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말씀하셨지, 내가 럭키보이라고.

by Hoon

나는 지지리 운도 없었다. 소풍 가서 하는 보물 찾기에서 이렇다 할 상품 한 번 타보지 못했다. 어쩌다 찾아내서 펴 봐도 ‘꽝’이었다. 동전 넣고 레버를 돌리면 밑으로 플라스틱 캡슐이 떨어지는 자판기가 있다. 밤송이 쪼개듯 열어 안에 든 장난감을 확인한다. 매번 저것만 아니면 돼 하는 게 걸린다. 슈퍼에서 완구가 동봉된 과자를 산다. 어머니는 그런 것일수록 내용물이 부실하다며 못 사게 하셨다. 상자를 까 보면 여지없이 이미 있는 똑같은 것만 나왔다.


그런 내가 운이 좋단다, 어머니는. 논거는 이렇다. 어릴 적 내가 아프거나 긴히 돈 들어갈 일이 생긴다. 그러면 마침 딱 필요한 때에 아버지에게 가외 수입이 들어온다. 딱 그것 지출하고 남지 않을 정도로만. 덕분에 살림살이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고 소회하신다. 신심이 깊은 어머니는 이런 해석까지 덧붙인다. “주님이 필요한 만큼만 주시더라.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게.”


난 친구를 넓게 사귀지 못한다. 가까운 몇 사람 하고만 밀도 있게 교제한다. 나이 들면서 그 층위를 구분 짓는 요령도 생겼다. 이쪽 사람들과는 이 정도까지만, 저쪽 사람들과는 좀 더 넓게 오픈.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도 아니어서 드물게 상처도 받았다. 난 여기까지 보여주는데 넌 아니구나. 어렵게 털어놓은 말이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친교의 폭은 자꾸만 좁아진다.


나의 행운에 대해 체감한 건 한참 나중이다. 금전과는 관계 없다. 사람에 관한 것이다. 좋은 사람이 필요한 때에 때마침 나타나 주었다.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학교 진학할 때마다 그랬다. 군대에서도 있어서 후임병 두엇과는 지금도 왕래한다. 복학 이후 캠퍼스 생활 막바지, 더는 새로운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뜻밖에 같은 취업 목표를 가진 친구들을 만났다. 기적적으로 회사에서도 있었다. 전 직장 선후배 소수와는 요즘도 틈틈이 만난다. 중년에 들어서며 이제 정말로 없겠지 싶었는데 웬걸, 대학원에서 만학의 뜻을 펼치며 또 좋은 이들과 만나게 되었다.


‘던바(Dunbar)의 수’라는 게 있다.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 씨가 연구했는데 우리 인간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다. 최대 150명까지다. 침팬지 같은 영장류는 스무 마리 남짓이란다. 잘은 모르겠지만 두뇌의 용적이나 대뇌 피질의 수치적 특성에 따른 것이란다. 근데 더 최근의 연구에선 그것도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스웨덴 어느 대학에서는 어떤 통계적 방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500명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쪽이든 난 아니다. 나는 150은커녕 열다섯도 용량 한계치인 인간이다.


영국과 스웨덴 두 나라 공붓벌레들의 주장은 결국 같은 맥락이다. 사람이 관계할 수 있는 대상의 폭은 한계가 있다. 저마다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숫자가 작은 사례다. 지나온 삶을 돌아본다. 중학교 올라갈 때 집이 이사하는 바람에 같은 국민학교 졸업한 친구가 없었다. 제로 세팅에서 출발하니 새로 친구가 얼마간 생겼다. 고등학교 진학하면서는 중학교 친구가 더러 있었다. 새 친구는 비교적 많이 만들지 못했다. 대학교 들어가면서 중고등학교 동창 몇과 멀어진다. 그만큼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 사회로 나오며 또 멀게 된 친분도 있다. 줄어든 만큼 다시 채워졌다. 신기하게도, 요행히도. 어쩌면 모친의 믿음처럼 신의 가호 덕분에.


애당초 많은 이들을 품을 마음의 그릇이 되지 못했다. 종지만 한 데에 물을 담으면 살짝만 흔들려도 넘쳐서 흐른다. 가뜩이나 담기도 어려운데 오래 유지하기란 더 정성스럽다. 나를 흔들어서, 내가 흔들려서 퉁겨진 인연도 많다. 든든한 반석 위에 미덥게 모셔두었다 싶었는데 이내 흔들려서 흘러넘친 사이도 있다. 거기서 끝났으면 그야말로 불행이었을진대, 많지 않지만 천만 다행히 다시 채워졌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재작년 해외 주재원으로 나간 대학 동기가 이달 말 열흘 남짓 일시 귀국한단다. 그중 어느 하룻저녁만 비워주면 모여서 친구들 얼굴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나이 들면서 아무 모임에나 줏대 없이 휘둘리며 억지로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경우는 당연히 ‘아무 모임’이 아니다. 가족 친지, 소중한 지인들 보기에도 빠듯한 일정, 기꺼이 하루 시간 내어 보자는 데 아무래도 거절할 재간이 없다. 동기 녀석의 ‘던바의 수’, 그중에서도 특별히 엄선된 숫자 안에 우리 친구들이 있다는 게 기특하고 고마워서다. 그날 그 자리에 나가면 내 행운이 여전히 유효한지 오랜만에 가늠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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