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이튿날 아침,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전화다. 모친은 길 건너 아파트에 사신다. 며느리 바꾸란다. 직접 전화하시지 왜? 안 받는단다.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온다. 휴대폰을 건넸다. 예, 어머니. 네, 네?네. 알겠어요. 짧은 통화가 끝난다. 엄마가 뭐라더냐 물었다. 갈비찜용 고기 사서 가져오신단다. 아, 아내한테 만들어달란 소리다. 언젠가부터 설이나 추석 때면 아내가 갈비찜을 만드는 게 공식이 됐다. 엄마가 아부지랑 미국에서 들어온 창고형 마트에서 찜용 소갈비를 넉넉하게 사 온다. 그걸 명절날 하루 이틀 전에 받아다 아내가 만든다. 갈비찜을 완성하면 명절 당일 본가에 들고 간다. 무람없는 노총각 동생 녀석이 가장 맛있게 먹는다.
아내의 갈비찜은 맛있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지 물었다. 별 거 없는데. 나 양념도 대기업 제품 쓰잖아. 두 가지는 신경 쓴단다. 먼저, 핏물을 최대한 빼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불순물이 뜨고 국물이 탁해진단다. 잡내도 나고 느끼하다. 그다음 알맞게 익히는 게 중요하단다. 충분히 익히지 않으면 고무처럼 질기다. 너무 오래 익혀도, 소위 오버 쿡(over cook)이 돼도 좋지 않다. 고기가 힘없이 부서진다. 씹는 재미가 없는 거다.
신혼 시절을 돌아본다. 아내와 어머니는 쉬 가까워지지 못했다. 어느 날 아내와 고부 관계를 주제로 이야기가 흘렀다. 아내 친구나 동료, 선배 언니들이 그러더란다. 시어머니는 직장 상사 대하듯이 하면 된다고. 그게 요즘 며느리들의 처세법인가 싶었다.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냥 친딸 친엄마 사이처럼 안 되나. 근데 그럴 수 없는 거였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친딸과 친아들이 어떻게 결혼을 하나. 그런 가족은 세상에 없다. 그렇더라도 직장 상사는 대체로 스트레스의 대상이다. 서로 맞지 않는 상사와 부하처럼 고부 갈등의 위기도 있었다.
중간에 낀 나는 몹시 난처했다. 아내와 친모 두 사람 어느 쪽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처음엔 이해를 강요했다. 아내에게 시어머니가 그래도 어른인데 최대한 맞춰드리라고 했다. 엄마에게 가선 며느리 좀 잘해주라고 타박했다. 그랬더니 그 미움이 모두 나를 향한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반대로도 해봤다. 아내에게 우리 엄마지만 왜 그런다냐 했다. 엄마 앞에선 며느리 흉을 봤다. 그것도 정답은 아니었다. 잠시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잔불은 언제든 다시 화마가 된다.
운영의 묘가 필요한 터였다. 아슬아슬한 경계를 기술적으로 타야 한다. 선역과 악역을 교묘하게 넘나 든다. 아내에게 우선 엄마 잘못도 크다고 말한다. 그래도 너는 이해심 많은 사람 아니냐 다독인다. 엄마에겐 며느리가 어려서 뭘 모른다고 한다. 그러니까 엄마가 잘 알려주면 되지 않느냐 달랜다. 일단 편들어주고 포용과 아량을 당부한다. 그것도 안 먹힐 때가 온다. 그러면 가운데 낀 나한테 그러지 말고 직접 얘기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내가 지금 전화 걸 테니까 두 분이 차분히 얘기해보라고 한다. 실제 그 단계까지 간 적은 없다.
십 년이면 강산뿐 아니라 고부 관계가 변한다. 부부 싸움의 양상과도 비슷하다. 상대에 대한 캐릭터 파악이 끝난다. 아, 이 사람은 이런 성향이구나. 이건 이렇게 맞춰줘야 하는구나. 이것만 건드리지 않으면 성내지 않는구나. 뇌관을 건드리지 않으면 폭발할 일도 없다. 무엇보다 측은지심이 생긴 듯하다. 우리 아부지 강퍅한 성격 평생 받아주는 시어머니가 안쓰럽다. 부전자전 예민한 남편 성질 견디는 며느리가 기특하고 고맙다. 서로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본다. 결국 남자들이 문제다.
아내가 핏물을 몇 번이고 우려서 버린다. 저녁나절 내내 온 신경이 불 앞으로 향한다. 찜솥 뚜껑을 거푸 열어본다. 줄었다 싶으면 물을 조금씩 보충한다. 그 모습에서 부족한 우리 집 식구들 챙겨주는 마음씨를 본다. 갈비찜은 너무 오래 익히면 맛이 떨어진다지만 우리 집 고부 관계는 오버 쿡을 환영한다. 익을 대로 익어서 입에 넣으면 저절로 녹듯 한없이 부드러운 질감이면 좋겠다. 씹는 재미는 거부한다. 남편이자 아들인 내가 잘해야 한다. 시어머니 아들, 며느리 남편이 아니라 우리 남편, 우리 아들로서. 모레 아침 아내가 정성껏 만든 들큼한 소갈비찜을 들고 본가로 건너갈 예정이다. 처가도 빠뜨리면 서운하지. 아내가 큰 밀폐 용기 두 개를 꺼내 놓았다. 괜스레 마음이 넉넉하다. 늘 한가위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