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 포항 여행기

by Hoon

아내와 딸아이, 나까지 세 식구가 휴가차 포항에 다녀왔다. 4박 5일 일정. 먼저 두 밤은 캠핑장, 나중 두 밤은 영일대 해수욕장 앞 호텔을 예약했다. 일요일 출발. 하행 고속도로가 한가했다. 휴게소를 두 번이나 들렀는데도 네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포항. 포구와 항구를 아울러 이르게 된 지명이다. 포구와 항구는 어떻게 다르냐. 국어사전에게 물어보자. 포구는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 항구는 배가 안전하게 드나들고 사람이나 짐을 오르내리기 편리하게 부두 따위의 설비를 하여 수륙 교통의 연락 구실을 하는 곳. 잘은 몰라도 포구는 좀 작은 것, 항구는 제법 큰 것의 이미지가 있다.


아내는 포항이 처음이란다. 나는 아니다. 횟수로만 따지면 예닐곱 번은 훌쩍 넘을지 모른다. 예전에 스포츠 피디로 일할 때 포항 연고지의 프로축구팀 홈경기 중계 출장으로 몇 번은 왔었다. 놀러 온 게 아니라 순전히 일 때문에 온 것이어서 특별한 추억은 없다.


두 번의 또렷한 기억은 있다. 한 번은 근처 경주에 갔다가 서울로 오는 길에 포항을 하룻밤 경유했다. 포항공대 박사 과정에 있는 모교 선배와 해후하기 위해서다. 선배의 연구실은 포항공대 후문에서 가까웠다. 다 와서 후문 바로 앞 삼거리에서 추돌사고가 났다. 내 차가 따라오던 차에 받혔다. 선배가 놀라서 뛰어 왔다. 가해 차량 운전자의 명함을 받아 드니 포항공대 연구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부주의한 운전에 대해 나무라지 못했다. 견인차가 출동하는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큰 외상은 없었는데 우리 쪽 보험사 직원이 가까운 응급실 행을 권했다. 간단한 검사를 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아까운 시간이 흘렀다. 간호사를 호출해 아픈 데 없다 하고 병원을 탈출했다. 보험사에서 불러준 렌터카를 몰아 영일대 해수욕장을 향했다. 꽃새우인지 독도 새우인지를 안주로 시켜 선배와 소주 몇 병을 비웠다. 선배는 그날 기숙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른 한 번도 포항이 목적지는 아니었다. 부산에 출장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포항에 들렀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포항공대가 엮여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후배가 회사에서 준 혜택으로 포항공대 대학원에 다니던 중이었다. 제수씨와 아기도 회사가 마련해 준 집에 함께 내려와 살았다. 요상한 평행이론 같았지만 다행히 교통사고는 없었다. 후배가 아는 단골 횟집에서 소주 여러 병을 비웠다. 후배는 그날 제수씨가 기다리는 집으로 나와 함께 돌아갔다. 근처 모텔에서 자면 된다는 걸 후배가 한사코 같이 가자고 했다. 여기까지가 포항에 대한 내 인상의 전부다.


코로나 시국에 부득이한 여름휴가의 목적지로 포항이 결정된 배경은 이렇다. 아내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애청자다. 나는 캠핑카 여행이 주요 소재인 예능 프로그램 <바퀴 달린 집>을 즐겨본다. 시즌 막바지에 드라마 주연 배우들이 초대 손님으로 출연했다. 캠핑카가 찾아간 곳이 드라마 세트가 있던 포항이었다. 공효진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 동백이, 그녀가 운영하는 주점이 포항 구룡포에 있었다. 정확히는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라는 이름의 작은 상점가다. 19세기 말 일본인들이 건너와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복원한 곳도 많겠지만 일본풍으로 꾸민 작은 가게들이 좁은 골목 양쪽에 줄지어 섰다. 지극히 일본식 내외관을 갖춘 가게에서 완전히 한국식인 냉면과 갈비탕을 판다. 한국 홍대 앞에는 일본식 주점이 인기이고 일본 신주쿠에는 홍대 앞을 흉내 낸 골목이 있다고도 들었다. 아이러니하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입구를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이 마주 보고 찍은 유명한 사진 스폿이 있다. 셋째 날 오후에 들러 아내와 딸아이의 닮은꼴 사진을 찍어줬다.


