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차휴가를 냈다. 하루 여덟 시간 근무, 그중 절반을 오전과 오후 중 선택해서 일하고 나머지는 휴무다. 오전보다 오후 반차를 선호한다. 오후 반차면 본래 오전 아홉 시 출근해서 열두 시까지 세 시간 근무, 열두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 점심시간, 오후 한 시부터 두 시까지 한 시간 마저 일 하고 네 시간 채워서 퇴근이다. 탄력근무가 인정된다. 대개는 조금 일찍 출근해서 점심 안 먹고 사무실에서 빠져나간다.
삼십 분 일찍 출근해서 점심 안 먹고 자리를 지키다 열두 시 반쯤 회사를 나왔다. 남들 점심 먹으러 나간 시간, 먹고 들어와서 일해야 하는 무리들 사이를 가르며 전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학창 시절 눈병이나 배탈 나면 수업 중에 번쩍 손을 든다. “선생님, 저 양호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정식적인 허가를 득하고 양호 선생님을 알현한다. “병원 가봐야겠네, 조퇴계 써줄 테니까 엄마한테 말씀드리고 얼른 병원 가렴.” 양호 선생님 새하얀 가운 자락이 천사의 날개 같다. 병원 안 가도 그 순간 씻은 듯 낫는다. 친구들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빠져나가던 기분. 그때와 비견할 만하다.
전철 승강장이 한산하다. 저어기 끄트머리 벤치에 한둘, 안전문 앞에 선 사람이 두엇이다. 몇 시간 전 출근길에 개찰구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긴 줄 늘어선 풍경과는 딴판이다. 그 많던 사람들이 지금쯤 모두 요 근처 회사, 직장,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겠지. 노동자의 연대를 깬 오늘의 일탈이 공연히 미안하다. 오늘은 중요한 사정이 있어서, 먼저 집에 갑니다, 힘내요, 직장인들. 띵띵띵띵~, 잠시 후 홈 스위트홈 행 열차가 도착합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저녁 퇴근 때에도 이렇게 처음부터 앉아서 가면 얼마나 좋을까. 객실도 텅 비었다. 구석 가장자리를 탐하는 것은 현대인의 유전자에 새겨진 오롯한 본능. 맨 끝 자리로 여유롭게 가서 앉는다. 한쪽 팔걸이에 팔뚝을 올려 의탁한다. 나름 편안한 자세를 위한 연출이다. 상완 삼두근 밑으로 쇠붙이 닿는 느낌이 선득하다. 무선 이어폰을 꺼내 귀에 찌른다. 어제 퇴근길에 듣다 만 부분에서 다시 재생. 가수 김현철 씨의 「오랜만에」라는 곡이 흐른다. 시티 팝(City pop)이라는 장르의 노래다. 도심 대중교통 안에서 듣는 맛이 제격이다.
어둑한 지하를 벗어나 지상 구간으로 나아간다. 출근길 만원 전철 안에서도 지하보다는 지상 구간이 덜 답답하다. 휴대전화에서 잠시 시선을 거둔다. 차창 밖을 휘 둘러 패닝한다. 비는 오지 않는다. 장마 전선은 아직 남해상에 있다. 중부 수도권으로 북상하려면 조금 더 걸릴 것이다. 구름 사이로 환한 빛줄기가 발을 내린다. 한강 물살도 아직은 잠잠하다. 장맛비가 내리면 저 짙은 군청색 강물도 황토 빛으로 변하겠지.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주변 시야에 담기는 맞은편 차창 밖 풍경이 이채롭다. 일순 불안한 기시감이 엄습한다. 내가 타고 다니는 전철은 전혀 다른 두 곳이 하행선 종착역이 되는 노선이다. 행선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탑승하면 큰 낭패를 본다. 한참 타고 가다 분기점이 되는 역까지 되돌아와야 한다. 막차 시간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아주 난감하다. 택시비로 아까운 지출을 감내해야 한다. 한 번은 스스로가 아주 한심했다. 한 번 잘못 탔다가 되돌아왔는데 또 잘못 탔다. 두 번째 돌아와서 세 번 만에 제대로 집으로 가는 전철에 올랐다. ‘칼퇴’에 성공하면 뭐하나, 평소보다 훨씬 더 늦게 귀가했다. 머리통을 거푸 쥐어박았다.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이 약이 올랐다. 바로 그런 기분이 들어 객실 천정에 붙은 안내 화면을 쏘아보았다. 어, 맞게 탔는데! 이 생소하고 생경한 기분은 무엇?
매일 두 번씩 오고 가는 길, 십여 년 간 수천 번도 더 오갔을 길이 새삼스럽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상점가, 다른 색깔 노선 전철이 마주 달리는 한강 다리, 그 밑으로 뻗은 자동차 도로, 저기 언덕배기 빼곡한 아파트며 주택 단지가 유달리 낯설게 보인다. 왜 때문일지 추리한다. 아, 만원 전철에서 사람이 빠지니까 창밖 풍경이 온전히 보이는구나. 콩나물시루 같은 출퇴근 전철 안에서 담기는 시각 정보는 빤하다. 앉으면 앞에 선 사람 바지춤이나 치마, 서면 앉은 사람 정수리다. 창밖 풍경도 바로 정면 제한된 시야까지만 이다. 이차원적 풍광이 빠르게 흘러가니 무얼 보고 담을 새라는 것도 없다. 회사 아니면 집, 목적지만 선명하다. 그런 길에 사람이 없고 여백이 늘어 정면뿐 아니라 넓게 시선을 둘러 다차원적인 정보가 들어오니 새롭다 못해 낯설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정적인 사람, 동적인 사람. 돌아다니는 것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가만히 집에 있는 게 체질인 사람. 난 나돌아, 싸돌아다니는 걸 무척이나 즐긴다. 여행을 좋아한다. 대학 시절 큰돈 드는 해외 배낭여행은 아니어도 내 나라 산하를 방방곡곡 돌아다녔다. 직업도 엇비슷한 맥락으로 구했다. 사무실 내근보다 현지 출장이 갑절은 많았다. 첫 직장 시절 얘기다. 지금은 책상 업무 위주다. 이따금 궁둥이가 들썩이는 까닭이다. 이렇게 승객 없는 전철을 타고 백주대낮을 달리려니 역마살이라도 붙은 듯한 옛 시절이 생각난다.
반차휴가의 사유는 이랬다. 일이 바빠서 하루 온전한 휴가는 못 내겠고, 장맛비 내리기 전에 세 식구 어디 교외로라도 다녀오고 싶고. 그렇게 이른 시간 집으로 가는 길인데 웬걸. 이렇게 전철에서 여행 가는 기분 만끽했으면 뭐 따로 안 가도 되겠는데? 누군가 그랬다잖은가. 공항인지 터미널인지 가는 동안 너무 설레고 좋아서 여행지 도착해서도 이런 기분일까 싶고 이미 여행의 즐거움 다 누린 거나 다름없어서 그 길로 돌아왔다고. 그럴까도 싶지만 그랬다간 나보다 더 활동적인 우리 따님 아빤 약속도 안 지킨다고 성화일 게 명약관화, 떠날 건 떠나기로. 직장인 여러분, 바쁘신 가운데 어디 먼 데 못 가셔도 가끔 오후 반차휴가 내시고 텅 빈 전철이나 버스 타고 집으로 가는 이색적인 풍광, 마치 여행 떠나는 그 기분을 느껴보시길. 그렇잖아요, 우리가 어디 꼭 좋은 데 안 가도 회사 벗어난다는 사실 그것 자체가 얼마나 경이롭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