, 그렇군요. 오늘 밥 한 공기는 제가 내드릴게요. 맛있게 드셨나요?” 이야, 이런 서비스가. 주인장 말 한마디에 마음이 붕 뜬다.


돌아 나오며 방금 일어난 일을 후배에게 고했다. “이야, 장사 잘하는 분이네요. 괜히 맛집이 아니지. 손님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후배 말에 온전히 공감했다. 단순히 밥 값 적게 나왔다고 그런 것이 아니다. 주인장의 마음씨, 손님에게 건네는 그 말씨가 예뻐서 감탄했다. 후배가 말을 잇는다. “아까 보니까 사장님이 입장하는 손님들 중 여럿한테 인사말을 하시더라고요.” 내가 본 것도 있다. 주인장은 바쁜 와중에도 처음 온 것처럼 뵈는 손님들 테이블로 간다. 이렇게 저렇게 드시라, 맛나게 먹는 요령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친절과 상냥함이 갑자기 만든 것일 수 없다.


다시 오리라. 오늘 맛보지 못한 해장국도 반드시 영접하리라. 오래 장사하고 손님 많은 식당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음식 자체가 물론 맛있어야 하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우리 앞에 혼자 온 손님에게 오늘은 낮에 오셨네요, 인사할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나를 알아봐 주는 주인장의 사소한 한 마디에 손님은 식당에 대한 로열티, 충성심을 인정받는다. 그것 자체로 유쾌한 경험이다. 기분 좋은 마음은 곧 다시 애정, 충성심으로 보태어진다.


나는 장사의 지읒도 모른다. 그럴 주제가 못 된다. 그래도 그런 것쯤은 알 것 같다. 도가니 수육 식당 사장님처럼 해야 한다는 것. 충성적 고객을 잊지 않는 세심함, 처음 온 손님과도 유대를 형성하는 친밀함, 당장 밥 한 공기 값을 물리치고 미래의 단골손님을 예비하는 장기적 시야, 무엇보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고마움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상냥함. 장사든 사업이든 씨앗을 심고 물 주고 가꾸며 나무 한 그루를 정성스럽게 키우는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 또 올게요, 사장님.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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