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 일이란 게 그렇다. 구조와 체계가 없으면 괜한 을들의 전쟁이 된다. 영업 부서와 지원 부서는 서로 유기적으로 공조해야 한다. 영업 일선의 노고를 인정하고 후방 지원의 헌신에 감사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을 성과로 실현시키려면 영업과 지원 사이의 간극이 촘촘히 채워져 있어야 한다. 그게 시스템이다.
시스템의 부재로 뜻밖에 수모를 겪었다. 사업기획 부서와 영업 부서, 지원 부서 등 여러 분야의 팀장들이 모인 메신저 대화방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방송 실행 분야의 팀장이다. 기획과 지원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사업기획 부서와 영업 부서에서 추가적인 협찬금을 유치했다고 달떴다. 마치 일이 다 끝난 것처럼. 실행 분야를 맡고 있는 나로서는 이제부터가 일의 시작이다. 잘못되면, 그러니까 방송 사고라고 부르는 트러블이 생기면 모두 내 책임이다.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다.
대화방에서 영업 부서의 팀장에게 이런저런 디테일까지 챙겨 달라, 메시지를 띄웠다. 잠시 후 이런 답신이 달린다. “복잡하게 일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 건 다 협의된 거 아닌가요? 도대체 뭘 물어보는 거에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 그대로 방송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세부사항까지 챙겨주시라, 잘 마무리되면 다 당신네 부서 실적일 텐데 그래도 회사 조직의 성과이니 일이 실현될 수 있도록 이러저러한 팁을 드린다, 한 마디로 네 일 잘 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는 뜻인데 그걸 이따위로 받는다. 심박수가 실시간으로 오르지만 애써 평정을 찾는다.
일은 일, 필요한 정보는 얻어야 한다. 기분 같아선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 그걸 듣겠다고 전화기를 집어 든다. 빌어먹을 음성이 내 신분을 밝히자 더 퉁명스러워진다. 뭐가 문제냐 물어온다. 협의가 한 차례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구체적이지 않고 자칫하면 사고의 위험이.. 까지 얘기하는데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전화를 홱 끊는다. 이런 X새끼가..
다시 한번 평정을 찾아본다. 잘 안 된다. 이삼십 분이나 흘렀을까. 나의 직속상관, 본부장께 찾아가 조금 전 겪은 수모의 자초지종을 고한다. 무슨 그런 경우가 있어, 하며 본부장이 휴대전화를 건다. 아니 Hoon 팀장한테 방금 들었는데 이건 아니죠, 하며 내 입에서 나간 줄거리가 본부장 음성으로 재생된다. 그쪽 대장일 것이다. 통화를 마치더니 항의는 했고 어떻게 나오나 기다려 보잔다. 始發, 회사 생활 18년 만에 별 똥물을 다 뒤집어쓴다.
사태의 원인을 곱씹는다. 업무 체계의 공백과 구성원 개인의 몰인격이 만난 결과다. 누군가 사업 의지가 실체로 귀결될 수 있게 중간에서 조율하고 조립하고 배달하는 기능이 있어야 했다. 그게 없어서 굳이 내가 챙겼던 터였다. 그렇잖아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디는 와중이었다. 비유하자면 영업 쪽에서 계약서에 사인받아냈다 치자. 그러면 실제로 물건을 만들어서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그 물건을 직접 만들어서 배송까지 할 수는 없다. 그 과정을 관장할 뿐이다. 계약 따낸 이에게 당신이 직접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 팁을 제공하니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잘 챙기시라 한 거였다. 그게 그 베이비에겐 스트레스였나 보다. 그렇더라도 어디 그따위 액션을!
영어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Don’t bite the hand that feeds you.” 직장인 벌이 18년 동안 가슴에 새긴 꼬부랑 경구가 되었다. 사랑스러운 우리말로 옮기자면 “너에게 먹이를 주려는 손을 물지 마라.”라는 뜻이다. 실제 경험도 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얻어온 개를 한 마리 키웠다. 훈육의 잘못도 컸을지 모른다. 그 개는 자꾸 우리 식구들을 물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결국 어디 시골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 먹이 주는 손을 물면 그렇게 된다. 난 직접 보아서 안다.
2. 멘털 잡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회사 정문을 나서는데 억눌렀던 시커먼 감정이 터져 오른다. 도무지 맨 정신으로 단거리 귀가할 수 없었다. 누군가 같이 소주잔 부딪쳐줄 이가 몹시 필요한 시점이었다. 정히 술 안 당기면 안주발 세우며 그냥 나 마시는 거 구경만 해줘도 좋았다. 같이 마시고 취해주면 더 좋고. 뭐든 비싼 메뉴로 고르면 내가 쏜다. 난 뭘 먹어도 맛을 모를 것 같았다. 내 미뢰 세포는 오늘 죽었다.
