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작곡가이자 방송인이 그의 음악 창작물을 두고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나는 믿지 않았다. 반신반의도 아니었다. 동영상 플랫폼의 인공지능은 경탄할 지경이다. 작곡가의 문제곡과 원곡을 비교한 짧은 영상을 한 번 클릭했을 뿐이다. 따로 검색어를 입력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싹 다 끌어와서 다음 동영상으로 들이 민다. 이건 어때? 그럼 이건 어떻고? 내가 작곡가라면 혐의의 진위와 상관없이 엄청난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감상의 결과는 어떠했느냐. 단번에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이건 그냥 느낌과 분위기 정도만 비슷하네. 음, 이건 특징적인 구간만 닮았고 나머지는 많이 다른 것 같은데. 오, 이건 전주 멜로디가 빼다 박았는데? 마음의 무게추가 피아노 위 메트로놈처럼 까딱거렸다. 그러다, 전문적 식견에서 다룬 영상을 보았다. 마음속 메트로놈 바늘이 느리고 무겁게 한쪽으로 넘어간다.
분석자의 견해는 이러하다. 대개 표절이라고 하면 노래의 가락, 곡조의 전개나 코드 진행의 차용을 말한다. 비교적 유사성을 알아차리기 쉽다. 한데 본 작곡가는 고단수다. 어떤 곡은 언뜻 들어선 그냥 비슷한 정도의 노래 같다. 선율 아래 깔린 반주를 분석하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단다. 악기의 배치, 리듬 패턴의 구성, 파형으로 그린 피치(pitch)의 반복이 원곡과 높은 수준으로 닮아있단다. 기술의 발달은 흉악 범죄 수사에만 가능성을 열어주지 않았다. 컴퓨터를 사용해 원곡의 반주 위에 작곡가 노래의 멜로디 라인을 올린다. 한 부모에게서 난 형제처럼 닮았다.
전문가와 나의 이해가 모두 오해의 소산이길 바란다.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억측으로 판정되길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배신의 칼날이 나도 찌를 테니까. 나의 청춘, 리즈시절이 송두리째 부정될 테니까. 나도 결국 거짓을 탐닉한 한심한 사람이 될 테니까. 그의 음악은 나의 10대와 20대였다. 30대를 지나 중년이 된 지금도 유효하다. 삼면이 막힌 독서실 책상에 고개를 묻는다.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나오는 그의 노래를 듣는다. 그렇게 나는 스무 살을 동경했다. 스물몇 살 실연의 아픔은 그의 음악 없이 술로만 달래지 못했을 것이다. 사회인이 돼서 듣는 그의 음악 세계는 고단한 일상에 포근한 안식처가 돼주었다.
나는 전문 음악인이 아니다. 다만 음악 저작물에 대한 충성적 소비자로서 말하고 싶다. 대중음악 분야에서의 표절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한 논쟁 속에 내 생각은 이렇다. ‘장르’ 안에 귀속되면 표절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그저 같은 장르네, 하고 인정할 수 없으면 표절인 것이다. 장르의 레벨에서 한 단계 내려온다. 일정 구간 이상 비슷한 멜로디, 코드 진행과 리듬이 반복되면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슈퍼맨과 헐크가 모두 초인이라고 해서 모방작일 수 없다. 외계 행성에서 온 금발 미남이 가슴에 영어 알파벳이 새겨진 쫄쫄이 옷과 망토를 입고 악당을 물리치면 그때부터 혐의를 의심받는다. 비슷한 인물이 등장하더라도 패러디의 의도가 없이 원작을 빼닮은 주제 의식을 가진다면? 그건 분명한 표절이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창작자의 마음 안에 있다. 그런 점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작곡가의 반응은 실망스럽다. “긴 시간 가장 영향받고 존경하는 뮤지션이기에 ‘무의식’ 중에 저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라는 대목. 거기서 나는 의심을 더 꼭 쥐게 됐다. ‘무의식’은 말 그대로 나도 모르게 저절로 그렇게 됐다는 말이다. 한데 그렇게 오랜 시간 흠모하던 대상에게서 온전히 의식을 거둘 수 있을까.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찰나에 잠깐 스쳐 들은 것이 나도 모르게 오선지에 섞여 나왔다, 그럴 때에나 무의식이 성립한다. 차라리 “나에게 그는 단순히 닮고 싶은 뮤지션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장르’였습니다. 그 안에서 내가 가진 재능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여겼습니다. 그 판단이 잘못됐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의 음악을 사랑해준 많은 팬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작곡가인 그는 참 많은 음악을 세상에 내놓았다. 탤런트를 받은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지금의 논란도 그가 최근 제한된 시간 안에 새 음악을 거푸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불거졌다고 들었다. 그러지 말 것을. 몇 달, 몇 해가 걸리더라도 무의식의 차원 안에서도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완전히 처음 듣는 음악을 그가 만들었더라면. 그의 음악을, 그가 외국의 음악가를 동경했던 시간만큼이나 오래 애호했던 팬으로서 아쉽다. 아직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이 남아있기를, 너무 늦은 것이 아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