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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pr 25. 2024

실감 미디어의 현재와 미래

❚실감 미디어란?


  실감 미디어는 VR(Virtual Reality : 가상현실)과 AR(Augmented Reality : 증강현실), 그것들의 중간 지점을 체험케 하는 MR(Mixed Reality : 혼합현실)로 구분한다. 세 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 XR(EXtended Reality : 확장현실)이다. 이상을 통칭하는 매체와 기술이 바로 실감 미디어다.


  가상현실은 말 그대로 실제와 무관한, 완전히 새롭게 창조한 현실 세계다. 나름의 물리 법칙이 있어 그럴 듯한 현실성을 가지지만 내가 사는 이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마치 차원 이동을 한 것 같은 것이 가상현실이다. 증강현실은 현실 세계의 밑바탕 위에 가상의 사물이 더해진다. ‘포켓몬 고’ 같은 게임을 떠올리면 쉽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전방을 찍으면 실제로는 없는 무엇이 화면 안에서만 살아 움직인다. 혼합현실은 조금 더 머리를 써야 한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겨우 적당한 예시를 찾았다. 얼마 전 애플 社가 실감 미디어 디바이스로 ‘비전프로’라는 기기를 출시했다. 헤드셋 형태인데 기능을 조작하면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의 중간쯤을 경험할 수 있다. 내 방 책상 의자에 앉아 비전프로를 머리에 쓴다. 눈앞에 내 손과 책상이 보이는데 그 너머 벽은 없어지고 광활한 초원 위에 앉았다. 대초원이라는 가상현실에 있지만 책상은 실제의 것이다. 현실 공간 위에 더해진 것이 아니라 가상공간 속에 현실이다.



❚게임 키드의 가상현실     


  필자는 운 좋게도 서브 컬처를 풍부하게 향유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중학교 시절 아케이드 게임 중 <스트리트 파이터 2>라는 게임이 대유행했다. 두 명의 무술가가 겨루는 방식으로 장르 상 ‘대전 격투 게임’이라고 부른다. 비슷한 형식의 아류작이 봇물 터지듯 출시되던 와중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지는 새 게임이 세상에 나왔다. 이름하야 <버추어 파이터(Virtua Fighter)>. 종전까지 만화 같은 2차원 그래픽 일색이던 게임들과 달리 입체로 된 인물이 3차원 공간에서 싸운다. 게임 제목의 ‘버추어’가 가상현실의 영단에서 가져온 것임은 나중에야 알았다.


  게임의 발전상을 목격하며 필자는 대전 격투 게임의 미래를 상상하기에 이른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역시 수년 내에 3차원 그래픽으로 발전할 것이다. 언젠가는 네모난 화면 안에서 좌우로 움직이는 캐릭터를 조종하는 것도 끝난다. 내가 직접 그 캐릭터가 되어 눈앞에 보이는 적과 정면에서 상대하는 시대가 온다. 안경이나 고글처럼 머리에 쓰는 것이 게임기의 일반적 형태가 될 것이다. 사람의 동작을 감지해야 하므로 센서도 중요한 부속 장치가 된다.’ 내 손으로 직접 동작하여 쏘는 ‘파동권(게임에 등장하는 장풍 기술 명칭)’은 이 같은 상상만으로 짜릿했다. 중고생 시절의 필자가 대단한 미래학자가 아니었음에도 실제 게임 발전상을 보면 필자의 예측대로 되고 있는 것 같다. 실감 미디어의 발전과도 궤를 같이 하고 있다면 억지스러운 연결일까.



❚방송 산업과 확장현실


  이제 성인이 된 필자가 실감 미디어의 미래를 감히 예측해본다. 필자는 방송사에서 일한다. 이제 게임은 필자의 삶과 청소년 시절처럼 밀접한 관계를 가지지 못한다. 일, 밥벌이가 필자의 삶에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방송 산업과 실감 미디어의 관계에 주목하여 상상력을 발휘해 보겠다.


