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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14. 2020

이등병의 편지

  이등병의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낸 경험들 있으신지. 이등병이 서툴고 고된 군생활 중 짬짬이 써서 보낸 편지도 귀한 것이겠지만, 이등병에게 보낸 편지는 그의 한 달 월급보다 몇 곱절 값지다. 훈련소를 나와 자대를 배치받고 선임병들에게 숱한 꾸중을 듣는 게 일상인 이등병. 그를 위로하는 건 PX에서 파는 달거나 시원한 어떤 것이 아니라 군복 가슴팍 혹은 허벅다리 건빵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넣어둔 편지 한 장. 꼭 연인의 그것이 아니라도 좋다. 친구, 선후배, 아는 동생, 형, 누나들로부터 받은 짧은 기별을 들으면 잠시 영혼만이라도 부대를 탈출한다. 가족, 그중에서도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는 그야말로 눈물 폭탄이다. 펼치면서부터 짜고 투명한 것이 그렁그렁 맺히는 종이 한 장을, 접혀서 헤지고 찢어질 때까지 다시 꺼내 보고 또 본다.

     

  지난주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켜가며 아내, 딸아이와 먼 곳 여수를 찾았다. 숙소에 가기 전에 저녁 찬거리를 사려고 익숙한 대형마트에 들렀다. 고기며 술을 잔뜩 사서 계산을 치르고 나오는데 퍼뜩 대뇌 피질 속 뉴런이 하나 쨍 연결되는 소리가 들린다. 가만, 광양에서 여수까지 삼사십 분 거리겠고, 세규(대학 한 학번 후배, 토목공학과 졸업, 제철회사 근무) 지금 광양에서 일하지. 세규야 엉아 보러 혹시 올래, 하고 물어나 볼까. 아 그전에 아내 허락을 받아야겠지. 웬걸, 후배와 내 친분을 짐짓 이해하는 아내가 고맙게도 허가 결재를 내어주었다. 신이 나서 또 혹시나 걸어본 전화에 후배가 가겠단다. 온단다.     


  후배는 나와 각별하다. 나는 일단 그렇게 알고 있다. 녀석도 나와 사고의 방향이 같길 바란다. 근거는 이렇다. 우리는 20년 전 달포에 걸쳐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여행 인프라라고는 아예 없었고, 그 나라 말 한마디도 뱉지 못하는 한국 대학생 둘이 중국을 종단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경비를 아껴볼 요량으로 비행기 말고 인천에서 큰 배를 탔다. 천진항으로 입국해서 북경, 서안, 우한, 남경, 상해, 항주를 거쳐 계림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광주까지 내려갔다. 거기서 여정을 마치지 않고 홍콩까지 건너 가 일주일을 더 지내고 귀국했다. 겨우 문장 몇 줄로 줄이게 됐지만 말 그대로 위기의 극복, 생존의 연속이었다. 후배가 퇴근 후에 자가용 승용차를 이끌어 나 있는 데까지 왔다. 아내가 분주하게 내어준 안주를 깔고 나와 후배가 교대로 스물몇 살 때 중국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남도에서의 밤이 깊어가는데 별안간 ‘그것’이 생각났다. 세규야, 나 이등병 때 너랑 승범이, 종선이 형까지 셋이 동아리 대자보 빈 종이에 색깔 볼펜으로 써서 나한테 부쳐준 편지 있지, 그거 기억나냐. 후배가 탄식이 섞인 절묘한 표정을 짓는다. 아, 그거 알지, 생각나지, 답한다. 자대 배치받고 한 달 겨우 됐을 때였나, 행정반 호출을 받고 달려가니 고참이 희한하게 두툼한 봉투를 내민다. 떠나갈 듯 관등성명으로 군기를 보여주고 모퉁이를 돌아 곧장 봉투를 찢었다. 꺼내기도 힘든 것이 안에서 웬 두꺼운 종이 접은 것이 나온다. 이건 뭐야, 하고 펼쳐보는데 내 이름을 부르며 글이 시작되고 차원 저 편으로 날려 보낸 그리운 다른 이름들이 끝에 달렸다. 예비역 선배 형은 경험에 미루어 지금쯤 뭐 하고 있겠네, 하고 후배 둘은 형 머리통 작아서 하이바(헬멧)는 잘 맞느냐고 짓궂게 묻는다. 그리고 자기들도 곧 내 뒤를 따라 입대를 하게 됐다고 알려왔다.     


  전에 모교 앞 어느 술자리에서도 한 번 물어서 들은 것 같은데, 그 밤 또 묻고 들었다. 옆에 앉은 아내는 처음 듣는 이야기니까. 세규야, 그거 왜 편지지도 아니고 동아리 대자보에 썼냐. 답하길, 후배를 포함한 그 셋이 그날 학교 앞에서 거나하게 취했고 차가 끊겨 여남은 돈으로 술과 안주를 사서 동아리방을 찾았단다. 앞선 술자리에서 몇 달 전 군대 간 내 얘기를 나누었고, 급한 대로 종이 비스무리 한 것에다 내가 궁금해할 만한 신변잡기와 안부를 담게 됐더란다. 그 마음이 고맙고 좋아서, 편지를 받아본 일순간 내 영혼은 부대 담장을 넘어 세 사람 옆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술잔을 부딪쳤다. 그 편지, 아니 대자보를 작대기 하나를 더 쌓아 일등병 진급할 때까지 틈틈이 꺼내 읽고 제대할 때 다른 편지와 묶어서 집으로 가져왔다.     


  내일 출근할 사람이니, 더 밤이 깊어지기 전에 대리운전을 붙여 광양 집으로 후배를 돌려보냈다. 모레 올라가기 전에 형수한테 여기 아니면 못 먹어볼 점심식사를 대접하겠단다. 저기 그 생각 치워두라는 걸 꼭, 반드시 전화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아까 울엄니, 그리고 장모님에게 돌산 갓김치 사다 드려야겠다고 아내와 둘이 나눈 말을 엿들었는지 내일 자기가 자주 시켜먹는 갓김치 가게 주소를 메신저로 찍어 보내겠단다. 딸아이한텐 지갑에서 주황색 지폐를 꺼내 손에 쥐어준다. 고맙습니다 해야지, 부추기기 전에 아이가 먼저 수줍게 고개를 묻었다 다시 든다. 진한 악수, 더 짙은 포옹으로 후배와 작별한다. 대리운전 기사님에게 안전하게 데려다주세요, 말하며 돈 몇 만 원을 냉큼 드렸다. 후배가 에헤이, 손사래 치는 걸 억지로 뿌리쳤다.     


  집에 올라갈 때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야 쓰겠다. 엄마, 그 왜 나 군대 있을 때 받아서 모아둔 편지들 있잖아, 그거 넣어둔 화장품 상자, 아 그건 낡아서 버렸나, 아무튼 그거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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