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합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이란다. 사과까지 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문과 졸업자다. 문과 졸업생을 낮잡아 문과충이라고도 부른단다. 문과충이 이과적 지식에 대해 감히 거론하고자 한다.
자연선택설이라는 것이 있다. 저명한 찰스 다윈 옹께서 주창하신 학설이다. 종의 생존 경쟁에서 환경에 적응한 것이 생존하여 자손을 남기게 되는 생물학적 현상을 말한다. 진화론의 이론적 줄기다. 뒤집으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종은 도태되어 결국 멸종한다.
집에 초파리가 들끓는다. 며칠 전 마트서 할인 판매하는 바나나를 사 왔다. 싸게 파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하루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껍질이 시커멓다. 그냥 제값 주고 먹을 만큼만 사 올 걸. 아까워하며 쓰레기통에 버리려는데 초파리 너덧 마리가 놀라 달아난다.
그러고 보니 초파리가 흔하다. 집파리가 눈에 띄게, 아니 눈에 안 띄게 줄었다. 집에도 사무실에도 식당에도 집파리가 잘 없다. 요즘은 어딜 가도 집파리가 잘 안 뵌다. 여름에 대한 이미지 중에 나는 집파리에 대한 것도 품고 있다. 어려서 여름 방학을 보내던 어느 오후에 엄마가 잘라주는 수박 몇 조각 배부르게 먹는다. 선풍기 회전에 맞춰놓고 마루에서 낮잠을 청한다. 선풍기 고개가 여기 왔다 저기 갈 때쯤이면 꼭 파리 한 마리가 팔뚝, 허벅지, 종아리에 날아와 앉는다. 잠결에 근질거려서 손바닥으로 쫓으려면 잽싸게 도망가고 없다. 그런 집파리가 어느덧 잘 안 보인다. 집파리가 비운 자리에 깨알보다 작은 초파리가 극성이다.
문과생이 파리의 자연선택설을 떠올린다. 집파리는 제법 덩지가 있다. 모기보다 위 체급이다. 개체에 따라서는 벌처럼 웅웅 날개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대왕 집파리도 있다. 그런 녀석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창틀에 떨어져 뒤집힌 채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끔찍하다. 몸뚱이가 크면 얻어맞을 곳도 많다. 손바닥, 파리채의 표적이 되기 쉽다. 이과생들의 노력으로 인류는 최첨단 무기도 손에 넣었다. 생활용품점에 가면 단돈 오천 원으로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새끼손가락 굵기 건전지 두 개만 넣으면 파리며 모기를 전기의자형으로 사바세계와 작별하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은 배드민턴 라켓처럼 생겼다. 각종 살충제의 희생양이 되기도 쉽다. 개체 간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세대에 걸쳐 체구를 키웠는데 아이러니하게 그것 때문에 위기를 맞았다.
초파리는 작다. 빠르고 민첩하다. 앞서 말한 인류의 최신 무기도 무용지물이다. 실제 경험인데 전기 파리채를 제아무리 휘둘러봐야 ‘비 사이로 막가’다. 예상컨대 초파리는 대사 주기도 무척 짧아 보인다. 바나나를 버린 쓰레기통에서 금세 초파리가 들끓는다. 폭발적인 번식력이 아닐 수 없다. 파리라는 종에 있어서 자연선택의 승리자는 티끌만 한 초파리다.
나는 작다. 빠르고 민첩한지는 잘 모르겠다. 위대한 자연선택의 승리자, 종의 생존자가 되고 싶은 욕심도 없다. 다만 하루하루 평안했으면 좋겠다. 수만 볼트 전기 채의 위협이 부디 비켜가기만 바란다. 나이 들면 별 시답잖은 것에도 감정을 이입한다. 이제 초파리도 쉽게 못 잡을 것 같다. 잘 잡히지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