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1편 : ‘말입니다’

by Hoon

넷플릭스 신작 <D.P.>를 보았다. 군필자들에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킬 정도로 고증이 잘 되었다고 들었다. 역시나 잘 만들었다. 말 그대로 ‘디테일’이 살았다. 군부대 안 이곳저곳의 시설이나 내무반 관물대, 장병들의 복색까지 어느 것 하나 성의를 다하지 않은 곳이 없다. 나는 다른 걸 칭찬하고 싶다. 현역 군인 신분의 극 중 인물들이 쓰는 말투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정확히 이십 년 전 오월에 전역했다. 강산이 두 번 변했다. 요즘 군대도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라떼는’ 그랬다. 군인은 무조건 ‘다나까’로 말해야 했다. 굳이 풀이할 필요가 있겠냐만 어미, 그러니까 말의 꼬리가 ‘~습니다.’ 아니면 ‘~습니까?’로 끝나야 한다. 민간인 신분일 때 흔하게 쓰던 것처럼 ‘이랬어요, 저랬어요’는 통하지 않는다. 그런 건 민간인의 말, 사제(私製) 말이다. 이른바 고문관으로 통하는 신병도 감히 ‘요’로 끝나는 말을 쓰지 않는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다나까는 극강의 경어체로서 상명하복, 군인본분의 실현이다. 과연?!


다나까 가운데 ‘나’는 활용 가능한 어미가 아니다. 영어 ‘or’의 의미다. ‘다’ 아니면 ‘까’를 쓰라는 말이다. 후임병이 선임병에게 ‘화장실이 어디에 있나?’ 따위로 물었다간 큰 사달이 일어난다. 다나까라는 게 따지고 보면 부하가 상관에게 쓰는 말씨의 조건이므로 애초에 그런 식으로 물어볼 수도 없다. 다나까에 얽힌 우스갯소리 하나. 훈련소에 시건방진 훈련병이 들어왔다. 조교가 군대에선 다나까로 말해야 한다고 일렀다. 훈련병 왈 “알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조교가 방금 뭐라고 말했느냐 물었다. 훈련병 짜증 내며 “알았다니까!” 다른 얘기도 더 있다. 어느 부대에 사단장이 시찰을 나왔다가 식당에서 병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때마침 군대 말투에 익숙지 않은 전입 신병이 배식을 맡고 있었다. 사단장이 식판을 들고 자기 앞에 나타나자 몹시 긴장 한 나머지 국을 너무 조금 퍼서 드렸다. 사단장도 더 담으라는 뜻으로 지나가지 않고 신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긴장감이 극에 달한 신병은 ‘더 드릴까요?’ 물으려다 아차, 다나까를 써야지. 그래서 꺼낸 말이 “더 주까?”


다나까는 어미 활용의 제약일 뿐 아니라 문장 유형의 구속이기도 하다. 다나까는 평서문과 의문문에 적합하다. 청유문이나 명령문에는 쓰임새가 좋지 않다. 졸병이 선임에게 “김 병장님, 식사하십시오.”라고 말해야 하나 다나까의 용례에 어긋난다. 다나까에 ‘오’는 애초에 들어있지도 않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말입니다’다. 우리는 이제 “김 병장님, 식사하시지 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말입니다’의 활용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본인이 다나까 사용 초심자다? 걱정하지 마시라. 평소 하던 대로 편하게 얘기하다 끝에 ‘말입니다’만 붙여주면 된다. 김 병장이 지난번 내기 족구에서 졌는데도 아직 PX에서 냉동식품을 쏘지 않았다. “김 병장님, 전에 내기 족구 지신 거 지금 쏘시.. 지 말입니다!”


드라마 <D.P>의 주인공 정해인 배우는 적재적소에 ‘말입니다’를 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상술하진 않겠다. 극 중 주인공의 군 보직은 헌병대에 속한 탈영병 체포조다. 정해인은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병사에게 부대 복귀를 종용하며 “같이 가시지 말입니다.”라고 말한다. 또 폭력을 일삼는 다른 선임병을 애써 만류하면서도 말한다. “그만 하시지 말입니다.” 그는 “같이 가십시오.”, “그만 하십시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급자가 감히 상급자에게 무리한 청유를 할 수 없다. 명령은 상상 밖의 일이다. 간부끼리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의 혹독한 군기를 강조하는 병사들끼리는 그랬다. 군대는 그런 곳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날 선 디테일, 수준 높은 현실 고증을 확인했다.


나는 우리나라 군대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딱 두 부류로 가른다. 등장하는 군인들이 다나까를 제대로 구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김 병장님, 알겠어요, 그렇게 하시죠.”라고 하는 드라마는 보지 않는다. 저렇게 말한다고? 아주 당나라 부대 구만, 하며 얼른 채널을 돌린다. 그런 군인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 위험천만한 작전에 투입되어 용맹한 활약을 한들 그저 병정놀이처럼 보인다. 도무지 몰입이 되지 않는다. 이후의 서사는 아예 좇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말입니다’가 완성도의 첩경인 것만도 아니다. 정해인 배우보다 앞서 ‘말입니다’ 어미를 쓴 사람이 있다. 몇 해 전 덥고 먼 나라에서 고생하는 우리나라 군인들을 해님의 후손으로 칭송한 드라마가 있었다. 작중 장교 계급인 주인공이 민간 의사 신분의 여주인공에게 자꾸 ‘말입니다’를 쓴다. 다시 얘기하지만 ‘말입니다’는 현실에선 군인들끼리, 주로 후임병이 궁여지책으로 쓰는 말투다. 당시 드라마 흥행과 더불어 인터넷에서 ‘말입니다’ 말투가 잠깐 유행했다. 드라마 제작진도 인기를 의식한 것인지 나중에는 등장하는 군인들 모두가 아무 때나 말입니다, 말입니다 그런다. 나에게는 기현상일 뿐이었다.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있다. 드라마 <D.P.>가 악마를 소환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원작 웹툰의 작가가 군 시절 직접 경험한 일들이 작품의 뼈대가 되었다고 한다. 피부로 겪어낸 사람보다 자세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런 격언도 떠오른다.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거장 봉준호 감독이 그의 뮤즈,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했다며 추어올리던 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군바리 신세를 저주하며 하루하루 모질게 참아낸 시간들이 훗날 창작자로서 위대한 영감의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라고는 웹툰 작가 본인 역시 꿈엔들 몰랐을 것이다.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 나는 무척이나 부럽다.


나는 육군 제32사단 505여단 4대대 본부중대 동원과 행정병으로 복무하여 병장 만기 전역했다. 한창때는 한글 타자 1000타를 웃도는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한 사람이다. 내가 후루룩 키보드를 연주하고 나면 뒤늦게 모니터 화면에 글자가 차올랐다. 우리 부대 컴퓨터가 고물인 까닭 따위는 생각지 않았다. 겨울이면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행정 사무실에서 녹색 목장갑 다섯 손가락 끝을 도려내어 밤늦도록 밀린 문서작업을 한 사람이 바로 나다. 난 용맹 무쌍한 ‘전투’ 행정병이었으니까.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도 위대한 창작으로 귀결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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