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지급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일요일 오후 노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핸드폰이 “깨톡!” 기척을 한다.
- OOO님은 이번 국민 지원금 지급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 사유 : 보험료 기준 초과
이게 뭐야. 안경을 고쳐 쓰고 메시지 내용을 찬찬히 다시 본다. 아, 재난지원금 안 준다는 소리구나.
공돈 싫다는 사람 못 봤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지만 머리는 한 번에 벗겨지지 않는다. 탈모는 더디 오고 현금은 말 그대로 지금(現) 돈(金)이다. 우리 세 식구 곱하기 인당 이십오만 원. 칠십오만 원이면 잠시지만 삶의 질이 달라진다. 다른 집은 몰라도 우리 집은 그렇다. 재난지원금 지급은 우리 집 초미의 관심사였다.
국민 비서 ‘구삐’가 주인인 나한테 올린 첫 보고는 ‘탈락’이었다. 세상의 모든 탈락, 불합격은 가슴 아프다. 다른 사람은 줄 건데 넌 안 돼, 거절당하는 심정은 참담하다. 아, 구삐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짧은 소개를. 정부에서 만든 알림 서비스다. 금번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 조회뿐 아니라 교통범칙금, 국가 건강검진, 운전면허 적성검사 갱신 등 행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카카오톡 채널을 신청하면 때 맞춰 알림 메시지를 보내온다. 구삐는 좋은 비서, 굿(Good) 비서의 앞 글자를 소리 나는 대로 적어 붙인 이름이란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며칠 전 출근하기 무섭게 아내가 메신저로 지난달 월급명세서에 찍힌 내 건강보험료를 물었다. 답을 들은 아내는 아, 못 받겠네, 했다. 건강보험료 기준 금액을 살짝 넘었단다. 맞벌이 부부는 가구원 한 명 더 있는 거로 쳐준다고 내가 얼른 귀띔했다. 아내가 “그거 이미 반영한 거야...”라고 답을 보내왔다. 문장 끝에 쓸쓸한 점 세 개는 아쉬움이다.
누가 들으면 부부가 합쳐 돈 깨나 버는 줄 알겠다. 실상은 전혀 아니올시다, 다. 한 사람씩 쪼개어 보면 ‘소중하지만’ 보잘것없는 월급이다. 주변에 더 크고 좋은 회사 다니는 또래 동기들과 비교하면 되레 부족하고 적다. 나 혼자 외벌이가 미덥지 못해 아내는 기를 쓰고 회사에 다닌다. 그 대가를 얹으니 크게 보이는 것이다. 착시다.
부부 한 달 수입이 어떻게 스쳐 지나가는지를 보면 더 그렇다. 맞벌이하는 아들 딸, 사위 며느리를 대신해 낮 동안 친모와 장모가 번갈아 초등학생 아이를 봐주신다. 그게 감사해서 적은 돈이나마 두 분께 매달 부쳐드린다. 위대한 노동의 가치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지만 어찌 됐든 고정 지출이다. 두 어른 낮에 그래도 좀 숨 돌리시라고 아이를 영어, 수학에 미술까지 학원으로 돌린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학원 세 군데 원비도 만만치 않다. 제일 큰 거, 집 대출금. 원금까지 다 갚으려면 요원하지만 이자만 치르는 데도 통장이 숭덩 잘려나간다. 두 사람 출퇴근 교통비, 밥값에 주말에만 타는 차 기름 값, 아파트 관리비, 인터넷과 핸드폰 통신비까지 빠져나가면 손에 남는 것이 없다. 내가 가끔 어느 저녁, 가까운 이들과 술 한 잔 하는 돈은 사실상 큰 사치다. 그런 나의 삶이 상위 12 퍼센트란다.
아내에게 확인사살 문자가 도착했다고 알렸다. “우리 집 사는 거 와서 한 번 보라고 그래!” 아내가 뾰로통해서 말한다. 그러면서 거실 벽을 가리킨다. 손가락 끝이 향한 곳에 허연 벽지가 혹처럼 부풀었다. 몇 해 전 이사 들어올 때 최저가로 부른 도배 업체의 작품이다. 처음에 뾰루지처럼 작던 것이 어느새 볼썽사납게 커졌다. 우리 집 거실 벽은 아내에게 빈한한 삶의 증표다.
얼마 전 여당 경선 토론회에서 유력한 두 후보 간의 설전을 떠올린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한 후보가 영화 기생충에 빗대어 다른 후보에게 물었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송강호 집은 반지하로 비가 그대로 들어오고 이선균 집은 비를 감상한다. 이선균과 송강호에게 똑같이 8만 원 주는 것이 정의인가, 아니면 그 돈을 모아서 송강호 집을 좋게 하는 게 맞지 않나.” 질문받은 후보 말하길 “송강호에게만 지원하겠다고 세금 내라고 하면 이선균이 세금 내지 않을 것이다.” 이에 질문한 후보가 다시 말한다. “그것은 부자에 대한 모욕이다. (부자는) 사회에 기여하고 명예를 얻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양비론과 양시론은 안 된다. 대학 때 평생 은사로 모시는 교수님으로부터 글쓰기 훈련을 받았다. 교수님은 어떤 글을 쓰더라도 모두가 옳고 모두가 그르다는 식의 결론은 피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다. 글 쓰는 재주가 부족해 교수님께 늘 송구하나 그 말씀만은 가슴에 새기고 실천해왔던 나다. 헌데 위 대목만은 두 후보 모두 맞고 하나같이 틀렸다고 말하겠다. 어지간하면 다 준다는데 나만 쏙 빠지게 된 것 같아서 솔직히 서운하다. 그러나 과격한 저항감까지는 생기지 않는다. 이른바 조세저항과는 거리가 먼 감정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명예욕이 일지도 않는다. 그저 조금 어리둥절할 뿐. 다만 우리 집 대신에 더 절실한 곳에 요긴하게 쓰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이선균도 송강호도 아니다. 우리 집 베란다 창에 비가 들이치면 감상보다 걱정이 앞선다. 내일 출근길 우산 챙겨야 하나.
아내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얘기한다.
- 그 돈 칠십오만 원. 내가 주식으로 벌겠어!
아내는 지난해 코로나 상승장에 편승해 개미 투자자가 되었다. 새가슴에 겨우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굴리는 게 빤하다. 열정만은 워런 버핏 못잖다. 난 재테크에 영 젬병이다. 벌어서 쓰는 것만 빍히지 불리는 데는 관심도 능력도 없다. 나와는 다른 아내가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재난지원금 탈락 문자를 다시 보니 맨 끝에 이의신청이 가능하단다. 아내 말마따나 우리 집 사는 거 보여주면 추가 합격이라도 시켜줄라나. 거실 벽지 나온 사진 한 장이면 심금을 울릴지도. 아서라. 말아라. 재난지원금 안 받아도 좋으니까 그저 감염병 없는 세상에서 속 시원히 마스크나 벗어재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