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약국에 들른다. 코로나 진단키트 사려고.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지만 약국이 더 쌀지 몰라서다. 단돈 천 원 차이라도 아낀다. 푼돈 아끼는 데 드는 노력은 아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큰돈은 무람없이 잘만 쓴다. 어리석기 짝이 없다.
회사 팀원 여럿이 잇달아 코로나에 감염됐다. 확진의 순서대로 일주일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공백을 메우느라 남은 팀원들이 없는 이들 몫까지 수고했다. 삐걱삐걱 겨우 업무가 돌아갔다. 거기서 한 명만 더 감염되면 작동 불능, 위기일발이었다. 나도 노심초사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팀장의 능력이란 게 참 하잘 것 없다. 그저 더는 나빠지지 않게 해 주세요, 기도할 뿐이었다.
어제부터 격리를 마친 팀원들이 하나씩 업무 복귀 중이다. 확진의 순서대로다. 팀장님, 저 출근했습니다! 격리 전보다 더 크고 씩씩한 음성이다. 꾸벅 고개 숙이는데 내심 미안한 듯한 표정이 숨는다. 그래, 이제 아픈 데 없고, 수고해라. 미안해할 것 없다는 메시지를 슬쩍 숨긴다. 다시 평소의 톱니바퀴처럼 회사 일이 구른다.
감염됐던 팀원들과 재회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잠복기가 지난 탓일까.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다. 공연히 목이 따끔거린다. 콧물도 훌쩍인다. 머리까지 아픈 듯하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진단키트에 두 줄 나오면 뭐부터 해야 하나. 어제 점심 먹은 다른 부서 후배에게 연락해야 한다. 미안하지만 내가 그렇게 됐으니 너도 콧구멍 얼른 찔러보라고. 본부장에게 보고하고 방역 주무부서인 총무팀에도 연락한다. 팀원들에게도 말을 남긴다. “나의 확진을 적에게, 아니 회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라. 그 인간 회사에 없으니 절대로 찾지 말라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콧구멍을 들쑤신다. 능숙한 동작으로 하얀 플라스틱 조각에 물방울을 떨어뜨린다. 종이 눈금이 한쪽부터 느리게 차오른다. 두 줄 나오면 어떻게 하지? 회사에 얘기하고 일주일 집에 있는 건가. 출근 안 하고 쉬는 건가. 요새 코로나는 초창기처럼 죽을병은 아니라던데. 그러니까 치명률이 말 그대로 치명적이진 않다던데. 약만 잘 지어먹으면 낫는 거 아닌가. 심심할 텐데 뭐 하지. 인터넷하고 게임하고, 은둔형 외톨이로 한 번 살아보는 건가. 밥은 배달 앱으로 시켜서 문 앞에 두고 가라고 하면 되겠고. 아내, 아이랑은 떨어져 지내야겠지? 처가댁에서 며칠 지내라고 해야 하나.
일 안 한다니까 저도 모르게 입 꼬리가 씩 올라가는 순간 진단키트 눈금이 차올랐다. 결과는 빨간 실선 한 줄. 더 볼 것도 없는 음성이다. 이게 처음에 이런데 이삼십 분 그대로 두면 두 줄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더라, 그대로 둔다. 걱정보다 기대를 조금 더 품은 시간이 흐른다. 상태는 전과 동. 여지없이 한 줄이다. 귀하는 음성입니다. 더 볼 것도 없이.
쉬지 말라는 뜻이다. 감염병 진단에 의한 강제적 휴무, 그것은 나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나는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부단히 일터로 향해야 한다. 허약한 겉보기와 다르게 쓸데없이 튼튼한 면역력을 갖춰서는 어지간한 감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디 코로나 핑계로 공짜 휴가 얻어낼 생각을. 턱도 없는 소리다. 영원히 높은 꼭대기로 집채만 한 바위를 들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고행,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쉬지 말고 일하라. 절대자의 음성이 들린다.
심드렁한 결괏값을 내어준 5천 원짜리 플라스틱을 사무실 구석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그래, 안 아픈 게 제일이지. 나야 그렇다 치고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어른들 걸리면 어쩔 거야. 노인들 감염되면 그분들한텐 치명타라는데 끝까지 조심해야지. 목숨이 오락가락했던 위험한 병 두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일하자 일해. 뜻밖의 휴식, 그것은 나의 운명이 아니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