포항에 내려와 죽도시장부터 들렀다. 딸아이는 나의 입맛까지 닮아 갑각류 공주다. 평소대로 라면 비싼 대게는 우리 가족 식단에 오를리 만무하다. 아내가 인터넷으로 포항 현지 주민들이 단골로 이용하는 대게 소매점을 알아냈다. 기실 지금 팔리는 대게는 국산이 아니다. 지금은 대게 금어기다. 러시아 바다에서 잡은 스노 크랩이 대부분이다. 맘씨 좋은 주인장이 멀리서 왔다고 통 크게 우수리를 떼어줬다. 살이 꽉 차고 큰 덩지의 대게 두 마리를 아주 싸게 사 왔다. 현금을 넉넉하게 뽑아 온 아내가 예산을 아꼈다고 좋아했다.

찐 대게를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트렁크에 실었다. 캠핑장으로 간다. 뒷좌석에 앉은 아내가 맞다, 우리가 가는 캠핑장이 <바퀴 달린 집> 팀이 갔던 곳이야, 했다. 저녁부터 비가 올 거라는 예보다. 마음이 바쁘다. 아내와 환상의 호흡으로 그늘막이며 텐트를 설치했다. 텐트는 큰 거실형 텐트가 아니라 작은 돔형 텐트를 가지고 왔다. 그러기를 잘했다. 거실형 텐트였으면 더워서 큰 고생을 할 뻔했다. 타프, 그늘막은 바람에 날아갈까 싶어 40cm 긴 팩으로 단단하게 땅에 박아 고정했다. 다른 집 텐트들에서 저녁밥 짓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옆 텐트에서는 김치찌개를 끓였나 보다. 우리도 얼른 짐 정리하고 밥 먹자. 딸아이는 대게 집게다리는 모두 자기 몫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운전하랴, 장 보랴, 집 지으랴 피곤했나 보다. 열대야도 모르고 곤히 잤다. 아침부터 따가운 햇볕이 그늘막 아래를 침범한다. 캠핑장 관리동에 만 원을 더 내면 야외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다. 아내와 딸아이는 종일 물놀이를 할 계획이란다. 나는 불볕더위와 정면으로 승부하며 텐트를 지키겠다고 했다. 아내와 딸아이는 점심에 텐트로 와 잠깐 밥만 먹고 수영장으로 돌아갔다. 점심 메뉴는 봉지에 포장된 삼계탕이다. 이열치열은 현명한 여름 나기 방법이 아니다. 수영장에 간 아내와 딸아이를 기다리며 샤워장에서 네댓 번은 씻은 것 같다. 저녁은 돼지고기 목살 바비큐다. 화로대 숯에 막 불을 붙이고 석쇠에 고깃덩이를 올리는데 장대비가 쏟아진다. 고기 굽다 말고 타프 폴대를 붙잡았다. 아내에게도 반대쪽 폴대를 잡고 있으라고 했다. 삽시간에 행락객에서 수재민이 될 찰나다. 다행히 이삼십 분 만에 비가 그쳤다. 그 사이 채 뒤집지 못한 고기가 꺼멓게 그을렸다.

기본을 지키는 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아주 중요하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우리가 찾은 캠핑장은 기초 공사가 아주 잘 돼있다. 비가 그치니까 금세 땅이 마른다. 남아있는 물웅덩이도 없다. 배수로가 아주 잘 확보돼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 못한 캠핑장은 잠깐이라도 비가 오면 그야말로 물바다가 된다. 비는 진즉에 그쳤는데 땅 밑으로 숨어들지 못한 물줄기가 지표 위에서 거세게 굽이쳐 흐른다. 그쯤 되면 텐트 안은 볼 것도 없이 아비규환이다. 캠핑의 낭만은커녕 끔찍한 사서 고생이 된다.


