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통신과 인터넷

by Hoon

나는 아재, 아저씨이기를 감추지 않는다. 감추어 지지도 않는다. 그것이 이따금 뿌듯할 때마저 있다. 초중고 졸업하며 긴장감 최고조인 수능 치러서 대학 입학, ‘먹고 대학생’ 생활 좀 할라치니 군입대, 26개월 만기 전역해서 복학, 취준생 시절 견디고 마침내 취업, 회사 다니다 인연 만나서 장가들고 아이까지. 열심히 살아서 지금의 나이가 됐기에 부끄럽지 않다. 보통 빠르기의 노화는 포기하지 않은 삶의 확실한 증거다. 중도에 그만둔 인생에 노화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억지로 어리게, 젊게 뵈도록 꾸밀 이유가 없다.


외모보다 내면의 노화를 부정하는 이들을 더 기피한다. 왜 그런 사람들은 회사에 유독 많을까. 난 젊어, 옷 스타일뿐만 아니라 사고방식도, 난 개방적이야, 나처럼 젊은 직원들과 수평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봐봐, 내가 물어보니까 다 대답하잖아, 난 일방적으로 내 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상급자일수록 그것이 권력의 소산임을 도통 모른다. 내가 뭘 알겠니, 젊은 너희들이 잘 상의해서 나한테 알려주라, 책임은 내 몫이니까 그건 나에게 맡기고, 아, 정무 감각이 필요한 건 내가 조금 도움이 되겠다, 그럴 땐 아무 때고 날 찾으렴, 하는 상사가 외려 훨씬 젊어 뵌다.


MZ세대 후배들과 잡담을 나눴다. 점심 먹고 회사 돌아오는 길, 실상은 그들끼리의 대화에 밥 사준 선배도 끼워준 것이다. 도의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리액션까지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회사 전산망 사용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인터넷 브라우저에 따라 어떤 메뉴는 접속이 안 되는 게 있단다. ‘크롬’과 ‘엣지’가 각각 어떤 건 열리고 다른 건 안 되고 그렇단다. 난 그러려니 하고 쓰는데 너희들은 그게 못 견디게 불편하구나. 회사에서도 알고 조치 중에 있단다. MZ세대들이 세상의 변화에 일조한다는 건 참인 명제다. 그것이 모두 옳은 방향인지는 아저씨로서 더 두고 볼 터.


“얘들아, 나 대학교 새내기 시절 1학기 교양 필수 강의 이름이 뭐였는지 아니?” 고개만 갸웃한다. “아, 새내기라는 말 요즘도 쓰긴 하나? 강의명이 뭐였냐면 「PC 통신과 인터넷」이었거든.” 풉! 그게 모예요?! 하는 반응이다. 실제로 그랬다. 똑똑히 기억한다. 나의 기억력이 가장 또렷한 시기였고 아직 메모리가 지워지지 않았으므로.


1학년 1학기 2학점짜리 교양 필수 과목이었다. 학기 전반부는 PC 통신에 대해 익힌다. 새로 배우는 것보다는 이론적 체계를 다시 확인하는 정도다. 굳이 왜 싶지만 당시엔 의심을 품지 못했다. 당시 많은 대학생이 이미 고등학생 시절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 통신은 익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후반부 커리큘럼이 본편이다. 그 이름도 장엄한 ‘인터넷’에 대해 배운다. 지성인의 총아, 지식의 상아탑, 대학생 신분에 걸맞은 교양과 품위를 가지려면 정보의 바다 인터넷쯤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라떼는 그랬단다, 하며 말을 이었다. 「PC 통신과 인터넷」 강의가 있는 5월 어느 날 오후, 단과대 2층 컴퓨터실에 동기생들이 모였다. 오전 전공 필수 강의 때보다 머릿수가 빈다. 점심 먹으러 중국집 갈 사람~, 하며 몇몇 엄지를 들더니 짬뽕 국물에 싸구려 고량주 곁들이느라 오후 강의는 자체 공강인가 보다. 나도 따라갈 걸, 후회는 늦다. 강의 시작이다. 모교 컴퓨터 공학과 박사 과정쯤으로 보이는 강사가 단상에 오른다. 여러분 수업 준비 다 되셨나요, 출석 부를게요. 네! 네~, 중간중간 대리출석이 시도된다. 알면서 봐주는 게 분명하다. 그도 불과 몇 해 전 우리처럼 학부생이었을 텐데. 선배의 아량이다.


“자, 여러분! PC는 다 켜셨죠? 바탕화면에 보면 영어 알파벳 N과 E처럼 보이는 것 두 개가 있을 거예요. 웹 브라우저라고 부르는 것들인데,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죠. 둘 다 크게 다르지 않은데 오늘은 ‘넷스케이프’라는 걸 먼저 써볼게요. 이제 알파벳 N처럼 생긴 아이콘을 더블클릭해주세요~.” 우리는 말 잘 듣는 학생들, 주입식 교육의 숙련자들이다. 강사의 주문대로 착실하게 마우스 왼쪽 버튼을 딸깍딸깍 두 번 누른다. 강사가 이어서 말한다. “자, 아직 못한 분 없으시죠? 화면이 다 열리는데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남학생들은 2층 테라스에 나가서 담배 한 대 태우고 오세요. 여학생들은 커피 한 잔 뽑아 와도 괜찮아요~.”


라고 했다고 후배들한테 말하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는 표정이다. 광속 인터넷, IT 강국 코리아가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란다, 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픈’ 과거지만 그땐 그게 현실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PC 통신과 달리 인터넷은 좀 느린 것, 당연했다. 통신은 파란 바탕에 흰색 글씨와 간단한 도형, 그걸로 조합한 절묘한 그림이었다. 뚜뚜뚜뚜 모뎀 접속만 잘 되면 그다음부턴 페이지 넘어가는 데 큰 인내심이 필요하지 않았다. 인터넷은 다르다. 첫 화면부터 온갖 활자에 작은 사진도 나온다. 강의실을 빠져나가며 생각했다. 멀뚱히 기다리지 않고 자투리 시간까지 수강생들의 편의를 봐주는 강사, 컴퓨터 공학과 형님 참 센스 있는 양반이네.


지금 들으면 온통 이상한 이야기다. 모뎀이 뭔지도 모르는데 PC로 통신이라는 걸 했다고? 그거 한두 달 배우면 그다음엔 인터넷이라고? 그걸 대학교에서 필수 과목으로 가르친다고? 웹 브라우저 중에 ‘넷스케이프’라는 게 있었다고? 그걸 시작하면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담배 피우고 오라고 할 정도로? 가만 남학생들한테만 그러라고 하고 여학생들은 뭐 커피? 그 강사 젠더 감수성 어쩔?!


“와, 팀장님 대체 어떤 시대를 살아오신 거예요?” 후배들이 농담 섞어 묻는다. 인류의 문명이 막 태동하던 시절부터 살았지, 너희들 왜 <맨 프럼 어스>라고 영화 아니? 오래오래 살아서 죽지 않는 사내에 대한 얘기인데, 그거 내 얘기라고 보면 돼, 크크. 그렇게 회사로 돌아왔다. 오후 업무 시작! 아, 군대 휴가 나왔을 때 대학 후배가 “오빠, 주소가 어떻게 돼요?”하고 묻는데 태연하게 집 주소를 댔다는 얘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진짜 불멸의 아재로 볼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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