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증후군

by Hoon

종종 동안이라고 듣는다. 난 겸연쩍어하며 답한다. 착시예요. 키가 작아서 그래요. 뜯어보면 자글자글 해요.


아이 같은 얼굴이 아니더라도 난 내가 제대로 된 어른이 아님을 안다. 몸과 마음의 성장이란 관점에서 얘기해 보자. 일단 극심한 단신이다. 육신의 성장으로 볼라치면 고등학생쯤도 못 된다. 요즘 아이들 보면 중학생, 아니 키 좀 큰 초등학생도 나보다 위로 다닌다. 청소년의 몸뚱이가 안으로만 늙어 간다. 오호통재라.


마음의 나이를 보자. 정신연령이라고 하나. 내 마음은 몇 살쯤에서 자라기를 그만두었을까. 머릿속 컴퓨터가 연산을 시작한다. 삐리 삐리 삐리. 너님은 대학교 3학년 2학기에서 마음의 성장을 멈추었습니다. 뭐? 고작 그 시점에서 끝이라고!? 2학년 마치고 군대 갔으니까 복학 후 두 번째 학기. 내 정신연령이 겨우 스물대여섯 살이라니. 부정하고 싶..


.. 지만 부정이 안 된다. 그쯤에서 멈춘 게 맞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대충만 훑어봐도 그렇다. 난 지금도 모교를 찾는 게 몹시 좋다. 지하철 2호선 열차가 한강 철다리 위로 속도를 낸다. 저기 멀리 강의동 건물들로 빼곡한 언덕이 보인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가슴이 부푼다. 캠퍼스의 낭만이 지금도 나를 충동질한다. 엊그제는 이십오 년 단골이 된 학교 앞 돈가스 집에 다녀왔다. 새내기 시절부터 특별한 점심에 맛보던 경양식 돈가스. 가격은 2천 원 올랐지만 추억은 90년대 말에서 요지부동. 나의 소울푸드. 소화도 시킬 겸 교정을 걸었더니 대학생인 내가 매점에도, 본관 앞 벤치에도, 노천극장 스탠드에도 있었다.


고백한다. 난 대학생도 못 된다. 잘 봐줘야 중고딩, 아니 초딩까지도 감수한다. 중간고사 잘 봤다고 엄마가 처음 사줬던 농구화. 내 돈 벌어 살 수 있게 되고 나서는 수십 켤레 넘게 있다. 아내는 제발 좀 팔아치우라고 성화다. 다 신지도 못할 걸 왜 박스째 여기저기 쌓아 두냔다. 전자오락, 아니 컴퓨터 게임, 그중에서도 콘솔게임(TV 수상기와 연결하여 즐기는 가정용 게임기)과 아케이드(오락실) 게임이라면 아주 환장한다. 이번 주말엔 두 살 터울 동생을 집으로 불러 추억의 ‘스트리트 파이터 2’ 진검 승부를 펼칠 것이다. 난 류, 넌 캔. 동생은 일터에서 양복 입고 점잔 떨며 경영 컨설턴트로 일한다. 놈도 나처럼 오롯한 어른은 못 된 것 같다. 만화책, 애니메이션은 또 어떠랴. 죽고 못 산다. 이 모든 광경을 목도하는 아내는 혀를 끌끌 찬다. 으이그 저 애어른.


애가 회사를 십수 년째 다닌다. 장가 들어서 애까지 낳았다. 그 애의 애가 벌써 내후년이면 중학교엘 간다. 그러니 마음이 어지럽지. 불알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오락실, 만화방, 아니면 학교 앞 당구장, 선술집이나 전정 긍긍하는 게 자연스러울 거다. 그런 애가 어른들 다니는 회사에서 다른 어른을 수십 명 상대한다. 꼴에 장가라는 건 어떻게 갔는지. 생때같은 애를 나아서는 처자식 먹이겠다고 벌이 한다. 집, 대출금, 보험, 재테크, 교육, 노후 대비, 도통 모를 어른들의 언어에 현기증이 난다. 아, 애랑 그 애의 애까지 키우는 불쌍한 여인은 무슨 죄인가. 가여운 또 한 영혼.


이제 좀 어른이 돼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아니, 그러기에도 늦었다. 늦었다 싶을 때가 진짜 늦은 법. 희극인 박명수 씨가 일찍이 설파했다. 닮고 싶은 어른을 얼른 마음속에 추린다. 퍼뜩 한 사람 떠올린다. 옛날 사람이라 치면 중간될까 말까, 그래도 작은 키. 구부정하니 뒷짐 진 걸음걸이. 하얗게 세월이 내려앉은 단정한 은발. 좀처럼 온도가 바뀌지 않는 다부진 표정. 엥? 울 아부지네.


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였을 때를 난 기억 한다. 나처럼 처자식 건사하느라 악착같이 회사 다니셨다. 아니, 나보다 악조건이었다. 난 하나인데 울 아부지 애가 둘. 난 맞벌이인데 울 아부지 홀로 외벌이. 지금은 주 5일제인데 울 아부지 때 토요일도 출근. 게다가 울 아부지 투잡. 낮에 회사 다니고 밤에 글 쓰고. 아이고 고달픈 인생 어떻게 견디셨을까 싶다. 그래도 힘들다 회사 가기 싫다 불평 한 번 없으셨다. 나처럼 어디 딴 데 마음 둘 구석도 없었을 게다. 농구화는커녕 새 구두 사 신으시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오락거리가 무어냐. 주말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소파에 누우셔서 야구 중계 보시던 건 기억난다. 약주는 자주 드셨다. 마음 기댈 데가 그것뿐이었으리라. 그마저도 오래전에 아주 끊으셨다.


그런데 실상 그런 거면 어쩌지 싶다. 아버지도 알고 보니 나랑 다를 바 없었다면. 아버지도 그 안의 소년을 애써 억누른 것이었다면 말이다. 어디 조용한 곳에서 머릿속 별세계를 활자로 풀어내는 데만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싶진 않으셨을까. 낼모레 중학교 가는 애의 아빠가 알고 보니 애였는데 그 아빠의 아빠도 역시나 애였대. 안쓰러운 풍문이 귓전에 부딪친다.


네버랜드는 없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나는 오늘도 살아내야 한다. 신께서 긍휼히 여기셨는지 어른스러운 아내를 보내주셨다. 그 덕에 겨우 현실에 발붙이고 산다. 어느 날 기어이 딸아이도 내 정체를 알아차렸다. 엄마에게 일러바치듯 말한다. 엄마, 아빠는 참 철이 없어. 아내가 거든다. 그러니까 엄마가 늙잖아. 우리 집에 늙어가는 웬디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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