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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Feb 20. 2024

대학원 입학식에서 생긴 일

  좋은 진 모르겠고 어쨌든 아침입니다. 저의 메신저 사용법이 늘 그렇듯 오늘도 얘기가 깁니다. 어제 신입생 입학식 겸 오리엔테이션 다녀온 소감을 술회합니다. 감회가 새로운 것이 정작 저는 못 갔던, 그러니까 저에게도 처음이었던 입학식이었어요.


  동기 여러분들은 다 경험과 기억이 있으시겠고, 아시는 대로 대학원장-총 동문회장 환영사, 교수 및 교직원 소개, 식사(올해는 식당 공사 관계로 도시락으로), 원우회 운영진 소개, 신입생 학사 안내 등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대체로 무난한 행사 구성과 시간 안배였습니다만 딱 하나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그 충만한 ‘어색함’. 저처럼 필요에 따라 온오프가 가능한 외향성이 아니면 코리언들 서로 첫 만남에 으레 데면데면하잖아요. 그것에 대한 대비와 배려가 부족한 인상이었습니다.


  저 혼자 새긴 깨우침은, 기존 재학생, 그러니까 원우회석을 별도로 마련해서 이전 입학 기수들을 한 테이블에 모아둘 게 아니었다, 전공별 신입생들로 모아놓은 원탁에 골고루 흩뿌리는 게 나았겠다 싶었습니다. 왜 큰 전자회사 신입사원 합숙 교육 과정에서 ‘지도 선배’라고 명명하여 신입사원들 이끄는 것처럼요. (특수 대학원의 ‘선배’ 호칭 사용에 대해 수긍하지 않지만 논지의 전개를 위해 ㅎㅎ)


  다만 그렇게 테이블로 배석한 기존 재학생들은 물색없이 스스로 원탁의 주인공이 되면 안 되겠고, 철저한 조연이어야 하겠지요. 자연스럽게 신입생들끼리 인사와 통성명을 유도하고 대학원 생활에 유용한 경험담을 제공하면서 소소한 질의응답을 통해 공허한 ‘어색함’ 대신에 풍성한 ‘설렘’의 시간으로 채우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잊어버릴지 모르니까, 또 회장직에서 중도 하차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제가 신입생 입학식을 주도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기회와 시점이 오면 꼭 상기시켜 주세요. ^^


  참, 도시락이 의외로 맛있었습니다. 다 식은 도시락 먹고 크게 체한 적이 있어 선호하지 않았는데 어제 그것은 맛났습니다. 학교 예산으로 산 건지, 원우회비에서 충당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여기까지가 에피소드 하나.


  다른 에피소드 하나 더.


  어제 기어이 다른 기수와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걱정하진 마셔요. 라디에이터까지 먹어서 폐차해야 하는 대형사고 아니었고, 콩 박고 각자 덴트 정도 맡기면 해결되는 경미한 수준이었습니다.


  왜 일전에 우리 기수와 앞 기수 미팅(?) 때문에 제가 부랴부랴 나선 적 있잖아요. 일이 뜻밖에 입방아에 오를 수 있고 소외되는 인원도 생길 수 있다면서요. 그리고 보니 오늘 저녁이 디데이네요. 거 참.


  도시락 식사 중에 앞 기수 남자 총무가 우리 P 총무에게 갑자기 뭐라 뭐라 말합니다. 의미만 전하자면, 내일 모임에 대해서 자기는 몰랐고 갑자기 얘기 들어서 당황스러웠다, 총무들끼리 추진 중이라고 뒷 기수 회장에게 들었다며 자기네 기수 회장이 물었는데 자기는 아는 것 없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앞 기수에서는 대외 연락 같은 걸 본인이 맡고 있다, 다음부터는 자기한테 직접 연락해 달라, 뭐 이런 얘기였습니다. 저와는 달리 맘씨가 곱고 넓은 우리 P 총무는 그저 ‘예, 그랬군요. 알겠어요.’ 하면서 방금 들은 얘기를 밥 한 숟갈에 씹어 삼키대요.