비가 그치고 선선한 바람이 분다. 이제야 온전한 망중한의 조건이 갖춰졌다. 여름 캠핑에는 더워서 잘하지 않는 장작불도 붙인다. 딸아이는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텐트로 들어갔다.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을 놓지 않을 거다. 아이스박스에서 붉은 포도주 한 병을 꺼냈다. 옆 텐트에 방해가 되지 않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켰다. 감자칩 과자, 육포, 삼각형 치즈를 접시에 올려 구색을 갖춘다. 아내가 먼 길이었지만 오길 잘했다고 한다. 그 먼 길 내가 운전해서 왔지. 플라스틱 와인 잔을 퉁명스럽게 부딪친다. 유리가 아니어서 쨍하는 맛이 없다. 마트에서 만원 못 주고 산 포도주는 제법 맛났다. 오늘은 취기에 열대야를 잊을 것이다.

오늘은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앞 호텔로 간다. 아침은 대충 코펠에 라면을 끓여 때운다. 해가 더 오르기 전에 텐트며 타프를 거둔다.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차에 짐을 모두 실으니 점심께다. 호텔 체크인은 오후 3시부터 가능하단다. 밥도 먹고 시간을 조금 때우다 들어가야 한다. 시원한 것이 당긴다. 경상도에 왔으니 냉면 말고 밀면. 내비게이션 앱으로 가장 가까운 밀면집을 검색했다. 이십여 분 차를 달려 도착했는데 대기줄이 인산인해. 아니다 싶어 다시 검색해서 그만큼을 더 갔다. 그 사이 피크 타임이 지나기도 했겠고 이 집은 기다릴 만하겠다. 물밀면 두 그릇에 만두 한 판. 냉면과는 또 다른 밀면 육수의 매력. 육향이라고 하나? 직접 뽑아낸 고기 육수의 거뭇한 빛깔이 맛의 깊이를 더한다. 딸아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찐만두가 맛있단다. 아빠, 한 판 더! 시원한 밀면 육수를 추가까지 해서 들이켰다. 호텔 체크인까지 아직도 시간이 남았다. 아내가 근방에 드라마 <동백꽃..> 촬영지가 있다고 한다. 이후의 동선은 앞에 단락을 참조 요망.

캠핑장 이박삼일 이후의 호텔은 낙원이자 오아시스, 천국 위에 무릉도원이다. 캠핑의 낭만은 너나 가져라. 프라이빗한 샤워에 쾌적한 에어컨 바람. 속옷까지 갈아입고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새하얀 시트로 덮은 침대로 다이빙하면 호텔이라는 숙박 유형이 왜 세상에 존재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육신이 노곤하다. 저녁 먹을 때까지 한두 시간 남는다. 스르르 눈꺼풀이 닫힌다. 딸아이가 틀어놓은 TV 애니메이션 채널 소리가 아득해진다.


아빠, 일어나! 아이가 배고프단다. 저녁은 또 무얼 먹을까. 여행이란 결국 식단의 완성이다. 어제 캠핑장에서 육고기 구워 먹었으니 다시 물고기? 해수욕장 근처 횟집을 검색한다. 아무리 검지 손가락을 퉁겨도 마뜩한 데가 없다. 우리 세 식구는 나름대로 여행 중수 이상은 된다고 자부한다. 회가 먹고 싶다고 해수욕장 바로 앞에 이른바 오션뷰 그럴듯한 세트 메뉴 십몇만 원 받는 식당은 어지간하면 피한다. 오션뷰 말인데 해 지고 나면 유리창 너머는 그냥 암흑이다. 창문 열면 날벌레만 무혈입성이다. 검색 중에 나온 블로그 후기에는 분홍 소시지와 콘버터를 밑반찬으로 주는 곳도 있었다. 그런 데는 처음부터 솎아낸다. 회만 맛있으면 곁들임 음식은 아무래도 좋다. 퍼뜩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어 아내의 의향을 물었다. 빤한 횟집 말고 이런 데 어때? 찾아낸 곳은 해수욕장 바로 앞이 아니라 이면도로 뒤 주택가 골목 안에 있다. 모둠회와 어묵탕, 꼬치구이, 생선 메로구이를 코스로 내어주며 3인 6만 몇 천 원. 인당이 아니라 합쳐서. 전화를 걸어 빈자리가 있는지 물었다. 지금 오면 딱 한 자리가 있단다. 술도 파는 곳인데 초등학생 아이가 가도 되느냐고도 물어봤다. 얼마든지 OK. 호텔에서 걸어서 몇 분 거리다. 정해둔 메뉴를 주문하니 모둠회부터 탁자에 올라온다. 아, 탁월한 선택. 다른 음식도 모두 맛있었지만 특히 메로구이. 어른 손바닥 만한 메로구이 두 덩이를 먹음직스럽게 구워 눕혔다. 아내가 한 젓가락 떼어 아이 입에 넣어주고 자기 입에도 가져간다.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히며 ‘지인짜’ 맛있단다.