공장 사람(첫 직장이자 전 직장인 방송사 선배들은 회사를 그렇게 불렀다. 술자리에서 회사 얘기가 나오면 술맛 떨어진다며 공장 얘기 좀 집어치워라 했었다. 공장. 그 어감이 이상하게 사람 냄새 나서 좋았다.), 그러니까 회사 동료는 오늘 아니다. 전 직장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퇴근하셨냐, 퇴근 중이다, 술 마시러 간다, 어쩐 일이냐, 그냥 생각나서 전화드렸다,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라, 하고 끊었다. 전 직장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하냐, 집에 갑니다, 너답지 않게 얌전히?, 애 감기라고 와이프가 일찍 들어오랍니다, 귀한 아들 잘 돌봐줘라, 하고 끊었다. 고등학교 친구 놈 A에게 전화 걸었다. 술 마시자, 마시고 있다, 무슨 일 있냐, 술 마시고 싶은 게 일이지, 간만에 회식이라 튈 수가 없다 쏘리, 됐다마 처마시라, 하고 끊었다. 고등학교 친구 놈 B에게 전화 걸었다. 술 마시자, 나 출장 왔다 전라도, 맛있는 거 많겠네, 즐저녁 해라, 하고 끊었다. 대학교 후배에게 전화 걸었다. 형 어쩐 일?, 술 생각 아니 네 생각나서, 나 딴 친구 만나서 벌써 먹는 중, 형 올래?, 나 아는?, 아니 모르는, 됐네 다음에 봐, 하고 끊었다. 몇 해 전 졸업한 대학원 동기들도 리스트에 오른다. 모두 마시고 있거나 마실 예정이고 마시면 안 되거나 멀리 있었다. 급기야 친동생 녀석한테까지 전화를 건다. 네 혈육 형님이 오늘 꿀꿀하다, 했다. 주말에 회사 상사들이랑 접대 골프 치러 가는데 민폐 끼치면 안 되니까 이번 주 연습장서 특훈 기간이란다. 지금도 한창 스윙 중이었고 이따 늦게 집에 갈 거란다. 없다.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술벗을 청했는데 그 한 명이 섭외가 안 된다.
아내가 퇴근길에 딸아이 미술학원 픽업 가는 날이다. 결국 엔드 게임, 최종 단계까지 와버렸다. 아내가 최후의 보루인 이유는 이렇다. 언젠가 오늘 비슷하게 기분 형편없이 구겨진 저녁, 퇴근길 모교 선배와 일잔 부딪치고 가겠노라 아내에게 일렀다. “위로는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받으시는구먼.” 뜨끔한 일답이 돌아온다. 그런데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남자는, 가장은, 그것도 아니면 나는 그런 게 있다. 배우자 앞에서 되도록 강건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일터에서 받은 시름일랑은 밖에서 툭툭 털어내고 말끔한 마음가짐으로 귀가하고 싶었다. 집안 공기를 내 더러운 감정으로 오염시키고 싶지 않았다. 진정한 위로는 아내에게서 오지. 이렇게 된 거 아내 찬스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가지 말고 아이 데리고 동네 전철역 출구 건너편 꼬치구이 선술집으로 오라고 했다. 회사에서 거지발싸개 같은 일이 오랜만에 있었고 일과 중엔 괜찮았는데 문 나서니까 불현듯 음주의 욕구가 몰려왔다, 이 사람 저 사람 물색해봤는데 ‘번개’는 요즘 트렌드가 아닌가 보다, 결론은 와이프였다고 털어놓았다. “큭큭큭 불쌍한 왕따 남편.” 아이랑 그리로 가겠단다. 어, 조심해서 와, 드디어 성공적인 통화가 완성되었다.
