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 건너뛰기의 해악

by Hoon

일전에 친한 벗들과 만난 자리였다. 재미난 유튜브 동영상이 퍼뜩 떠올라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원하는 구간이 한 번에 찾아지지 않는다. 검지 손가락을 여기저기 찍어본다. 개중 얼리어답터인 친구가 내 전화기를 휙 낚아챈다. 야,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찾냐. 손가락으로 톡톡 두 번 치면 10초, 세 번 치면 20초 아냐. 충격! 이렇게 편리한 탐색 기능이 있었다니. 동영상 아래 ‘탐색 바’에 대강 이쯤이다 싶은 부분으로 이동해 놓는다. 화면 왼쪽이나 오른쪽을 두어 번 톡톡 두드린다. 점프, 점프! 그래, 내가 찾던 부분이 여기였어. 집에 와서 초등생 딸아이를 불렀다. 너 이거 알아? 헐, 아빠 이것도 몰랐어? 완전 아재네, 아재.


‘10초 건너뛰기’는 ‘빨리 감기’보다 혁명적이다. 패스트 포워드(FF : Fast forward)는 원하는 지점으로 가기 위해 리니어(linear)하게, 즉 선형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간편한 도약은 허용되지 않는다. 예전 집집마다 있던 VHD 비디오 리코더를 떠올려보자. 기계 본체나 리모컨에 있는 삼각형 두 개 그려진 버튼이 그것이다. 버튼을 누른다. 가고 싶은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어쩔 수 없이 화면을 지켜봐야 한다.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삐리릭 삐리릭 우스꽝스럽게 말하고 동작하는 등장인물을 무기력하게 보고 있어야 했다. 건너뛰기는 그 모든 불편을 해소한다. 말 그대로 퀀텀 점프(Quantum jump : 어떤 일이 연속적으로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뛰어오르듯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물리학 용어)다.


나는 이제 건너뛰기 숙련자다. 손가락 톡톡, 미려한 동작으로 동영상 재생을 제어한다. 유튜브 볼 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다른 OTT 서비스나 플랫폼, 동영상 플레이어 비슷하게 생긴 것이라면 일단 톡톡 두드리고 본다. 안 되는 것도 아주 드물게 있으나 거의 웬만해선 유튜브와 비슷하게 작동한다. 편의적 장치는 빠르게 세상에 보급된다. 나처럼 아예 몰랐으면 몰라라, 알게 된 이상 전에 모르던 불편이 가시처럼 찌른다. 서비스를 애용하게 하려면 고객의 모든 고충을 해소해야 한다. 사실상 건너뛰기 기능이 없는 미디어는 재래식 방송뿐이다.


방송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러니 TV 시청률이 악화일로일 수밖에. 건너뛰기가 안 되는 게 결정적이다. 바쁜 세상에 누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광고 끝나고 오프닝부터 얌전히 보고 있나. 중간부터 본다 해도 줄거리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선형적 재생은 피로하다. 네가 보고 싶은 부분이 어디야? 미안하지만 기다려줘. 어디 딴 데 갔다 오면 더 따라오기 힘들 거야. 우리가 내어주는 코스를 넌 하나씩 음미해야 돼. 맛없다고 물리치거나 뱉을 생각은 접어 둬. 건너뛰기는커녕 빨리 감기도 없는 거 알지? 네가 할 수 있는 건 나와 함께 한 걸음씩 천천히 걷는 것뿐이야. 미안하게도.


경청과 정독의 멸망인 시대다. 10초 건너뛰기는 세태를 반영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이른바 굿 리스너(Good listener)가 드물다. 다들 필요한 것만 얄밉게 간추려 보고 듣길 원한다. 초장에 흥미를 돋우지 못하는 이야기라면 거부한다. 경청과 정독은 상당한 에너지를 요하기 때문이다. 잘 들으려면 내 목소리는 잠시 넣어두어야 한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상대의 낮은 음성에 가만히 집중한다. 섣불리 결말을 예측해서도 곤란하다. 절정의 짧은 순간을 위해 겸허한 자세로 긴 시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읽고 보는 것은 더하다. 듣는 것보다 능동적인 감각의 수용 행위다.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고도의 두뇌 연상 작용으로 머릿속에 구성한다. 이야기의 끝을 구경하려면 얼마간의 힘을 지속적으로 소모해야 한다. 경청과 정독은 지극한 정성이다.


굿 리스너, 방송인 유재석을 곱씹는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가 보여주는 경청의 자세는 남다르다. 그는 좀체 타인의 말허리를 자르지 않는다. 엇, 나 그런 거 봤는데 싶다면 오해다. 아주 친한 동료 연예인이 하는 말에 희극적인 재미를 위해 제한적으로 시도하는데 당신은 그걸 본 거다. 대체로 말 중간 재치 있는 추임새다. 그런 거라면 양념처럼 보태는 리액션, 훌륭한 지각 반응이 된다. 출연자가 하는 그 어떤 이야기에도 그는 지긋한 눈빛으로 지금 잘 듣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단 유재석 씨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남 얘기 잘 들어주는 친구가 인기도 많다. 당장 나부터도 내 얘기 잘 들어주는 친구와의 수다가 즐겁다. 그런 친구들은 내가 만든 시공간 안으로 선뜻 들어온다. 실제 있지 않은 공상도 함께 정성껏 그려준다.


사람 사이에는 건너뛰기 없으면 좋겠다. 너 왜 사람을 띄엄띄엄 보냐,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건너뛰기로 보지 말고 선형적으로 이해해달란 말이다. 찬찬히 들어달란 뜻이다. 살아온 이야기를 서로 천천히 알아가는 사이면 좋겠다. 정속 재생을 권한다.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차갑고 매몰찬 손가락 두드림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드랍고 따뜻한 터치를 나는 원한다. 오늘부터 약속하기로 하자. 우리 사이엔 건너뛰기 없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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