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작정하고 다녀왔다. 제주도로. 최대한 아껴서 지출했는데도 동남아 어느 나라쯤 다녀올 법한 경비가 들었다. 성수기 막바지에 해외로 나가지 못한 관광객이 몰렸다. 우리 집 식구들은 어지간해서 사람 붐빌 때 놀러 다니지 않는다. 한데 딸아이 짧은 여름방학 기간 안에 다녀와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돈이 제법 들 것 같은데, 까짓 거 십 년에 한 번 회사 장기근속 휴가 받은 것 기념해서 지른다. 에라 플렉스다!
중문 관광단지 일대에서 사나흘 지내고 협재 해수욕장 근처로 이동했다. 제주도 남쪽에 있다 서쪽 시계방향으로 옮긴 셈이다. 해변 바로 앞 숙소는 피한다. 밤새 들려올 청춘들의 불야성에 잠을 설칠까 두렵다. 차로 몇 분 거리 수영장 딸린 리조트를 예약했다. 연식이 좀 된 곳이어서 숙박비도 비싸지 않다. 오래됐어도 관리가 잘 됐다. 손때가 탔지만 낡은 느낌은 아니다. 곳곳에 작은 것들이 여전히 쓰임새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 이게 더 내 취향이지. 아니나 다를까, 리조트 안 수영장 정취가 천구백구십몇 년쯤에서 멈춘 듯하다.
수영장 한쪽 구석에선 저녁이 되면 바비큐를 판다. 역시나 가격이 좀 되지만 망설이지 않기로 한다. 물놀이라면 입술이 파래지도록 마다하지 않는 따님 노는 것 옆에서 이국적인 야자수 그늘 밑에 앉아 숯불에 고기 구워 먹고 너울거리는 제주 서쪽 바다 지켜보면서 술 한 잔 부딪칠 수 있는 신선놀음의 대가. 그렇게 생각하면 터무니없지 않은 계산이다. 저희도 주세요!
석양이 제주 바다 밑으로 내려가고 전등 조명이 들어온다. 우리 식구 앉은 테이블 옆에 새끼 고양이 몇 마리가 기웃거린다. 흰색에 옅은 갈색 얼룩무늬가 예쁘다. 같은 빛깔의 어른 고양이가 저만치 뒤에 배를 깔고 앉았다. 네가 얘들 엄마구나. 딸아이는 이다음에 커서 캣맘이 되려나 보다. 캠핑장에서도 고양이 밥 챙겨주기를 자처한다. 나름대로 고양이를 배려한 원칙도 있다. 언젠가 내가 남은 음식을 캠핑장에 사는 고양이 앞에 던져주니 그러면 안 된단다. 반드시 접시에 담아서 줘야 한단다. 땅바닥에 주면 이물질도 같이 먹게 돼서 배탈이 난단다.
아이가 남은 고기를 가위로 잘게 자른다. 본인 앞 접시로 썼던 것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새끼 고양이들도 사람 먹는 걸 많이 얻어먹어 본 눈치다. 피하지 않고 이리 와, 부르기도 전에 달려든다. 배가 많이 고팠구나.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 아이가 한 번 더 먹을 걸 준비한다. 너 우리 먹을 거 다 고양이 줄 거야? 엄마 핀잔에 아이가 입술만 샐쭉거린다. 주게 둬, 우리 먹을 건 또 시킵시다. 신이 나서 접시를 고양이들 앞에 갖다 놓는다. 그 모습을 아내가 사진으로 남긴다. 그 모습을 엄마 고양이가 모로 눕고 고개만 들어서 본다.
