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광」 이야기

by Hoon

중학교 2학년 아니면 3학년 즈음이다. 국어 교과서에 수필 「메모광」이 실렸다. 나중에 알아본 것이지만 일제 강점기 시인이자 영문학자 이하윤 선생의 작품이다. 중학교 당시에도 국어 선생님이 친히 알려주셨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나의 생체 하드 드라이브에선 말끔히 지워지고 없었다. 애초에 저장이 안 됐을는지 모른다. 다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특한 인상만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작가는 지독한 메모 광(狂), 마니아가 됐다. 잊어버린 것을 다시 기억해내는 일이 어지간히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단다. 친구 집에서 어울려 놀다 귀가했는데 메모해둔 종이가 안 보인다. 그 늦은 밤, 차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길을 돌아가서 기어이 분실물을 찾아낸다. 작가는 그때만큼 곤히 잔 밤이 없다고 한다. 그 정도면 편집증 아닌가. 뭐 이런 괴짜 같은 양반 글을 교과서에 실었을까, 중학생인 나는 의아했다.


스마트폰에 보면 메모장이 있다. 피처폰 시절에도 비슷한 기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있더라도 저장 용량이 적어서 큰 쓸모는 없었겠다.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나서도 처음에는 별로 쓸 일이 없었다. 이런 원초적이고 구시대적인 기능이 굳이 필요하나. 전화번호라면 주소록에 저장하면 된다. 약속은 달력에 직접 기록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보낼 메시지라면 문자 기능을 쓰면 될 일이다. 계산은 계산기로 시간은 시계로. 사진이야 카메라 달려있으니 뭐. 메모장은 도통 쓸 일이 없었다. 그땐 또 한참 뇌세포가 싱싱할 때라 여간해선 잘 잊어버리지도 않았다.


그러던 내가 이하윤 선생의 선지자적 사고를 수십 년이 지나 설핏 이해한다. 내후년이면 중학교 가는 여식을 둔 나이쯤 돼서. 처음엔 회사 업무 때문에 메모장 기능에 의존했다. 일이 몰리니까 시간도 계획해서 써야 한다. 그러려면 해야 할 것에 순서를 두어야 했다. 일거리를 목록으로 기록한다. 거창하게 ‘투 두 리스트(To do list)’라고 할 것도 없다. 궁하면 통하겠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 그제야 메모장 존재의 이유를 받아들인다. 휴대전화 제조회사 똑똑한 연구원분들이 쓸모없는 것을 넣어두었을 리 없다. 스마트폰 메모장은 따로 분리해둔 나의 전기적 뇌수다.


지금은 아주 사소한 것도 메모장에 적어둔다. 남이 보면 뭐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적었대 싶을 수도 있다. 친구가 했던 농담, 아이가 학교에서 겪은 일, 아내의 잔소리까지 들어있다. 나중에 거푸 물어보면 성가셔할 내용들 같다 싶으면 여지없이 기록한다. 너무 많아서 어떤 때는 내가 쓴 것도 알아보지 못한다. 특히 술 마시다 기록한 메모는 더 그렇다. 분명 아주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으니까 취한 와중에도 쓴 것일 텐데 해석이 안 된다. 내가, 내가 아니었던 민망한 경험까지 메모장이 고스란히 품었다. 이런 체험을 나만 한 게 아니어서 이하윤 선생의 수필 「메모광」에도 다시 읽으니 똑같은 대목이 나온다. 위대한 선구자적 경험을 못난 내가 늦게 알아보았다.


먼 미래에 내가 없는 세상을 가정한다. 누군가 내가 유품처럼 남긴 휴대전화기를 발견했다. 내 인생이 궁금하다면 사진 앨범이나 주소록, 메신저 앱을 뒤져서는 알 수 없다. 나는 사진도 잘 찍지 않고 주소록엔 지나간 인연들도 잔뜩이다. 메신저에는 마지못해 보낸 전언도 많다. 거기엔 진짜 내가 없다. 그것들 말고 메모장. 메모장을 들춰 보시라. 거기 자연인 Hoon이 겪어낸 일상, 삶의 작은 파편, 이따금 중대한 인생의 관문을 통과하는 심경이 단서처럼 남았으리라. 이 공간을 빌려 수필가 이하윤 선생께 진한 동질감을 느끼며 그것을 일찍이 알아 모시지 못한 깊은 사죄를 올린다. 또 스마트폰 메모장 개발자들께도 송구한 말씀을 전한다. 당신들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기뻐하십시오, 이제 여기 그대들의 역작을 분신처럼 애용하는, 점차로 뇌세포가 늙어가는 가여운 영혼이 있습니다. 나는 메모광이 아니라 메모장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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