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장점

by Hoon

여성 팀원 J와 점심을 먹는다. 그녀에겐 오래 교제한 남자 친구가 있다. 그는 J와 제법 나이 차가 있는 연상이다. 내심 그녀와 결혼을 서두르고 싶어 한다고 들었다. J 본인은 아니란다. 자기 나이도 점점 차고 있는 걸 모르지 않은데 왠지 겁나고 망설여진단다. 서로 직장 다니면서 주말에 데이트하고, 힘들 때 전화 통화로, 가끔은 불현듯 만나서 위로 나누는 지금이 맞춤하게 좋단다. 그렇다고 남자 친구를 마냥 기다리게 할 수만도 없어서 고민이 크단다.


그러면서 물어온다. “주위에 보면 결혼은 가능한 한 늦출수록 좋다, 아예 안 하는 것도 방법이다,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 엄연한 선택이고 어디까지나 너 마음먹기 달렸다, 한 마디로 ‘비추’하는 인생 선배들이 절대다수더라고요. 팀장님은 어떠세요?”


나? 나.. 나는 강추! 추천의 이유. 하나, 미련보다 후회가 낫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흔하다. 이 말은 틀렸다. ‘결혼은 하면 후회 안 하면 미련’으로 고쳐야 옳다. 비록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 행동학을 정통하게 공부한 형편이 못 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무언가 행위에 의한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일어나는 심리 변화는 후회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미쳤지, 하는 거다. 미련은 또 다르다. 그때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이 등신, 이런 거다. 행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오래도록 남는 마음이다. 후회는 짙고 미련은 옅다. 부정적 감정의 일시적 크기는 후회가 클지 모른다. 한데 미련은 뒤끝이 훨씬 길다. 나는 지나온 길에서 느낀 고통보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오래 마음 쓰는 게 더 싫다.


둘, 내 생의 마지막 날까지 나랑 놀아줄 ‘베스트 프렌드’를 얻을 수 있다는 점.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면서 점점 외로워진다.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오던 어린 시절 친구들도 각자의 삶을 지키느라 자연스레 멀어진다. 나이 들어서 알게 된 사이일수록 거리를 좁히는 건 요원하다. 재미난 영화가 개봉했는데 같이 보러 갈 사람이 없네? 퇴근길 한 잔 부딪치고 싶은데 마땅한 술벗이 없네? 돌아오는 주말 꽃구경 가고 싶은데 혼자 가야 할 판이네? 그럴 때 다소 성가셔할지라도, 마지못해 따라나서는 척할지라도 우리(기혼자들)에겐 영원한 ‘절친’이 한 명씩 있는 셈이다. 인생 알고 보면 별 것 없다. 열심히 일하다가 즐거운 한 때 누리려고 사는 거다. 그럴 때 혼자이면 너무 안쓰럽지 않은가. 호모 루덴스, 유희의 인간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나랑 오래오래 놀아줄 친구 한 명을 얻는다는 것,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셋, 게다가 그 친구가 그냥 놀아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내 편이 된다. 친구에 관해 살아오면서 내린 나름대로의 정의. 슬픔을 위로하는 것보다 기쁨을 진심으로 나누는 게 훨씬 어렵다. 무슨 말이냐. 누군가 뜻밖에 우환이 들이닥친다면? 동정심, 연민의 감정이 얼른 작동한다. 그런데 큰 경사가 생긴다? 진짜 내 일처럼 기뻐할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 입으로는 누구나 축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게 나한테 일어난 일과 진배없어서 성취감, 행복감까지 오롯이 느낄 이들은 흔치 않다. 피붙이 가족 말고는 잘 없다. 드물게 있는 것이 바로 친구다. 진짜 친구는 그래서 소중하다. 반려자는 진짜 친구이면서 동시에 가족이다. 세상 끝으로 쫓기고 몰릴 때에도 내 옆에 서줄 최후의 우리 편, 만인이 등 돌리는 순간에도 나를 품어줄 단 한 사람, 그것도 나아준 부모가 아닌.


마지막 넷, 아이다. 내 아를 낳아도, 이딴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결혼이 자녀 출산, 2세의 획득을 위한 수단이라는 말씀으로 들려선 더욱 곤란하다. 결혼 없이도 아이 낳고 기르는 엄마 아빠가 얼마든지 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세상이 훨씬 건강하다는 것도 모르지 않다. 다만, 대세를 이루는 경향 안에서 나의 경우에 한정할 때 그렇다는 얘기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통해 딸아이를 얻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의 출생 전과 후로 스스로의 삶에 일어난 극적인 변화를 설명한다. 우리 집은 개인인 나뿐만 아니라 온 가족 구성원 전체가 우주적 변화를 체험했다. 모친과 장모님은 요즈음도 이따금 말씀하신다. 손녀딸 아니었으면 우리 식구 모두 도통 웃을 일이 뭐 있겠냐고. 백번 맞는 말씀이다. 나와 아내도 아이 아니었으면 비루한 직장 생활, 고된 하루 사는 게, 밖에 나가서 치사한 남의 돈 벌어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아이 때문에 엄마 아빠는 물론 친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에 삼촌들까지, 온 식구가 산다. 아이 하나가 집안 전체를 비추는 등불이다. 없었더라면 어둡고 침울했을, 웃음소리 한 번 새어 나올 일 없는 우리 집이 아이 때문에 빛난다.


나는 ‘결혼 무관념자’였다. 비혼주의자와는 다르다. 그들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결혼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선 이들이다. 나는 결혼 자체가 아예 나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이어서 미처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겠다는 욕구도, 하지 않으리라는 의지도 없었다. 인생은 역시나 뜻대로, 아니 뜻을 품지 않은 대로도 되지 않는다. 우주의 섭리가 과연 그런 듯. 그런 나에게 연인이 생겼고, 그 사람이 지금의 아내가 되었다. 처음 만남부터 지금까지 늘 행복했을 리 없다. 신혼 초, 나는 더 서툴렀고 그래서 많이 다투었다. 다툼은 고통을 수반한 상호 이해의 계기가 되었다. 아이의 존재가 몇 번의 심각한 균열 위기에 강력한 접착제가 돼주었다. 세월이 켜켜이 쌓였고 이제 우리 내외는 좀체 다투지 않는다. 공고해진 가족의 유대, 뜻밖에 주어진 행운에 하루하루 감사해하며 살고 있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시청역 개찰구 앞에 파란색 재킷을 입은 웬 중년 아주머니가 목청을 높여 무언가 외치고 있다. 주변에 무리도 없이 혼자서 혈혈단신. 내일 투표일이라 막바지 선거운동 중이겠거니, 으레 짐작했다. 가까워지면서 보니 아주머니 두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섰다. 도대체 어떤 후보의 지지자이기에 저렇게 열성적이다 못해 처절한 응원을 보낼까. 전선에 마지막 남은 단 한 명의 병사처럼. 직장인들 출근길 바쁜 공기를 애써 가르는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다. “저는 서울시장 후보 OOO 씨 아내입니다! 시민 여러분께 소중한 한 표 꼭 부탁드립니다!” 주변에 자판기라도 있었으면 시원한 배 음료 하나 뽑아서 건네 손에 쥐어드리고 싶었다. 저는 서울시민이 아니라 유권자가 못 됩니다만 시장 벼슬 아니어도 후보님은 이미 성공한, 행복한 분이십니다, 덧붙이며. 가족, 부부의 의미, 산다는 것에 대해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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