  방송 장르 중 뉴스 분야에서 발전할 여지가 크다. 마침 엊그제 큰 선거가 있었다. 방송사들은 저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준비한 개표 방송에서 최신 방송 기술을 선보였다. 방송 진행자가 당선 경합 지역의 명소로 순간 이동하는 듯한 스튜디오 연출은 모두 가상현실, 증강현실의 발전 덕분에 가능했다. 여기서 더 발전하면 시청자가 직접 그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출연자의 이동을 시청자 입장에서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그 공간으로 직접 간다. 공간의 어느 위치에 서서 고개를 돌려 주변 사물을 보고 현장의 소리를 듣는다. 이런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전장의 한 복판에 있는 종군기자를 상상해보자. 그와 함께 숨 가쁘게 뛰고 달리며 전쟁의 참상을 대리 체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감 미디어 기술이 적용된 선거방송 화면


  스포츠와 예술 공연 등 실황 중계방송은 실감 미디어 발전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된다. 스포츠 중계방송에서 가상 광고가 활용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실제로는 텅 빈 운동장인데 협찬 회사 제품이 바닥에서 거대하게 솟아오른다. 확장현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지금 시청하고 있는 경기를 관중석 위치에서 그 시점으로 관람한다. 고개를 돌리면 옆자리 관중이나 치어리더의 응원까지 볼 수 있다. 해외에서 펼쳐지고 있는 유명 팝가수의 월드투어 공연도 마찬가지다. 가장 비싼 객석의 시점에서 생생한 공연 현장에 함께 하게 된다.


  방송 산업에서 광고는 무시할 수 없는 귀중한 수입원이다. 실감 미디어의 발달은 완전히 새로운 광고 형태를 세상에 선보일 것이다. 증강현실 기술의 발달로 가상 광고가 확산되었지만 시청자와 상호 작용하지는 못했다. 새롭게 등장하는 광고 형태는 시청자들과 더 밀접하게 소통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모든 시청자에게 동일한 형태로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현실에서 시청자가 직접 만지고 조작하는 새로운 광고 소비 경험을 제공한다.



❚그 많던 3D TV는 다 어디로 갔을까


  미디어 기술의 발달이 모두 장밋빛 비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십 수 년 전 영화 <아바타>가 극장에서 수준 높은 3차원 경험을 제공한 직후 그것을 가정에서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유수의 가전제품 회사가 이른바 3D 텔레비전 수상기 새 모델을 속속 내놓았다. 백화점 전자제품 코너에는 3D 화면 시청을 위해 TV 제조사가 끼워 파는 입체 안경을 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신기루처럼 모두 사라지고 없다. 전자제품 회사는 더 이상 3D TV 새 모델을 개발하지 않는다. 구매를 원하는 고객이 시장에 없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왜 더 이상 3D TV를 찾지 않을까. 큰맘 먹고 비싼 돈 주고 구입했는데 그것을 즐길 새롭고 다양한 볼거리가 없다. 비싼 TV 수상기부터가 큰 걸림돌이었다. 높은 가격은 그것 자체로 진입 장벽이 되어 시장 저변의 확대를 저해했다. 커지지 않는 시장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할 콘텐츠 제작자는 없다. 3D 영상을 만드는 데는 일반적인 영상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하다. 높은 기술 비용과 더딘 기술 발달이 빈곤의 악순환을 만들었다.


  실감 미디어가 3D TV의 행보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돼야 할까. 기술 비용 하락과 디바이스 성능 향상이 핵심이다. 실감 미디어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이 기본적인 전제다. 특정 기업의 연구개발 비용 투여뿐 아니라 국가나 국제 사회의 폭넓은 투자 지원이 따라야 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해 더 혁신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인 확장현실 이용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실감 미디어 디바이스의 성능 향상은 필수적이다. 얼마 전 애플 社가 출시한 비전프로는 지금까지의 확장현실 디바이스 중 차별화된 성능을 갖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제품 가격, 장시간 착용 시의 불편은 얼리어답터가 아닌 일반 소비자의 구매 의욕을 자극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더 가벼운 무게, 편안한 착용감, 간편한 조작 등은 디바이스 제조사가 끝까지 양보할 수 없는 개발 포인트가 돼야 한다. 기술 표준의 확립도 뒤따라야 한다. 제조사마다 다른 기술 규격은 콘텐츠 확산을 저해한다. 다른 기기와의 연결성, 호환성이 확보돼야 더 많은 이용자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실감 미디어는 어디까지 발전하게 될까