잠은 호텔에서 자야지, 캠핑장 아니다. 완벽한 온도와 습도. 잘 잤다. 아내와 딸아이는 더블베드에서, 나는 한 뼘 뛰고 붙은 싱글베드에서. 호텔 조식이 그저 그렇다. 그 돈이면 나가서 뜨끈한 해장국을 사 먹는 게 낫다. 그렇게 했다. 호텔 옆에 전주식 콩나물 해장국집이 있다. 어제저녁 먹고 들어오는 길에 봐 뒀다. 딸아이는 만둣국을 시켜줬다. 만두 마니아일세. 종업원 이모님이 뚝배기 두 그릇을 내오는데 구성이 제대로다. 자그마치 ‘수란’이 같이 나온다. 정통 전주식 콩나물 해장국에는 모름지기 수란이 빠질 수 없다. 쇠 밥공기에 계란 흰자가 뽀얗고 뭉근하니 익었다. 노른자는 익지 않고 봉긋 솟았다. 보글보글 끓는 국물을 수란 위에 몇 숟가락 끼얹는다. 본격적으로 밥술을 뜨기 전에 수란을 후루룩 마신다. 조금 남았다 싶으면 뚝배기에 넣어 계란 국물을 일으켜도 무방하다. 김 가루도 부수어 넣어야 한다. 통통한 콩나물이 푸짐하게 들었다. 전주 현지에 가서 먹었던 식당처럼 오징어 젓갈도 당연히 나왔다. 뚝배기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딸아이가 주문한 만둣국도 맛있나 보다. 이 집도 맛집이네. 경상도서 사 먹은 전라도 음식이 어쩌자고 이렇게 맛있나.


호텔로 돌아와 오늘 일정을 시작할 채비를 한다. 나야 양치하고 새 티셔츠 꺼내 입으면 끝. 두 여인이 치장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오늘의 행선지는 호미곶.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지명의 유래를 훔친다. “호미곶은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南師古)가 「산수 비경(山水秘境)」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기술하였고,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설명하였다. 김정호(金正浩)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국토 최동단을 측정하기 위해 영일만 호미곶을 일곱 번이나 답사 측정한 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임을 확인하여, 호랑이 꼬리 부분이라고 기록하였다. 일명 장기곶(長鬐串), 동외곶(冬外串)이라고도 한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호미곶 하면 연안 바닷물 속에서 하늘로 보고 솟은 큼지막한 손바닥 조형물, 정식 명칭 ‘상생의 손’이 랜드마크다. 그러고 보니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예전 중계방송 출장 때문에 포항에 자주 왔다고 해도 숙소 근처에서 술이나 퍼마셨지 여기까지 와볼 생각은 미처 못 했었다. 와서 보니 위용이 대단하다. 실제로도 그런 속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왜 상생의 손인지 알 것 같았다. 바닷속에만 큰 손이 있는 줄 알았더니 맞은편 육지에도 손이 설치돼 있다. 바다에는 오른손, 육지는 왼손이다. 그래, 포항 왔으면 상생의 손은 보고 가야지. 마스크를 쓴 인파 속에서 얼른 아내와 딸아이만 사진을 남겼다. 바다 위 오른손 다섯 손가락 끝에 갈매기 다섯 마리가 마치 돋아난 것처럼 앉아있다. 갈매기는 그게 인간의 손가락을 본 따 만든 건지 무언지 도통 관심이 없다. 그냥 다섯 개의 쉴 곳.