  옆에서 제가 못 참아서 한 마디 했습니다. 아니, 회장 대 회장으로 먼저 의사소통했고, 내가 듣기로는 귀하 말고 앞 기수 여자 총무와 우리 P 총무가 소통한 데다, 귀하가 몰랐다면 그건 귀하 기수 내의 소통 문제이겠고, 밥 먹다가 갑자기 자기 기분 앞세우면서 여러 사람 앞에서 핀잔주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상사도 아니고 도대체 왜 우리 기수가 전 기수 내에서의 역할 분담이나 프로토콜까지 고려해서 연락해야 하느냐, 총회장단 단체 대화방의 공연히 엄하고 폐쇄적이며 저들끼리만 친하고 바른 소리 하는 Hoon 회장 같은 인물 영 맘에 안 내켜하는 대기가 억눌려 기어이 압력 밥솥처럼 폭발하려고 하는 것을 겨우 참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다 행사가 속개되는 것 같아서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고 좀 이따 앞 기수 남자 총무를 행사장 밖으로 이끌어 독대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앞에서 눈에 힘을 주었다 뺐다, 몸을 파르르 떨었다 말았다 하며 적의를 품더군요. 그런 눈빛을 회사에서 몇 번 만난 적 있습니다. 언뜻 모범적이고 차분해 보이나 사소한 마찰 앞에서 돌변하여 전면전을 마다하지 않는 캐릭터요. 그들의 공통적 특징이 여유와 유머가 없고 경직되어 융통성이라곤 도대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 기수 회장으로서 의사를 전달하는데도 그 자리에선 도무지 받아들일 기색이 없어 보였습니다. 왜 자기 모르게 총무끼리 소통해서 저녁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우리 회장한테 얘기했느냐, 그게 불만이래요. 하 나 참. 세상에 불쾌할 일도 많다고 못 참고 얘기했습니다.


  결국 의사가 좁혀지지 못해 행사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우리 P 총무와 삼자대면을 통해 어찌 됐든 감정을 해소하고 내일 저녁에 술잔 부딪치자며 헤어졌습니다. 저는 열몇 살 차 연하와 입씨름을 한 것이 순간 큰 자괴감으로 몰려와서 P 총무와 한 잔 찌끄렸습니다. 제가 너무나 애정하는 27년 단골 곱창 집에서요.


  앞 기수 총무를 보내며 너스레 삼아 한 마디 했습니다. 대학원에서 나이 얘기하는 거 경우에 없고 우스운 거 모르지 않지만, 서너 살도 아니고 무려 열 살 넘게 많은 형, 아니 삼촌뻘한테 아득바득 핏대 세우고, 주먹 파르르 떠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다들 같은 형편이겠지만 저도 돈 버는 일로 분주하고 어지럽습니다. 이딴 만학의 사소한 잡음으로 스트레스받을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지난 반년 경험한 바, 총회장단의 폐쇄성, 사교집단화(저의 억측이길 바랍니다.), 원우회비 결산 등 최소 체계의 미비 등 문제가 눈에 보이는데 도저히 외면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태어나지 못했고 그렇게 살지 않아 온 까닭입니다. 그런 면면 때문에 세상 살면서 더러 손해를 보는 줄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진심은 언젠가 통하고, 강은 굽어도 반드시 바다로 흐르며, 사한 것은 기필코 정한 것으로 돌아간다는 신념으로 살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사람이 여러분의 대표가 된 것에 미안한 마음은 있습니다.


  어제 우리 P 총무가 곱창 집에서 그러더군요, 회장님 말씀 다 맞는데 그동안 그렇게 해왔던 관성을 쉽게 고치긴 어려울 것 같다고요. 회장님이 학교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커서 그런 것 같다고요. 제가 얘기했습니다. 그런 것 아니고, 나는 다만 최소한의 체계, 완장 차지 않은 재학생 모두에게 돌아가는 공평과 무사함이 있길 바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욕구와 소망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새삼 약속드리는 것은 저 때문에 동기 여러분의 대학원 생활에 불이익이나 결손이 발생하는 일은 절대로 없게 하겠습니다. 어제에 이은 오늘 저녁 모교 행, 그다지 내키지 않지만, 순전히 저의 방과 후 안식만 추구하거나 그곳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으로 채울 수 있지만, 가겠습니다. 가서 동기 여러분들과 함께, 우리보다 한 학기 수업 더 들은 가깝고 먼 타 집단과 기꺼이 어울리겠습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긴 말씀 들어주셔서 고맙고 미안합니다. 저녁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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