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았다. 2차 아니고 1차다. 기피하려던 건 아니다. 노쇼 백신 당겨 맞을 의향까진 없었을 뿐이다. 연령대별 접종 날짜가 열리자마자 예약했다. 그 날짜가 늦었다. 처음엔 이렇게 늦은 날짜도 아니었다. 원래 2주 전 어느 날로 했었는데 병원을 바꾸려다 보니 미루어졌다. 변명 같네. 주위에서 주사 맞았냐고 인사말처럼 물어본다. 아직, 이라는 내 대답에 더러 바이러스 보는듯한 반응이어서 이렇게 됐다. 늦었지만 맞았다. 처음부터 당연히 맞을 생각이었다. 부작용 따위 겁나는 거 전혀 아니다. 이 풍진 세상 어떻게 돼도 미련 없다.
병원 왜 바꾸었는지는 고백한다. 처음에 회사 근처로 예약했었다. 근데 그래도 가본 적 있는 병원이 더 미덥지 않을까 싶었다. 안면 있는 의사 선생님이면 더 좋고. 왠지 그런 곳에서라면 혹시 모를 응급 사태에 더 능동적으로 대처해줄 것 같았다. 그래서 바꿨다. 그렇게 하느라 날짜가 늦어진 거다. 아, 또 변명.
우리 동네 담배 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 이게 아니고. 우리 동네 오래된 소아과 병원에는 의사 선생님이 좋다. 내가 안다. 딸아이 갓난쟁이 시절부터 데리고 다니던 동네 소아과 병원이다. 어지간한 예방접종은 그 병원에서 다 맞혔다. 아기 포대기에 폭 싸서 오던 때부터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던 때, 어린이집을 가고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고학년이 된 오늘까지 아이 이마에 열이 오를 때면 반사적으로 달려갔었다. 원장 선생님은 우리 애 크는 모습을 식구 다음으로 꾸준히 지켜본 분이다.
처음에는 선생님을 악덕 의료업 종사자로 오해했었다. 그 병원은 항상 진료받기가 힘들다. 어느 밤 아이가 마른기침을 자꾸 뱉는다. 미열이 있다. 아내가 내일 오전 회사에 반차 휴가를 내고 병원에 데려가겠단다. 같이 못 가서 미안하다고 일렀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잠옷 차림에 대충 점퍼를 두르고 집을 나선다. 이른 시간에 어디 가냐고 물었다. 병원 예약이 금방 차니까 지금 먼저 가서 명단을 적어놓아야 한단다. 그렇게 하고 돌아와도 두어 시간 뒤에나 진료가 가능하다. 그때 아이를 데려가면 된단다. 전화 예약도 안 받아서 부득불 직접 가서 아이 이름을 말해야 한단다. 지금 병원에 가면 아이들은 없고 엄마들 대기 줄만 병원 복도를 감고 있을 거라는 설명이다. 아니, 진료를 어떻게 보길래 그렇게 배려가 없어. 배짱 장사가 아니고 배짱 진료네!
오해는 후에 내가 몇 번 아이 손을 이끌어 병원을 찾으면서 말끔히 씻겨나갔다. 아니 그런 마음을 품은 게 무척 죄송했다. 선생님은 아픈 아이 한 명 한 명을 정말 정성스럽게 진료하신다. 진료실 문틈 사이로 들으면 미주알고주알 뭐 저렇게 하실 말씀이 많으실까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니 대기가 길지. 근데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기다림의 지루함이 아픈 내 새끼 차례가 되니까 최고의 의료 서비스로 바뀐다.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치료는 어떻게 할 것인지, 주사 아니고 약이니까 겁먹지 않아도 된달지, 약도 먹기 힘든 알약 아니고 빻아서 가루약으로 줄 거라든지 아이와 보호자에게 그렇게나 상냥한 어투로 묻고 들으신다. 전화 예약을 안 받는 의중은 그렇단다. 보호자가 먼저 와서 아이 증상이 어떤지 얘기를 해줘야 진료 시간을 가늠할 수 있으니까. 전화로 예약을 받으면 통화 대기 시간도 그만큼 길어져 먹통이 될 테니까.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병원은 진료받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네 다음 환자요.” 하는 병원보다 이백 배 낫다.