마지막 네 번째 밤을 앞두고 관광명소 한 군데를 더 섭렵해야 한다. 아내가 요상한 지명을 말하며 거기로 가야 한단다. 아가리? 이갈이? 뭐라고? 아내가 스마트폰을 빼앗아 목적지를 직접 입력한다. 돌아온 전화기에 ‘이가리 닻 전망대’라고 쓰여 있다. 이러니 못 알아듣지. 이가리는 읍면리 할 때 리, 행정구역이다. 포털 사이트를 뒤져보니 ‘푸른 해송과 아름다운 이가리 간이해수욕장 인근에 선박을 정착시키는 닻을 형상화한 전망대’라고 나온다. 방송사 JTBC 드라마 <런 온>에서 촬영 장소로 쓰였단다. 사람이 무지 많다. 역시나 아내와 딸아이 사진만 얼른 찍고 빠진다.

점심 식사가 늦었다. 아내가 나를 위한 메뉴를 준비했단다. 나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오래도록 애시청해 왔다. 지금이야 일반인, 아니 비연예인이 출연하는(나는 연예인이 아닌 사람을 일반인으로 뭉뚱그리는 말도 안 되는 명칭 구분을 싫어한다. 세상에 연예인과 그렇지 못한 인종만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TV 프로그램이 많아졌지만 <생활의 달인>이 처음 방영될 때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연예인과 유명인이 장악한 대중매체에서 우리 이웃, 보통의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마침내 그들을 인생을 다 바친 ‘마에스트로’로 칭송하는 접근에 큰 감동을 받았다. 면접에서 이렇게 얘기했던 방송사는 죄 탈락했다. 아니 왜?! 맥락 없는 이야기가 길었다. 그 <생활의 달인>에서 물회 달인 편의 주인공 사장님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단다. 부리나케 가속 페달을 밟아 식당 앞에 꽂아 넣듯이 주차했다. 식당 입구에 입간판이 서있는데 느낌이 싸하다. 5분 있으면 브레이크 타임?! 문을 열어 사장님께 식사되냐고 물었다. 사장님이 벽시계와 나를 번갈아 본다. 입술 한쪽을 깨물더니 OK! 당신까지!


점심 장사 마지막 손님 자격으로 식당에 입장했다. 차림판을 보니 달인 물회와 일반 물회가 있다. 사장님, 달인과 일반인의 구분은 인정합니다.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일반 물회는 생선회만 들어가고 달인 물회는 전복, 멍게, 해삼, 소라 등등 갖가지 해물이 더 들어간단다. 몇 천 원 차이이면 당연히 달인 물회로 가야지. 나는 달인의 물회를 먹으러 왔단 말이다. 카트를 끌어 종업원 이모님이 오신다. 커다란 흰색 사기그릇에 물회 재료가 예쁘게 담겼다. 옆에 쇠그릇이 얼음 육수인가 보다. 육수를 부으려는데 이모님이 재빨리 만류한다. 먼저 재료에 고추장 소스를 버무려 섞고 그러고 나서 얼음 육수를 끼얹으라 신다. 오, 이렇게도 먹는 요령이. 밑간을 먼저 하는 거구나. 이러니 달인이 되셨지. 빨간 육수가 색깔만 위협적이고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그 육수가 비법이란다. 초고추장으로만 맛을 낸 물회 육수는 맵고 세서 잘 먹지 못한다. 이 집은 아니다. 생활의 달인이시다.


겨우 두 군데 돌고 점심 먹고 왔는데 고되다. 객실 에어컨을 풀파워로 가동한다. 땀에 젖었다 차에 오르면 마르기를 거듭한 셔츠와 반바지가 잘 안 벗겨진다. 점심을 이제 먹었으니 저녁은 또 느즈막 하게나 먹어야겠네. 그럼 그때까지 뭐하나, 자야지. 여행 와서 살찌는 소리가 들린다 들려.


아빠, 일어나! 아이가 배고프단다. 저녁은 또 무얼 먹을까. 여행이란 결국 식단의 완성이다, 라고 앞에서 정의한 바 있다. 아내는 검색의 여왕이다. 오늘도 해수욕장 앞 식당은 가지 않는다. 우리는 뜨내기손님이 아니고 싶다. 어제 물고기 먹었으니까 다시 오늘은 육고기. 아내가 역시나 현지인들의 단골 식당, 고깃집을 알아냈다. 호텔에서 아주 가깝다. 일단 가고 본다.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린다. 아니나 다를까 앞에 네 팀이나 있다. 맛집은 맞나 보네.

