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팀 내 확진자 발생

by Hoon

나는 나를 잘 안다. 겸손하게 ‘비교적 잘 안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것도 진실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각자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잘 안다는 것은 자기 멋대로, 그러니까 주관적 해석이 아니라는 말이다. 남들 여럿이 나를 보는 시각과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비슷한 것, 객관의 의미와 가깝다. 그것 역시도 타인과의 비교는 어렵다. 나는 나를 객관 수치 8.5만큼 이해하는데 너는 어떠니? 그런 비교는 세상에 없다.


어떤 대상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자기만의 해석이 없이 객관적 이해가 높다는 것이다. 한데 그것이 자기 인식에도 오롯이 통하느냐. 그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객관적이란 말 그대로 타인이 보건대, 라는 뜻인데 그렇다고 남들이 나를 정말로 잘 아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우리들의 사춘기 시절 일기장에 “아무도 내 마음 몰라!”하는 푸념은 없었어야 한다. 남들 아무도 모르는 진짜 내가, 나만 알 수 있는 자기 자신도 분명히 있다. 그리하여 ‘나는 나를 잘 안다’라는 말에는 나는 다수의 타인이 바라보는 나와 그들도 모르는 은밀한 나를 모두 아울러서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나 자신을 대상화하여 인지한다는 장황한 뜻이 숨었다.


나는 아주 훌륭한 인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 형편없는 인간도 아니다. 충실한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이를 수치화해보자. 천하의 악인을 0, 세상없는 호인을 5로 두자. 나는 3.7쯤 될 것이다. 선하디 선해서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절대로 화내는 법이 없는 사람은 나와 멀디 멀다. 그렇다고 안하무인에 끝 간 데 없이 이기적인 놈도 결단코 아니다. 실은 좀 개인주의적이고 결벽적인 기질은 있다.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그들로부터 피해를 입는 것도 아주 싫어한다. 사람으로서의 온기, 인간미는 어떠하냐. 사회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연민과 동정, 공감능력은 가지고 있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 과단성 있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미움을 사는 일도 더러 있다.


전언이 길었다. 팀에서 뒤늦게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그동안 팀 안에서 큰 확산세 없이 아슬아슬 잘 견뎌왔다. 몇 달 전 확진된 팀원이 하나 있긴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해당 팀원이 마침 휴가 중이었다. 당시는 2주 격리가 방역 원칙이었던 시기, 휴가에 덧붙여 격리 휴무를 부여하는 것으로 다른 부서원으로의 감염을 막을 수 있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했고 업무적인 영향은 없었다. 사실 길고 길었던 팬데믹 동안 열 명 남짓 팀원 중에 겨우 한 명 확진자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결과다. 그만큼 구성원 모두가 사적 만남을 자제하고 방역을 위한 기본 원칙에 충실했다는 뜻이다.


여느 때 같은 출근길인데 팀원 W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예, Hoon입니다.

-팀장님, 저 W입니다. 이른 시간에 전화드렸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주말 동안 컨디션이 안 좋아서 방금 코로나 진단키트 해봤는데 두 줄이 떴습니다. 아무래도 양성인 것 같은데 팀장님께 먼저 말씀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그래? 큰일이네. 알았고, 출근하지 말고 병원 문 여는 대로 가서 다시 검사받고 연락해줘라. 가만, 너 혹시 직원 중에 최근에 같이 마스크 벗고 밥 먹은 사람 있냐?


기억을 더듬더니 팀원 두엇과 점심을 먹었단다. 병원 검사 결과 나오는 대로 알려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무념무상의, 그래서 평화롭던 출근길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제 앤데믹 무드인가 싶어서 한 시름 놓았는데 시련은 늘 뒤에서 등을 찌른다. 확진된 팀원이 하필 또 허리 연차쯤 업무 중요도가 높은 인원이다. 막내 후임 같으면야 아닌 말로 너 당장 없어도 업무에는 큰 차질이 없단다, 몸 잘 추스르렴 할 테지만 그것도 아니다. 게다가 다른 팀원과 밥도 먹었단다. 가뜩이나 업무 공백이 걱정인데 점심은 또 왜 같이 먹어갖고는. 확진자 나오면 총무팀에 즉시 공유하랬지? 그전에 본부장한테 보고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다른 팀원들한테도 다 검사받아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밥 먹었다는 두어 명한테만 지시하면 되나.


사고를 정리한다. 조직은 보고가 생명이다. 이른 시간이지만 본부장에게 먼저 전화를 건다. 팀원 아무개가 감염병 증상이 있고, 자가 검사 결과 양성이어서 병원으로 향하는 중이다. 같이 식사하는 등 밀접 접촉한 직원도 있어서 그들한테도 먼저 진단키트 검사를 지시할 셈이다. 여차하면 다른 팀원도 전원 검사받아보라고 하겠다. 이 통화를 마치면 총무팀장에게도 바로 전화할 것이다. 일전에 총무팀에서 보내온 메일에 있는데 확진자는 일주일 자가 격리가 원칙이라고 돼있다. 확진 판정받은 인원들은 출근 없이 일제 격리 지시하겠다. 업무 공백이 전혀 없을 수 없겠으나 남은 팀원들과 상의해서 최대한 커버하겠다. 걱정스러우시겠지만 너무 걱정 안 하실 수 있게 잘 수습하겠다. 이상 내용은 다른 본부원들도 알 수 있게 단체 톡방에 공유하겠다. 본부장과 통화한 대로 실행하면 된다.