술집으로 들어가 검지와 중지, 시지를 펴 보이며 자리를 묻는다. 우선 모둠꼬치 하나랑요 오백 한 잔, 소주 한 병 주세요. 두 사람을 기다리며 먼저 한 모금 들이켠다. 묘한 ‘관심 종자’ 기질이 발동해 테이블을 스냅숏으로 담는다. 대학원 동기들, 고등학교 친구 녀석들 모인 메신저 대화방에 올린다. “오랜만에 공장(회사)에서 X 같은 일과를 보냈습니다. 동기 민O는 회사 앞에서 저녁 먹는 중인데 몸 성치 않아서 금주, 대O형은 제 번호 저장이 안 돼서 누구세요 끝에 임플란트로 금주, 지O이는 거래처 사장님과 부천에서 이미 일잔 중, 철O이는 운동 막 마쳤으나 목동에 선약, 은O누나는 가족과 포항 출타 중이었습니다. 모두 먹거나 마시고 있고 마실 예정이셨습니다. 고등학교 친구 놈 둘, 대학교 후배, 전 직장 선배도 그렇거나 이동 중이었고요. 결국 왕따라고 자격 부여하며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베스트 후렌드로 남아줄 아내가 아이 미술학원 픽업하며 동네 선술집으로 와주기로 했습니다. X 같은 기분으로 매조지고 싶지 않은 저녁입니다. 저처럼 말고 더 즐겁고 행복한 저녁시간 채우셔요.”
3. 그러기를 얼마간, 휴대전화에 대학원 동기 이름이 뜬다. 아무개 기자로 저장해두었다. 동기는 회사 동료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같은 회사를 다녔다. 과거형이다. 동기는 얼마 전 회사를 퇴직하고, 그러니까 기자 일을 그만두고 완전히 다른 새 직장을 찾았다. 회사 동료이면서 동시에 대학원 동기, 공통분모가 크다면 큰 사이다. 그렇다고 수시로 전화 주고받으며 미주알고주알 시시콜콜한 일상 교감하는 친분은 아니었다. 동기가 모두 베스트 프렌드일 수는 없다. 그게 자연스럽다. 잘 살다가 가끔 같은 자리에서 어울릴 때 격의 없이 소통하고 반가워할 수 있어도 나쁘지 않다.
“아이고 이게 누구셔, 아무개 기자 아니십니까.” 어울리지 않는 너스레를 떨면서 전화를 받았다. “반장 형님, 저 이제 기자 아닙니다. 저 그 회사 그만두고 나왔잖아요. 깨톡 보니까 거기서 오늘 안 좋은 일 있으셨던 것 같은데, 그래요 거기 아주 뭣 같죠. 전 알아요 알아. 아주 잘 알죠. 아니 어떤 놈이 괴롭힌 거에요? 얘에요? 쟤에요?” 음성이며 내용이 푸근하고 정겹다. 처지를 알고 말만 하면 어떤 놈이 악당인지도 공감해줄 것 같아서 든든했다. 위안이 되었다.
그러게 이제 기자 아니시니까 어떻게 불러드려야 하느냐 물었다. “그냥 편하게 아무개야, 아무개 동생 하면 되시죠 뭐. 조만간 저녁때 한 잔 꺾으면서 더 내밀하게 호칭 변경 하시자고요.” 그러자, 꼭 그리하자 거들었다. 아무개 기자도, 아니, 아무개 동생도 즐거운 저녁 시간 보내고 전화 주어서 고맙다, 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러네. 이제 더 친해질 수 있겠네. 외려 같은 회사 다닐 때보다. 흉금 없이 이야깃거리 터놓을 수 있겠네, 싶었다. 짧은 통화로 좋은 친구 하나와 더 가까워진, 그것보다도 더 가까워질 것 같은 기분이 됐다. 비록 ‘번개’는 실패했지만, 사람의 체온이 와서 닿은 밤이다. X 같은 회사 생활, 그중 최악의 하루였지만 엔딩은 겨우 최악을 비껴갔다.
4.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아니라는 걸, 우린 이렇게 절감한다. 아내와 아이가 가게로 들어왔다. 아이가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낸다. 숙제가 많아서 여기서 할 거란다. 조명이 어둡다. 저쪽에 밝은 자리가 비었다. 주인장께 송구스럽지만 저기 밝은 데로 옮겨도 될는지 묻는다. 물론이죠 되고 말고요, 시원스러운 허락이다. 난색을 표하는 주인도 더러 있는데 친절하고 상냥하시다. 엉거주춤 술잔과 숟가락, 젓가락을 챙겨 이사한다.
아내가 아이에게 닭꼬치를 권한다. 한입 빼어 먹더니 제법 맛이 있는 눈치다. 다른 거 더 시켜줄까? 큼지막한 메뉴판을 자못 진지하게 넘기더니 ‘이거!’ 손가락을 찍는다. 황도? 황도! 은근히 으른의 입맛이다. 소주 한 잔 털어놓고 황도 한 숟가락이면 여름밤이 서늘하다. 접시에 앙상한 꼬치가 쌓인다. 이번엔 아내에게 메뉴판을 넘긴다. 쉬 결정하지 못한다. 부인 국물 좋아하니까 어묵탕? 콜! 이슬 맺힌 유리그릇과 보글보글 뚝배기가 테이블로 내린다. 안주가 모두 맛있다. 손님 많은 집엔 다 이유가 있다.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서비스가 만나면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가 된다.