얘는 하나도 못 먹었어! 아이가 어미 고양이 앞에 큼직한 고기를 들이민다. 그걸 본 새끼 고양이들이 저 먹겠다고 금세 달려든다. 어미는 냄새 한 번 맡지 않고 새끼들 먹게 둔다. 익힌 고기는 싫어하나? 아니면 여기 살면서 너무 많이 얻어먹어서 싫증난 건가. 새끼들이 정신없이 먹는 틈을 타 어미를 따로 꾀어낸다. 이번에는 사람 주기도 아깝게 빨갛게 잘 익힌 새우를 하나 준다. 이건 구미가 당기나 보네. 입에 물었다 싶었는데 새끼들 있는 데로 유유히 걷는다. 무심히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나 먼 데만 본다. 이건 또 웬 떡이래, 새끼 고양이들이 맛있게 먹어 치운다.
새끼들 배가 제법 찼다. 먹을 것에 꽂혔던 관심을 거두고 자기들끼리 깨물고 뒹군다. 다시 한번 아이가 어미한테 고기를 줘본다. 냄새를 맡더니 앞발로 잡고 살짝 뜯어 오물거린다. 어, 너 고기 싫어하는 거 아니었네. 조심스럽지만 재빠른 동작으로 먹는다. 그래, 너도 배가 무지 고팠구나. 그러고 있는 걸 저들끼리 뒤엉켜서 놀고 있던 새끼 한 마리가 어쩌다 보고 말았다. 엄마, 뭐 먹어! 폴짝 뛰어서 온다. 어미는 얼른 입에 물었던 걸 뱉는다. 다시 먼 산만 본다. 다른 새끼들까지 뛰어 와서 주둥이를 경쟁한다.
새끼 고양이들이 다시 와서 휩쓸고 간 자리에 어미 고양이가 남았다. 아이가 처음 주었을 때와 다르게 대강 먹고 남긴 부분이 많다. 그제야 어미가 새끼들이 남긴 걸 자기 쪽으로 끌어 온다. 딱딱한 새우 머리까지 남기지 않고 먹는다. 그 모습이 짠했는지 알뜰한 아내가 웬일로 큼지막한 고기 한 점을 어미 고양이 앞에 놓는다. 사람들 먹는 거 싫어하기는커녕 네가 젤 좋아하는구나. 근데 그 좋아하는 거 새끼들 먹이겠다고.
나는 먹는 것 중에 갑각류를 가장 좋아한다. 그중에서 대게는 늘 선망의 대상이다. 초가을 이맘때쯤 서해에서 나는 꽃게도 없어서 못 먹는다. 언젠가 피부과 의사 함익병 씨가 티브이에 나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갑각류라고 밝혔다. 동료 의사들과 함께 개원한 병원이 크게 이름을 알리게 됐을 때 귀갓길에 수산물 시장에 들러 꽃게를 넉넉하게 두어 상자 샀더란다. 양손에 무겁게 들고 집에 들어서면서 이거 탕으로 끓여서 국물 내지 말고 전부 쪄서 먹자고 할 때 아, 내가 성공했구나 싶었단다. 나는 해보지 못한 일이니 아직 성공과 요원하다.
그런 내가 어쩌다 바닷가로 여행 가서 아내를 설득해 드물게 대게를 먹을 일이 생긴다. 금방 쪄 내와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게 넓적다리를 툭 부러뜨려 뽀얀 살만 쏙 뽑은 다음 딸아이 입을 벌리게 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꼭 하게 되는 대사가 있다. “딸이 아니면 이거 아무도 안 준다.” 군침은 넘어가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내 형편이 그런가 하면 아내는 아이가 먹고 꼭 배부르다면서 먼저 일어나고 남긴 밥 한두 숟가락, 대강 살코기만 먹고 남은 닭다리를 하얗게 발라 먹는다. 나처럼 뭐 보태는 말도 없다.
얼룩무늬 고양이가 늦은 끼니를 때우는 걸 보며 상념에 잠긴다. 마침내 나의 엄마, 아내의 엄마, 세상의 모든 엄마가 떠오를 찰나엔 멋쩍게 시큰하기까지 했다. 저기 철 모르고 물장구치는 아이가 자라서 또 자기 새끼를 먹이겠지. 이 땅의 모든 어미와 아비 앞에 큼지막한 고깃덩이 하나씩 두고 오고 싶은 휴양지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