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군대 ‘말입니다’에 대해 다루었다. 드라마 <D.P.>에는 실은 그것보다 더 명징한 현실의 반영이 담겼다. 주인공 정해인 배우가 첫 장면부터 뱉는 대사 “잘 못 들었습니다.”가 그것이다. ‘말입니다’가 등장하는 드라마는 <D.P> 전에도 있었다고 했다. ‘잘 못 들었습니다’의 본격적 등장은 사실상 최초다.
군대에 가면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그중 언어 사용에 대한 것도 큰 장벽이 된다. 운동장 대신 ‘연병장’을 뛰어야 하는 것 정도는 민간인도 안다. 사회에서 츄리닝(트레이닝), 운동복으로 알던 옷이 오늘부터 ‘활동복’이다. 마찬가지로 운동화는 ‘활동화’다. 심지어 장갑을 ‘수갑’으로 부르란다. 그건 죄지은 사람들이 손목에 차는 은팔찌 아닌가요.
그 가운데 도무지 접수가 안 되던 말이 있다. 내 경우는 “잘 못 들었습니다.”였다. 정말이지 요상하고 괴상한 말이었다. 맹세컨대 군 입대 이전에도, 제대 이후에도 절대로 써본 일이 없다. 자대 배치 이후에 처음 들었던 것 같다. 아니 무의식 간에 내가 일상어처럼 쓰고 있었다. 나중에는 관등성명 뒤에 붙어 완벽한 관용어구가 된다. 아무개야! 이병 아, 무, 개!! 잘 못 들었습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는 어떨 때 쓰는 말이냐. 말 그대로 제대로 듣지 못했을 때 하는 말이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육성으로 무언가 메시지를 보냈다. 하급자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이유는 다양하다. 상급자가 너무 멀리 있어서. 그의 목소리가 작아서.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그의 문장이 뒤죽박죽이어서. 그가 쓰는 낱말이 생소해서. 아니면 하필 하급자가 다른 일에 몰두하던 중이어서. 대체로 상급자의 메시지를 재차 확인하고 싶을 때 그렇게 말한다. 묘하게도 이등병 때 가장 많이 쓰고 병장쯤 되면 그럴 일이 잘 없다. 계급장 작대기가 쌓이면서 청력도 좋아지는 건가.
문제는 이게 습관이 된다는 점이다. 고참 아무나 내 이름을 부르고 뭔가 얘기한다 싶으면 무조건 반사로 발사된다. 뇌 영역, 그중에서 언어중추를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혀가 구른다. 그 말이 먼저 나오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지 않는다. 내가 진짜 귀가 안 들리나, 하는 착각마저 든다. 나중에는 고참들도 내가 가진 언어 질환의 중증도를 알아차린다. 너 잘 들었는데 일부러 그러는 거지? 이런 장면 역시 드라마 <D.P.>가 고스란히 담아냈다.
사실 ‘잘 못 들었습니다’는 굉장히 비경제적인 언어 표현이다. 민간인들끼리는 그냥 “예?” 한 글자면 끝이다. 더 늘여도 “뭐라고요?” 정도다. 그러면 화자가 아, 청자가 내 말을 못 알아들었구나 하면서 조금 천천히 또박또박, 종전보다 정성을 들여 발화한다. 이게 더 짧고 의사 표시도 분명하다.
그러면 왜 하필 ‘잘 못 들었습니다’라고 말하느냐. 의사를 분명하게 표시하려면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라고 하는 게 맞다. 군대 다나까 문법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땅의 병사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왜냐. 우리는 앞서 ‘말입니다’를 탐구하며 군대에선 졸병이 고참에게 감히 함부로 청유나 권유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도 같다. 고매하신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 하급자인 내 탓이다. 당신과의 거리, 발음, 속도, 내가 처한 상황, 전부 내 잘못이다. 당신의 언어는 완전무결하다. 그러므로 나는 대단히 조심스럽게 상급자인 당신이 다시 말하게 하는 수고를 부탁하고 있다. 그래서 어렵게 에둘러 말하겠다. 중요한 건 당신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거다. 군대는 바쁘다. “제가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에서 주어와 술어를 빼거나 줄인다. 어순을 나름 경제적으로 재배치한다. 그런 레시피를 따르면 “잘 못 들었습니다.”가 완성된다. 언제 어느 부대에서 어떤 병사가 천부적 언어 감각을 발휘해 처음 썼던 표현인지 모르나 이미 오래전에 전군으로 퍼져 나갔다.