난 평소 독주를 즐겨서 마시지 않는다. 소주보다 맥주, 아니면 청주 정도를 찾는다. 오늘은 소주가 제격이다. 술이 달지 않고 맹물 같다. 이런 날은 반드시 취한다. 아내도 술에 약하지 않다. 작정하고 마시면 나보다 셀지도. 그렇게 오늘 먹고 마신 게 소주 세 병에 생맥주 오백 한 잔, 안주가 모둠꼬치에 황도, 어묵탕. 아내는 식당에 오면 카운터로 가기 전에 자체 결산을 거르지 않는다. 오빠, 얼른 계산해 봐. 에이 대강 맞겠지 굳이. 속마음과 다르게 시키는 대로 한다. 이거에 이거에 저거면 음 얼마쯤, 오케이!
사장님 저희 계산이요, 얼마 나왔나요? 엥? 그 정도로 먹진 않았을 텐데. 다시 봐주실래요? 그랬더니 아, 어묵탕이 두 번 찍혔네요, 얼마입니다 하는 데 그제야 내가 셈한 값이 나온다. 순식간에 실망감이 엄습한다. 많지는 않겠고 어쩌다 드물게 이런 꼼수를 부리는 술집이 아주 없지는 않을 걸로 안다. 모르게 또는 알면서 나도 당해봤던 경험이 있다. 사장님 에이, 왜 그러셨어요? 하니까 손사래를 치며 아니 아니, 정말로 잘못 누른 거라니까요, 결백하다는 표정이 된다. 한데 그 변명마저 농익은 느낌이다. 한두 번 해본 말과 제스처가 아니다. 만약에 순전히 실수였대도 한 번 더 확인해주는 게 옳다. 작은 가게, 빤히 보이는 애 딸린 어른 둘 테이블에서 무슨 대식가 나왔다고 어묵탕을 두 그릇이나 시켜 먹나.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사장님, 아니라고 하시니까 믿겠는데요. 아니 믿고 싶은데요. 혹시 취한 손님들 상대로 이렇게 하시는 거면 제발 그러지 마세요. 음식 맛있고 사장님 친절하시고 장점이 얼마나 많은데, 동네에 몇 없는 분위기 좋은 선술집 오래오래 있어주면 좋겠거든요. 식재료 값이 많이 올랐으면 차라리 가격을 일이천 원이라도 올리세요. 그게 낫잖아요. 저는 자주 오는 단골은 아닙니다만 오늘부터 이 집 팬 되려던 참이거든요. 식구들끼리 종종 오려고요. 따지고 싸우려고 드는 게 아니라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좋은 마음으로 드리는 말씀이에요.”까지 얘기하는데 아내가 팔을 챈다. 오빠 됐어, 집에 가자, 부른다. 진심이었다. 통했다면 주인장이 뜨끔했을 것이다.
5. 집으로 가서 거실에서 2차를 가졌다. 냉장고에서 마시다 여남은, 갈색 플라스틱 큰 병에 든 맥주를 꺼낸다. 지난 가족 캠핑에서 남겨온 감자칩 과자와 회사 문서 파쇄기에서 갈려 나온듯한 가느다란 어포를 안주로 삼는다. 공연히 나 때문에, 멘털 약한 남편 만난 죄로, 그 업보로 아내도 오래간만에 과음을 시켰다. 미안하다.
아주 오래전 친한 후배가 장가가는 날 축가로 가수 이적 형님의 「다행이다」를 불러주었다. 절주, 금주, 숙면 등 철저한 컨디션 관리와 예식 시간의 완벽한 조화로 오랜만에 딱 떨어지는 노래가 뽑아졌다. 이 커플 잘 살겠네, 내가 부르는 축가의 상태로 부부의 궁합을 짚어보는 나만의 점사였다.
아까 어묵탕 두 그릇 술집은 사람이 많아서 무척 시끄러웠다. 다 좋은데 뭔가 허전하다 싶었더니 음악이 빠졌었다. 스마트폰 어플로 노래를 재생한다. “거친 하루 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걸.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란 걸.”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명곡 중에 명곡이다. 어으 취한다, 내일 출근해야지,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