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도둑맞는 꿈, 그리고 감염병

by Hoon

나는 미신을 믿지 않는다. 사주팔자, 토정비결이나 신점 따위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그 어떤 샤머니즘도 부정한다. 물론 그것들에 정서적 의존을 가진 이들을 존중한다. 내가 아니라는 것이지 타인의 기호까지 간여할 생각은 없다. 불안한 삶 속에서 실낱같은 위안이 될 수도 있을 터. 나름대로의 순기능을 인정한다. 그것에 지배되거나 종속되지 않는 선에서.


그런 나인데도 간밤에 꾼 꿈은 이따금 신경이 쓰인다. 꿈의 예지적 기능을 믿는 걸까. 일어났는데도 묘하게 기억에 또렷한 꿈들이 있다. 그러면 아무도 몰래 스마트 폰을 집어 든다. 똥 밟는 꿈, 불나는 꿈, 대통령 만나는 꿈 등등 검색어를 입력한다. 어지간하면 조회되지 않는 꿈이 없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고 그걸 친절하게 일일이 해몽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소리다.


며칠 전 꿈을 꿨다. 나는 스니커 헤드(Sneaker head)다. 학창 시절의 추억 때문에 운동화를 사 모은다. 한 번도 신지 않고 애지중지하는 것도 많다. 꿈에서 집에 도둑이 들었다. 귀중품이랄 것도 없는 집인데 물색없는 도둑일세. 웬걸, 그 도둑 나랑 취미가 같은지 내 운동화만 잔뜩 훔쳐갔다. 귀신 같이 알아서는 소장가치 있는 것만 쏙쏙 빼갔다. 멘털 붕괴. 이를 어찌해야 하나.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할까. 신고하면 찾을 수나 있을까. 발만 동동 구르다 잠에서 깼다.


꿈이었구나. 의식이 현실로 넘어오며 큰 안도감을 느낀다. 아무 일도 없는 거지. 내 운동화들 잘 있는 거지. 꿈꾸면서 눈물까지 흘린 건 아닌지 눈가를 훔친다. 은근한 물기가 있는 것이 설마 진짜로 울었..? 나만 아는 비밀로 영원히 봉인한다. 신발 도둑맞는 꿈. 특히 나에게는 충격적일 정도로 의미가 남다르다. 스마트 폰을 주섬주섬 찾는다. 신, 발, 도, 둑, 맞, 는, 꿈. 톡톡 자판을 두드린다.


이런. “신발 도둑맞는 꿈. 사회적 지위가 약화되거나 배우자나 연인 사이에서 불화가 생길 것을 암시합니다. 또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징조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세상 이런 흉몽이. 차분히 짚어보기로 한다. 음, 사회적 지위는 원래 없던 것이니까 나빠질 게 없겠고. 배우자와 불화라면 다투고 싸운다는 뜻인데 그건 좀 확률이 있을 수 있겠다. 근데 우리 부부 싸움의 주된 원인은 내 쪽에서 제공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다. 최근에 내가 뭐 잘못한 거 없는지 따져본다. 아닌데, 별거 없는데. 새 운동화 산지도 꽤 됐는데. 남은 건 하나다. 배신을 당할 징조!!


내 등에 칼 꽂으려는 자 누구냐. 배신을 당하려면 앞서 깊은 신뢰가 있어야 한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 고등학교 동창 녀석들, 대학교 동기들, 전 직장 선후배 몇, 대학원 동문들. 여러 좋은 이들을 용의 선상에 올려본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 친구가, 그 형 누나 선배가, 그 동생이며 후배가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 수사망을 좁히지 못하고 며칠이 흐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개중 나는 인간미가 넘친다. 까맣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엊그제 회사 팀 안에서 한꺼번에 감염병 확진자가 나왔다. 확진자는 일주일 자가 격리. 업무 공백을 메우느라 이번 주는 총비상이다. 살아남은 팀원들 업무를 급하게 조정하고 재배치한다. 휴, 어떻게든 버텨보자, 한숨 돌리려는데. 퍼뜩 며칠 전 흉몽이 스친다. 믿는 이에게 배신! 두둥!


이건가. 이거였나. 앞뒤가 들어 맞는다. 처음 코로나 걸렸다고 출근길에 전화 온 팀원이 있다. 컨디션이 영 안 좋아서 진단키트 해봤는데 두 줄이 나오더란다. 병원 가서 제대로 검사받았더니 여지없이 확진이더란다. 다른 팀원들과 마스크 벗고 같이 밥을 먹었다. 시차를 두고 줄줄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정황상 감염의 진앙이 된 팀원, 그는 내가 평소 업무적으로 무척 신뢰하는 인물이다. 일머리가 있어서 업무를 꽤나 효율적으로 처리하는데 적극성까지 있다. 무슨 일을 시키든 결과물을 성의 있게 만들어 온다. 팀원 여럿 중 선임의 위치에 있어서 내가 마치 부팀장처럼 대우한다. 한 마디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우리 팀 에이스다.


배신, 말 그대로 믿음을 저버린다는 뜻이다. 물론 팀원의 감염병이 의도를 담은 행위의 결과라고 절대로 생각지 않는다. 아프려고 병 걸리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나. 다만, 결과적으로 상황이 그렇게 돼버렸다. 믿었던 팀원이, 그래서 끝까지 감염병 한 번 안 걸리고 내 옆에서 언제까지나 나를 도와줄 거라고 당연히 전제했던 팀원이 뜻밖에 전파자가 되었다. 애초에 그렇게 믿었던 게 패착이다. 누구나 감염병에 노출될 수 있고 몹쓸 바이러스는 그 잠깐의 틈새를 노린다. 무릎을 탁 친다. 이게 신발 도둑맞는 꿈이 가리킨 미래였구나. 소오름.


그렇게 점심 먹으러 나가려는데 ‘까톡’ 메신저 알림음이 들린다. 누구.. 어, 집에 있는 에이스 팀원이네. 무슨 일.. 하고 메시지를 확인한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피해를 드린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녀석, 마음에 많이 걸렸구나. 일은 잘해도 생전 마음 담은 문자 같은 건 보내지 않는 팀원인데. 팀장인 나와 동료들에게 아무래도 많이 미안했던 모양이다. 뭘 또 이런 문자까지. 집에서 약이나 잘 챙겨 드시지.


짧게 응답을 보낸다. “일부러 그랬겠냐. 잘 회복하고 출근해서 보자.” 빌어먹을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사태가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겠거니. 감염병 걸리는 꿈같은 건 인터넷 암만 뒤져도 안 나온다. 에이스 팀원뿐 아니라 줄줄이 감염된 여러 팀원들의 빠른 쾌유를 빈다.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그날까지 나처럼 불길한 꿈 꾸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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