  인간의 시감각 기관을 제어하여 입체 형태의 화상 정보를 제공하려면 어쩔 수 없이 두 개의 안구 앞에 그것을 노출하는 형태여야 한다. 그래서 먼저 개발되고 있는 것이 헤드셋 형태이다. 헤드셋 형태는 머리 위에 안정적으로 착용되어 디스플레이 크기나 센서 탑재, 배터리 장착에 비교적 덜 구애받는 방식이다. 많이 경량화 되었다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완성형으로서는 지금의 안경 정도의 크기와 무게가 돼야 한다. 그래야 이용자가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꺼내서 편하게 착용할 수 있다. 더 나은 배터리 수명, 효율적인 발열 관리,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등 높은 성능을 수반한 소형화가 경량화가 기술 개발의 당면 과제다. 간결하고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은 사용자들이 확장현실 기술을 더욱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헤드셋이 아니라면 어떤 형태의 실감 미디어가 세상에 등장하게 될까. 프로젝터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프로젝터를 사용하는 경우, 특수한 스크린이나 표면을 이용하여 3D 콘텐츠를 투영할 수 있다. 이렇게 투영된 3D 콘텐츠는 사용자의 눈앞에 실제로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사용자가 특정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것을 보완한 것이 홀로그램 방식이다.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이 자신의 연구실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전자식 갑옷을 입는 장면을 떠올리면 쉽다. 홀로그램 테이블이나 홀로그램 테이블을 이용한다. 이러한 디바이스는 사용자가 테이블 상에 나타나는 현실적인 3D 이미지를 바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사용자는 손가락이나 제스처를 사용하여 홀로그램 이미지와 상호 작용한다. 홀로그램 방식은 그것을 구현하는 장치 외에 개별 사용자가 착용하는 디바이스가 필요 없다. 여러 사용자가 함께 사용할 수 있고 별도의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며 여러 사용자가 동시에 직관적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큰 장점이다.


  가장 진보한 형태는 여러 가지 거추장스러운 디바이스가 필요 없는 방식이다. 인간의 시각 신경 자체를 제어해서 확장현실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주 먼 미래에 구현될지 모른다. 이제 개발 초기 단계에 있는 컴퓨터 과학 기술 용어가 있다. 뇌-컴퓨터 간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가 그것이다. BCI는 인간의 뇌 신호를 읽어 들여 컴퓨터와 상호 작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사용자는 생각만으로 확장 현실을 조작하고 제어할 수 있다. BCI 기술은 사용자의 의도를 감지하기 위해 뇌파, 전근도, 혈류 등의 생체 신호를 측정하고 해석한다. 사용자는 생각만으로 가상 환경을 탐험하거나 콘텐츠를 조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윤리적인 문제와 한계도 가지고 있다. 사용자의 개인정보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의 뇌파가 생체신호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개인 정보보호와 데이터 보안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 개발되기만 한다면 인간이 가장 직관적이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실감 미디어가 될 것이다.

BCI 인터페이스의 초기 개발 모습


❚<스트리트 파이터 22>는 과연?     


  필자는 어린 시절 내 손으로 직접 쏘는 파동권을 상상하며 자랐다. 격투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는 여섯 번째 작품까지 세상에 나왔다. 당연히 3차원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으로 발전하였으나 확장현실까지 제공하진 못하고 있다. TV 화면과 연결한 1인칭 시점으로 단순한 권투 대결을 체험할 수 있는 게임이 따로 있기는 하나 조악한 수준이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 상상을 철회하지 않을 생각이다. 실감 미디어의 발달이 언젠가 철없던 시절 필자의 상상을 현실의 것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트리트 파이터 22>쯤 되면 그것의 구현이 가능할까. 지금 시대를 살아가며 그 발전의 역사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기록할 셈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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