기다림은 기대함이 되었다. 소고기를 숯불 석쇠에 올려 구워 먹을 수 있다. 주인장에게 소금, 간장 양념, 매운 양념 구이를 각 1인분씩 주문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흔쾌히 그러란다. 지역 소주도 주문한다. 고기가 나오는데 아주 독특하다. 보통의 소갈비와 다르다. 포를 뜨듯 얇게 저미어서 나온다. 석쇠에 올리면 금세 익는다. 석쇠 위에 모차렐라 치즈를 담은 종지도 같이 올려준다. 매운 양념 구이를 찍어먹으면 더 맛있단다. 소금, 간장 양념, 매운 양념 구이가 어느 것 빠지지 않고 맛있다. 고기 자체가 맛있고 달지 않은데 달고 매운데 맵지 않다. 아내와 아이는 그중에서 간장 양념이 가장 좋단다. 간장 양념을 2인분 추가했다. 소복이 담은 야채가 신선하다. 시원한 묵사발, 파채 무침, 소스 양파채도 모두 맛있다. 아이 딸린 손님이 반가웠는지 탄산음료를 서비스로 받았다. 나도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나오면서 값을 치르는데 무척이나 저렴하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술까지 곁들여 먹었는데 이렇게 착한 가격? 아내는 또 신이 났다.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호텔로 돌아간다. 해수욕장 앞인데 해수욕은 일절 않고 식당만 돌아다닌 것 같다. 아쉬워서 밤 해변을 걷고 들어가기로 한다. 세 식구가 입을 모아 얘기했다. 포항 좋다, 또 오자. 아내와 나 모두 취기가 오른 와중에 전문가라도 되는 양 포항의 매력을 분석한다. 일단 물가가 비싸지 않고 음식이 맛있다. 공업도시 이미지가 강했는데 의외로 관광지로서도 으뜸이다. 이런 인상 평가는 인과가 모두 연결돼 있다. 자, 포항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 대기업 제철회사, 유명 공과대학이 퍼뜩 연상될 것이다. 기실 포항을 국내 여행, 관광의 목적지로 쉽게 손에 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감염병 시국까지 겹쳐 확실히 여행객이 드물다. ‘한 철 장사’가 아니니까 바가지요금이 없다. 타지인으로서는 현지 물가가 부담되지 않는다. 여행객, 뜨내기손님이 없으니 현지 소비자를 상대로 장사해야 한다. 단골손님을 만들어야 하니까 음식에 집중한다. 정성을 들인 음식은 당연히 맛이 있다. 이름 난 식당이 꾸준하게 유지는 되는데 임대료를 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내, 외관을 예쁘장하게 꾸민 식당이 많다. 수도권 어느 상권과 견주어도 촌스럽지 않았다. 이런 장점을 간파하고 타지에서 모여든 요리 고수들이 창업한 식당이라고 상상하면 무리일까. 술기운에 그런 생각까지 해봤다. 내가 포항시장이라면 공업도시 이미지부터 벗기겠다. 포항은 국내 관광지의 다크호스이고 저평가된 우량주이며 긁지 않은, 아니 살짝 긁었는데 1등 글자가 슬쩍 보이는 복권이라고 만방에 알리겠다.


호텔로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국산 맥주 몇 캔을 샀다. 아내와 사이좋게 나눠 마시고 잤다. 다음날 일어나서 늦지 않게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내려올 때처럼 상행 도로도 한산했다. 하긴 이 시국에 여행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려고. 집 근처 큰 마트 앞을 지날 때쯤 되니 이제 우리 동네네, 다 왔네 싶다. 이번 여행도 무사히 잘 다녀왔다. 엄마, 장모님께 전화로 무사 귀환을 알려드렸다. 캠핑장이고 호텔이고 집이 최고다. 우리 집!



*비손농장 캠핑장

*부산가야밀면

*이자카야 마츠

*마라도회식당

*포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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