‘잘 못 들었습니다’의 창시자에겐 미안하지만 이 말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우선 의사표시가 모호하다. 잘 못 들었는데 뭐 어쩌라고? 화자의 다음 행동을 정확히 촉구하지 않는다. 이래서는 온전한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 잘 못 들었다고 거듭 말하는 청자로 하여금 묘한 열패감도 느끼게 한다. 나는 잘 알아듣지 못한다. 나의 신체적 능력이나 청해력, 사고력에 문제가 있는지 스스로 의심하게 한다. 메시지 수용이라는 미션에 거듭 실패한다. 그 같은 사실을 계속 되뇌다 보면 자기 효능감마저 훼손될 수 있다. 군인의 기개와도 거리가 멀다. 예의는 지켜야겠지만 한 마디로 ‘투머치’다. 군인은 상관과 악수할 때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군 시절 이따금 궁리해보곤 했다. 어감도 이상한 이 말을 대체할 표현이 없을까. 국립국어원에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헌데 그곳 연구원분들이 이런 오묘한 정서를 이해할지 알 수 없었다. 군필자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업무의 맨 끝 후순위로 밀릴 것이다. 계급장이 무거워지면서는 은근슬쩍 다른 말도 쓰게 되었다. 말년 고참 얘기에 “뭐 말입니까?”라고 반문한다. 이것도 확실한 대안은 아니다. 상급자의 역린을 거스르면 안 된다. 너무 도전적이지 않게 수용 가능한 선에서 능청스럽게, 눈치껏 적당한 빈도로만 써야 한다. 여차하면 도로 “잘 못 들었습니다.”다. 결국 전역의 순간까지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이십 년쯤 뒤늦은 대안을 제시한다. ‘오’를 허하라. 다나까가 아니라 ‘다나까나오’, ‘다까오’를 허용해 달라. 이게 다 언어의 제약, 구속에서 비롯된 일이다. 허울뿐인 규율, 권위, 사고의 경직이 부른 비극이다. 부하가 상관에게 당연한 권유, 청유가 가능해야 옳다. “그만 하시지 말입니다.”가 아니라 “그만 하십시오.”, “잘 못 들었습니다,”가 아니라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로 마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그 점을 알고 아주 오래전 어느 못된 고참이 ‘오’만 속 빼고 군대는 ‘다나까’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는 대단히 틀렸다. 권위는 강제로부터만 생기지 않는다. 건방진 것과 당당한 것은 다르다. 예우를 갖추면서도 당당한 졸병, 이등병의 언어를 예비역인 나는 원한다.
드라마 <D.P.>의 해외 인터넷 반응을 봤다. 이런 댓글이 있었다, “한국의 군대는 엄격하지만 제대로 된 규율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병역을 다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고 속상했다. 심각하고 끔찍한 군대 내 사고와 부조리가 거듭 뉴스로 들려오는 요즘이어서 더 그렇다. 드라마에선 군대만 조명했지만 기실 그곳만의 문제도 아니다. 민간, 사제(私製)라고 별반 다를까도 싶다. 일반기업, 관공서, 학교, 비영리 단체까지 권위에 기댄 모든 곳에서 크고 작은 형태로 오래도록 있어 온 일일지도 모른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드라마 <D.P.>의 시퀀스가 있다. 수통 장면. 역시나 스포일러의 위험 때문에 말을 아낀다. 극 중 인물이 말한다. “저희 부대에 있는 수통 있잖습니까. 거기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아십니까. 일구오삼. 육이오 때 쓰던 거라.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이 또한 소름 끼치는 현실 고증. 이십여 년 전 내가 썼던 수통에도 미군 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제 그 수통 다 바뀌었다고 제발 누가 좀 말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