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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ug 11. 2022

식당에서 화상사고당했을 때 피해보상받는 방법

  아는 만큼 보인다. 그것의 선행 조건, 경험한 만큼 알게 된다. 얼마 전 식품 대기업이 운영하는 식당에 갔다가 험한 일을 겪었다. 손님이 많았고 종업원들도 분주했다. 한 마디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나의 불운이 겹쳤다. 종업원이 내게 요리를 쏟았다. 주문했던 해물 뚝배기 파스타를 입으로 맛보지 못하고 몸으로 뒤집어썼다.


  당혹스러웠지만 화내거나 윽박지르지 않았다. 다른 손님들 이목을 끄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저 이 상황이 얼른 지나가길 바랐다. 화장실로 가서 옷을 닦아냈다. 자리로 돌아와 다시 나온 음식으로 식사를 마쳤다. 기분 같아선 당장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애먼 팀원의 식사를 지연시킬 수 없었다. 점장이라며 신분을 밝힌 이가 왔다.


  점장은 처음부터 보험사를 거론했다. “고객님 저희가 이런 사고에 대비해서 보험 가입이 돼있어서요. 피해 입으신 건 얼마든지 보상해드리겠습니다.” 양가감정이 엄습한다. 하나는, 보험 운운하기 전에 사람이 많이 안 다쳤는지 먼저 묻는 게 순서 아닌가? 다른 하나는, 그래도 규모가 큰 곳이어서 배 째라, 모르쇠로 일관할 걱정은 없겠네? 본사와 의논해서 한 시간 안에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교전 중에 부상을 입은 군인은 즉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아드레날린이 진통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허벅지 안쪽이 따끔거린다. 회사 근처 피부과 병원을 찾았다. 은밀한 부위를 공개해야 한다. 마침 원장이 남자 선생님이다. 다행이군, 싶었는데 처치실로 여성 간호사 선생님을 부른다. 무릎 아래까지 바지를 내리고 누웠다. 치욕과 굴욕은 사고의 별책 부록이다.

 

  퇴근 시간 다 되도록 식당에서 연락이 없다. 기다리다 못해 점장에게 받아둔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어째서 이 시간까지 연락이 없느냐 물었다. 점장 본인도 본사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라고 답한다. 시간 약속은 무엇보다 중요한 건데 기다리는 사람 생각해서 미리 귀띔이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처음으로 말에 감정을 실었다. 사람 함부로 여기지 말라, 내가 할 수 있는 시위였다.


  저녁 늦게 전화가 왔다. 본사와 연락이 닿았단다. 보험사에서 고용한 손해사정사가 내일 고객님께 전화할 거란다. 그제야 병원 진료는 받으셨냐고 묻는다. 심하진 않은데 의사 선생님이 며칠 통원 치료를 권했다고 답했다. 앞으로 점장 본인이 아니라 보험사와 통화하셔야 할 테고 그쪽에는 충실히 보상하라고 일러두었단다. 그런 건 알아서 해주셔라, 사고는 일어난 것이고 고객은 이제 회사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는 거다, 의미심장한 끝말을 남겼다.


  다음 날 오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온다. 아무개 보험사의 손해사정사라고 밝힌다. 누구와 달리 많이 놀라지 않으셨느냐, 얼마나 다치신 것이냐 묻는다. 다른 피해는 없는지도 물어온다. 옷과 신발에 음식이 묻었는데 세탁을 해도 얼룩이 남았다고 답했다. 신고 있던 운동화가 한정판 가죽 제품이어서 원상복구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손해사정자는 일단 병원 진료 충분히 받으시고 본인의 직업대로 손해를 사정하는 데 몇 가지 서류와 자료가 필요하니 준비가 되면 보내달란다.


  몸 다친 게 가장 큰 일이다. 손해사정자와 통화하기 전에 피부과 병원을 먼저 다녀왔었다. 필요할까 싶어 진단서를 미리 발급받았다. 병원 영수증은 상세 진료 내역을 알 수 있는 진료비 계산서가 있어야 한다. 손해사정사에게 보냈더니 ‘초진기록지’라는 게 더 있어야 한단다. 환자가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의사가 진료 내용을 기록한 서류다. 진단서는 병원에 따라 일, 이만 원 가량 비용이 들고 초진기록지는 몇 천 원 내외다.


  신발, 운동화에 입은 피해가 막심하다. 솔직한 얘기로 사고 당시 내 몸보다 운동화를 먼저 살폈다. 빨간 국물과 건더기를 뒤집어쓴 모습에 가슴이 아리다. 종업원이 급하게 가져다준 행주인지 물수건으로 나보다 운동화를 먼저 닦았다. 가죽이 이미 붉은 물감을 머금었다. 변색이 돼서 보기에 흉하다. 스마트폰으로 전체와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손해사정사에게 보냈다. 옷도 성하지 않다. 한 차례 빨았는데도 상의, 하의에 얼룩무늬가 선명하다.


  서류 중에는 먼저 ‘피해자 본인 확인서’를 써야 한다. 사고 경위에 관한 진술서다. 사고 일시와 장소, 상세 경위, 피해 정도를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의아한 것은 “사고 장소는 평소 얼마나 자주 이용하십니까?”라는 문항도 있다. 단골손님이 입은 피해가 중대할까, 첫 방문 고객한테 저지른 잘못이 더 큰 것일까 잠시 고민했다. 다음으로 ‘보험금 청구를 위한 상세 동의서’를 작성한다. 이건 기본 양식에 V자로 체크하면 된다. 보험사가 개인 정보와 신용 정보를 조회해도 괜찮은지 묻는 거다. ‘보험금 청구에 대한 안내문’도 있다. 보험사로부터 심사 절차에 대해 제대로 안내를 받았는지 확인하는 서류다.