출근해서 컴퓨터를 막 켜려는데 다른 팀원 Y에게서 전화가 온다. 팀장님, 하고 부르는데 느낌이 싸하다. 무슨 일이냐 물었다. 방금 진단키트에 두 줄 나와서 병원 갔는데 확진 판정받았단다. 의사가 일주일 출근하지 말라고 하더란다. 그래, 올 것이 왔구나. 너도 걸렸구나. 알았다, 하고 끊었다. 본부장께 추가 확진자 발생에 대해 보고하고 총무팀장에게도 알렸다. 나머지 팀원들과 업무 분담에 대해 다시 얘기했다. 이번 주 정말이지 잘 버텨야겠네, 싶었다. 이럴 때일수록 의연하게 대처하겠노라 마음 다잡았다.


다음날 출근길에 팀원 C가 전화를 걸어온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가수 이승환 형님의 노랫말이 있기 전부터 우주의 작동 원리가 그랬다. 어, C 넌 왜? 팀장님, 저도.. 까지 들었는데 뒤 얘기는 안 들어도 알 것 같다. 하.. 그랬구나, 그렇구나. 알겠다, 너도 일주일 격리하고 다음 주에 출근해라. 두뇌 활동에 살짝 과부하가 걸린다. 지금까지 확진자 세 명, 이건 이렇게 메우고 저건 쟤한테 맡기고, 그건 그렇게 처리해야겠네. 본부장 보고 및 인접 부서 연락은 출근해서 하기로.


출근해서 계획한 대로 실행하고 본격적으로 업무 시작하려는 찰나! 이번에는 팀원 J 전화다. 아, 이러지 마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말라고! 이건 아니잖아!

-(짜증을 섞어서) 어 팀장인데 J 왜??!!

-팀장님, 지금 병원 가서 검사받았는데..

-확진됐다고????


알았다, 하고 짧게 통화를 끝낸다. 끝에 팀원 J가 “팀장님, 죄송합니..”까지 얘기했던 것 같은데 이미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는 중이었다. 아, 무려 네 명 확진이라니. 지축이 흔들리고 대기가 들썩인다. 일순 짜증이 일었다 한숨으로 화한다. 야, 접자 접어. 안 되겠다 이거는. 한 번에 네 사람 빠지면 뭐 일을 어떻게 돌리라는 거야. 못 해. 안 해. 내가 뭐 업무의 화신도 아니고. 여남은 몇 명 데리고 날더러 어쩌라는 거야. 으이그 이것들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까지 머릿속 혼잣말이 흐르는 걸 중간에 끊어낸다. 아니지, 이건 좀 심하지.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경우에 맞지 않지. 팀원들이 일부터 병에 걸리려고 걸린 것도 아니고. 적어도 그건 아니겠지. 그런 신뢰마저 무너지면 아예 같이 일 못한다고 봐야지. 그건 회사가 아니라 지옥이지. 증상이 크든 작든 몹쓸 병 걸렸다는데 몸부터 챙기라고 위로해줘야지. 그게 먼저지. 가만 근데 내가 애들이랑 통화 어떻게 했더라. 처음에 W는 아니었고 Y까지는 잘 참았던 것 같은데. C에서 조금 짜증 났던 것 같고 J한테는 성질 확 부렸나.


이게 나다. 그러지 말걸 해봐야 후회는 늦다. 늦은 후회는 무용지물이다. 확진된 팀원 모두에게 그래서 아픈 데는 없느냐, 지금 많이 아픈 건 아니냐, 쉬면서 회복 잘해라, 다음 주에 건강한 몸으로 보자, 할 것을 뒤늦게 혼자 중얼거려 봐야 공염불이다. 역시 난 썩 훌륭한 인간이 못 된다. 회사에서 특히 더 그렇게 된다. 먹고사는 문제, 돈이 걸려서 그런 것이겠거니. 하릴없는 까닭을 붙인다.


팀 단체 톡방에 짧게 글을 올릴까 싶다. “기어이 팀에서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천문학적 확률을 뚫고 버텨준 것만으로도 팀장으로서 고맙습니다. 확진된 팀원들은 더 큰 증상 없이 회복해서 일주일 뒤에 건강한 모습으로 봅시다. 나머지 팀원들이 격리된 팀원들 몫까지 크게 수고해줘야 할 걸로 압니다. 힘들겠지만 팀장으로서 수고해달라는 말밖에 보탤 것이 없습니다. 확진된 팀원들도 도의적으로 미안한 감정을 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부러 감염병에 걸리려는 사람은 없겠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남은 사람들이 내 몫까지 더 짊어져야 하니까 말입니다. 그런 마음이 든다면 더 잘 치료하고 회복해서 문제없이 업무 복귀해주길 바랍니다. 팀장이 여러분들 몫까지 혼자서 다 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모쪼록 애써봅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PC 통신과 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