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못 생긴 남성을 일컬어 언젠가부터 오징어라고 부른다. 오징어 세계에도 분명 잘 생긴 수컷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진대 잔혹하다. 그런 오징어가 세계적 대세가 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얘기해보자. 안 할 수 없지 않은가. 넷플릭스 글로벌 톱 텐, 거기서 1등 먹었다는데.
추석 연휴 때 온갖 영화와 드라마를 몰아서 보았다. 뭐뭐 봤는지 열거한다. <말리그넌트>, <올드>, <케이트>, <오징어 게임> 순서로 봤다. 난 냉면 먹을 때 계란을 맨 마지막에 맛본다. <오징어 게임>이 잘 나왔다고 진즉에 들었기 때문에 가장 나중으로 미뤘다. 아시는 대로 <오징어 게임>은 드라마고 나머지는 영화다. <케이트>는 넷플릭스 영화다. 어땠냐고? 결론부터 시원하게 말씀드린다. <오징어 게임>이 단연 수작이다.
아, 심각한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으나 원하지 않으시는 분도 마저 읽으시면 좋겠다. 결말 안 다고 볼 거 안 보지 않으실 것 아닌가. 우리는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래, 절름발이가 범인이래, 이선균 집 지하에 사람이 산대 따위의 스포일러도 거뜬히 이겨냈다.
연휴 첫날 <말리그넌트>부터 개시했다. 공포 영화 <컨저링> 시리즈로 유명한 제임스 완 감독 작품이다. 영어 'malignant'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악의에 찬, 악성인’이라고 나온다. 악성 종양(a malignant tumor) 할 때 그거다. 영화를 다 보면 왜 제목을 그렇게 지었는지 알게 된다. 여주인공 주변에 불가사의한 살인 사건이 자꾸 일어난다. 알고 보니 주인공 뒤통수에 의식을 가진 종양이 자랐던 것. 정확히는 주인공 몸으로 흡수된 기생 쌍둥이가 악의를 품고 저지른 일이라는 게 사건의 전말이다. 어쩐지 살인마가 달리는 장면 보면 사람이 뒤로 달리는 것 같더라니. 감독은 신박한 반전 효과를 기대했겠지만 역부족이었다. 뒤통수에 붙은 얼굴은 어디서 본 듯한 소재다. 19세기에 만들어진 도시 전설, 머리 뒤에 얼굴이 하나 더 있는 영국 귀족 ‘에드워드 모데이크’ 이야기가 그것이다. 개연성도 부족하다. 여주인공이 그 나이 먹도록 본인도, 한 이불 덮고 자는 남편도 몰랐다? 아둔하기가 이를 데 없다.
다음 날 밤은 영화 <올드>를 봤다. “나는 죽은 사람이 보여요.(I see dead people.)”란 대사로 유명한 영화 <식스 센스>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만들었다. <올드>는 최악이다. 감독의 창의력이 예전만 못하다. 슈퍼 히어로와 악당 이야기의 원전을 다룬 <언브레이커블> 3부작까지는 좋았다. <올드>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그것처럼 시간이 미친 듯 빠르게 흐르는 어느 해변이 무대다. 그곳에서는 아이가 금방 어른이 된다. 소꿉친구 사이에서 몇 시간 만에 아이가 태어난다. 늙어 죽고, 다쳐 죽고, 미쳐 죽고, 다 죽는다. 헌데 그게 임상실험에 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한 몹쓸 제약회사의 소행이었다니. 우주적 기현상을 차용하기엔 이 얼마나 빈약한 범죄 동기인가. 꼬마가 중년 아저씨가 돼서 돌아왔는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무조건적 신뢰의 세계관이다. 디테일도 엉망이다. 아무 의료장비도 없는 바닷가에서 응급 수술을 한다. 시간이 빨리 흐르기 때문에 개복한 배가 금세 닫힌다. 메스로 절개한 살이 삽시간에 아무는 것이다. 급기야 사람들이 개복 부위를 손으로 잡아 고정한다. 그 사이 재빨리 수술을 한다. 환자가 몇 분 만에 회복한다. 아니,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흐르면 개복한 사이에 조직이 마구 붕괴할 것 아닌가. 어떻게 멀쩡히 살아나냐고.
셋째 날은 넷플릭스 영화 <케이트>로 이어갔다. 넷플릭스라고 백전 백승은 아니다. <케이트>는 식상하다.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살인 병기 특수요원의 처절한 복수기. 영화 <제이슨 본>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셀 수 없이 봐왔다. 배우 이병헌이 주연한 우리 영화 <달콤한 인생>도 같은 플롯이다. 아니, 지금 방송사 MBC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검은 태양>의 국정원 요원 남궁민 배우도 복수에 열심이다. 설정도 이상하다. 여주인공은 방사능 내부 피폭이 되어 삶이 겨우 하루 남았다. 그 몸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아크로바틱을 펼친다. 병사(病死)는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죽음은 선형적으로 다가온다. 애초 여주인공의 제거 대상이었던 소녀와의 교감도 동의하기 어렵다. 애정에 시간이 절대 조건일 수 없다지만 만난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무엇보다 영화 제목부터 잘못 지었다. 여주인공 이름인 케이트가 아니라 그녀가 시종일관 찾는 탄산음료 ‘붐붐 레몬’이 타이틀이었어야 옳다.