  다음날 손해사정사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신발과 옷가지의 구입 시기와 가격에 대해 묻는다. 대강 머릿속에는 있는데 영수증이 남아있을 것 같진 않았다. 특히 운동화는 N사 제품인데 매장에서 발매가를 주고 사지 못했다. 이른바 한정판이다. 되팔기 거래를 중개하는 서비스를 이용했고 상당한 웃돈을 치렀다. 손해사정사가 중개 서비스 화면에 표시되는 현재 거래 가격을 스크린숏으로 찍어 보내달란다. 상의와 하의 역시 의류회사 온라인 쇼핑몰 화면을 찍어 보내주면 된다. 다만, 그것과 내 물건이 같은 것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신발과 옷 안 쪽에 붙은 레이블을 사진으로 첨부해야 한다.


  이틀이 더 지났다. 아침 이른 시간에 손해사정사 전화를 받았다. 손실에 대한 판정이 끝났다. 금액에 앞서 보험사의 지급 원칙부터 설명해주었다. 보험사는 피해의 정도가 심해 전손(전체 손실) 처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물건의 가격과 사용 기간을 감안하여 상 금액을 감정한다. 여기서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하나는 보상 금액 전체를 받고 피해를 입은 물건은 보험사로 보낸다. 그렇게 입수한 물건은 보험사가 나름대로의 경로로 처분해서 지급 금액에 충당한다. 다른 방법은 물건을 그대로 사용하되 손실 판정 금액의 50%를 받는 것이다. 잠시 골몰하다 마음을 굳힌다. 같은 물건을 다시 구하는 것도 번거롭고 보험사로 보내는 일은 더 성가시다. 손해사정사에게 후자를 원하노라 의사를 밝혔다.


  신체 상해에 대한 상도 안내받았다. 치료비 전액뿐 아니라 병원까지 가는 약간의 교통비도 책정된다. 내 경우 화상의 정도가 심하지 않아 병원 진료비 규모 자체는 크지 않았다. 그것에 더해 위로금을 지급하는데 나는 기십만 원이라고 알려주었다. 손해사정사는 재물 피해와 신체 상해에 대한 합계 금액 얼마가 보험사에서 지급하는 총액이라고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사건 종결이 9부 능선을 넘었다. 보상금 지급을 위해 마지막으로 필요한 서류가 몇 가지 더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합의서다. 인적사항과 사고 경위, 합의 금액, 지급 계좌 등의 내용이 담긴다. ‘보험금 청구서’라는 서류도 필요하다. 보험 가입자인 식당 측이 합의에 따른 금액 얼마를 피해자인 나에게 지급해야 하니 보험사에서 처리해달라고 요청하는 서류다. ‘심사 지연에 대한 안내문’, ‘보험금 지급에 대한 안내문’에도 서명한다. 사고 경위를 파악하느라 소요된 시간의 경과, 보험금 지급 등에 대해 최종적인 안내를 받았는지 확인하는 내용이다. 가장 마지막 서류가 ‘손해사정서 교부 확인서’다. 보험사로부터 위탁받은 손해사정사의 업무 결과에 대해 보험사와 보험가입자, 피해자가 모두 동의하는지 묻는다. 지체 없이 ‘동의함’에 체크하고 서명을 달았다. 신분증 사본도 있어야 된대서 같이 보냈다.


  일주일 남짓 걸렸다. 천만 다행히 사람이 크게 다치지 않았다. 식당이 막무가내로 나오지 않고 큰 회사에서 간판을 건 곳이었다. 보험사의 의뢰를 받은 손해사정사의 업무 처리도 깔끔했다. 무엇보다 피해자인 내가 골치 아픈 ‘진상’이 아니라 상식이 있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던 것이 점장에겐 천운이다. 마침 점장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보험사에서 사고 종결됐다고 연락받았다고, 그래서 고객님께 마지막으로 연락드렸단다. 치료는 잘 받으셨는지 묻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잘 회복했고 점장님도 애 많이 쓰셨다고 인사했다. 그러면서 두 가지만 덧붙였다. 먼저, 이런 일을 겪었지만 앞으로도 식당을 찾고 싶다고 했다. 점장이 물론 그러셔야죠, 답한다. 다음으로, 식당 여건을 보니까 어찌 보면 예견된 사고더라, 좌석 배치가 비좁고 동선이 복잡하더라, 홀 서브하는 종업원 수가 절대적으로 적어서 급한 마음에 위태롭게 다니더라, 취급 메뉴가 다 뜨거운 음식이니 각별히 조심하셔야 하겠더라, 주제넘은 조언까지 보탰다.


  송사를 한 번 겪으면 누구나 법률 전문가가 된다던가. 무탈한 것이 제일이겠으나 사고는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경험이 없으면 아는 것이 없게 되고, 알지 못하면 눈에 제대로 뵈는 게 없기 마련이다. 모쪼록 저와 같은 사고가 없으셔야 하겠지만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를 위해. 우리 모두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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