이제 계란 노른자를 맛볼 차례다. 마지막 밤 <오징어 게임>을 정주행 했다. 세계 랭킹 1위라는 성적표와 상관없이 훌륭하다. 한 마디로 ‘국뽕’이 차오른다. <오징어 게임>이 앞선 세 작품보다 단연 시의적절하며 창의적이고 치밀하다. 먼저 완벽한 시의성을 칭찬한다. 코로나 시대 경제 활동이 위축된 보통의 사람들이면 누구나 솔깃할 소재다. 열심히 살았는데 손에 쥔 것 하나 없는 빌어먹을 세상, 이 꼴 저 꼴 안 보고 어디 한 탕 크게 걸어서 인생 역전할 찬스 없을까. 시청자 절대다수가 처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 소재와 주제 의식이다. 고도로 계산되고 의도된, 말하자면 기획의 승리다. 한국인들이 어릴 때 흔하게 하던 소꿉놀이를 소재로 삼은 것도 창의적이다. 엇, 저거 내가 어릴 때 하던 놀이인데! 하며 오프닝부터 몰입시킨다. 신기한 건 한국적 특성이 세계 도처에서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인류 보편의 정서는 언제나 국경을 넘는다. 개연성도 충분하다. 왜 그런 목숨을 건 게임에 제 발로 들어가는지. 등장인물 각자의 서사가 어렵지 않게 수긍된다. 디테일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딱지와 구슬을 공동 소유로 하는 ‘깐부’가 거론될 때는 감독의 기억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공은 살아남겠고 게임은 어떻게든 이기겠지만 과정의 서사는 예측 불가능하다. 치밀한 사고의 결과다.
<오징어 게임>의 한계도 모르지 않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일본 영화 <카이지>나 그 원작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 아니면 <배틀 로열>, 할리우드 영화 <헝거게임>이 연상된다는 소감도 일리 있다. <오징어 게임>의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원작 만화를 둔 일본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에서 그대로 먼저 나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우연의 산물이지 극의 흐름을 보면 유사성이 전혀 없다는 감독의 반응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그것보다 근래 인터넷 ‘짤’로 돌고 있는 주연 이정재 배우의 도시락 씬! 아니 정재 형님은 아무리 맛없는 소품이어도 그거 한 숟가락 보기 좋게 떠드시지 빈 수저로 허공답보하셔서는. 농담.
독창성에 대한 시비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은 아주 잘 만든 상품이다. 요리와 요리사로 빗대 보자. 세상은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한 요리사만 최고라고 칭송하지 않는다. 요리사라는 직업의 본질 자체가 그렇다. 세상에 나와 있는 식재료를 엄선해서 기존의 조리법을 바탕으로 하되 자신만의 비법을 가미해서 최고의 맛을 이끌어 내는 사람, 그가 바로 훌륭한 요리사다. 이 같은 명제에 낱말 몇 개만 바꾸면 영화감독이란 직업과도 통할 것이라 믿는다. 물론 ‘whole brand new(완전히 새로운)’의 기상천외한 작품만 고집하는 천재 감독도 어딘가 있겠지만. 요리에서 맛의 균형이 중요하듯 영화도 그렇다고 본다. <오징어 게임>은 밸런스가 일품인 영화다.
영화사적 지식은 없지만 그런 생각도 해본다. 한국 영화가 이렇게 탁월하게 창의적이고 완성도 높은 이유가 무엇일까. 결국 한국 사회 현실의 오롯한 반영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 월드에 어느 나라라고 먹고 살기 만만한 데가 있겠냐만 한국은 유독 치열한 나라다. 저기 선진 유럽의 유유자적한 삶과 생존에 가까운 대한민국의 일상을 비교해 보시라. 치밀하게 계획하고 끝없이 정비하며 날마다 개선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불안한 삶. 그것이 영화나 드라마, 콘텐츠 생산의 영역이라고 다르지 않다. 어지간한 서사 구조와 개연성이 아니면 말도 안 되네, 유치 뽕짝이네 욕먹기 십상이다. 끝없는 채찍질이 명마를 조련했다.
이번 판은 <오징어 게임>이 이겼다. <말리그넌트>, <올드>, <케이트>의 참패다. 그러나 너무 낙담하지 마시라. 무비 월드는 <오징어 게임>이 아니다. 한 번 졌다고 목숨까지 앗아가지 않는다. 분발하시라, 외국인 감독님들. 당신들은 충분히 재능 있고 여전히 보여주지 못한 게 많은 사람들 아니신가.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도 자만하면 안 된다. 456억 원을 거머쥐고도 초연한 듯 일상을 살아가는 성기훈(이정재 扮)처럼 다시 본업에 충실하시길 권한다. 아니, 성기훈처럼 얼른 영화 세계로 돌아와서 신작을 선보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