이런 배경으로 선생님이 계신 소아과 병원에서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게 되었다. 이번에는 현장 예약 없이 곧바로 병원엘 향했다. 병원 문을 열어보니 아이들은 없고 어른만 두어 명. 백신 맞으러 온 사람들이다. 얼른 맞고 가면 되겠지 했는데 웬걸. 진료실 문틈으로 또 말풍선이 삐져나온다. 아, 선생님은 어른 아이 차별이 없으시군요. 예방주사야 말로 “네 다음.” 이게 가능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드디어 내 차례. 원장님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하고 왼팔 소매를 걷어 올리는데 선생님은 아직 주사를 놓을 마음이 없으시다. 어쩌다 접종이 늦었느냐, 컨디션은 어떻냐, 근래 불편한 데는 없었느냐 물으신다. 알레르기 같은 건 없는지 물으셔서 어릴 때 다른 병원에서 ‘피린 계열 약’ 부작용이 있다고 들었노라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일순 선생님 표정이 비장해지신다. 자세히 알려 달라셔서 중학생 때 병원서 처방해준 약을 먹었는데 손발이 퉁퉁 부었다고 말씀드렸다. 음, 화이자 주사면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데.. 잠시 골몰하시더니 너님은 센터로 가서 맞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신다. 네? 무슨 센터요?? 이런 작은 병원 말고 지역마다 큰 ‘코로나 예방접종센터’가 있는데 혹시 모를 부작용이 예상되는 환자는 거기서 접종을 실시하는 게 낫다고 설명하셨다. 선생님, 저 오늘 주사 맞으려고 부러 회사에 휴가 내고 온 건데요. 주사 안 맞으면 저 출근해야 되는데요. 거기 가면 오늘 주사 맞을 수나 있는 건가 싶은데요..
선생님이 다시 잠시 골몰하신다. 별안간 내 오른쪽 팔뚝을 걷어 혈압을 재신다. 왼손 검지 손가락에 전기장치 달린 두툼한 집게를 물리신다. 그때 이후로 다른 증상은 정말 없었느냐 물으신다. 그럼요, 맹세코 없었어요! 흡사 의학 드라마 <하얀 거탑>의 배경 음악이 들리는 듯. 의료 사상 최대 외과적 수술을 앞둔 집도의의 눈빛이 되셔서는 그럼 한 번 해보자, 별일 없을 거다, 몸 이상하면 바로 알려 달라, 혹여 무슨 일 생겨도 우리가 빠르게 대처할 거다, 너님은 주사 맞고 다른 분들보다 조금 더 있다가 가라, 말씀하셨다. 예, 선생님! 자신 있어요!! 아까 멋쩍게 내렸던 왼팔 소매를 다시 대차게 걷어붙였다.
나 때문에 다른 분들이 더 많이 기다리게 됐다. 그분들이 다 떠난 이후에도 병원에 더 머물렀다. 다행히 코드 블루의 상황은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께 저 시간 다 됐다고 이제 가도 되냐고 여쭸다. 이건 진짜로 예상 못했다. 원장 선생님이 진료실로 또 들어오라신다. 어디 불편한 데 없었느냐, 가슴 답답하고 그런 거 없느냐, 손발이 부어오르는 것 같진 않느냐, 집에 가서도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병원으로 와라. 마지막 당부 말씀을 듣는 동안에도 바깥 대기 시간이 늘어난다. 내 알레르기가 이렇게 민폐일 줄 몰랐다.
언젠가 출근길에 선생님을 보았다. 나는 타려고 전철역 개찰구를 들어가는데 선생님은 막 내려서 나오신다. 어? 선생님 전철 타고 다니시는구나. 나처럼. 공연히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환자 손님 끊이지 않는 잘 나가는 소아과 병원 원장님이면 시커먼 고급 세단 자가용이라도 타고 다니실 줄 알았다. 의외다. 전철 애용자라고 모두 선한 사람일리 없겠지만 선생님 성품을 드러내는 작은 증명 같았다. 출근하는 선생님 표정이 나와는 사뭇 다르다. 과장 조금 보태면 놀이터 달려가는 어린이의 그것이랄까. 나? 놀이터 있다가 학원 가야 하는 어린이 같았겠지 뭐.
선생님께 마음으로 감사드린다. 아기 때부터 딸아이 살펴주신 건 말할 것도 없다. 오래도록 우리 동네 주치의로 있어주셔서 몹시 고맙다. 이렇게 좋은 분에게 동네의 꼬꼬마들을 맡길 수 있어서 무척 다행이다. 무조건 건강하셔야 한다. 앞으로도 그 아이 같은 웃음을 쉼 없이 만나고 싶다. 앗, 병원은 자주 가면 안 되는 곳인데. 이따금씩 오래오래 뵙는 걸로. 우리 동네 아파트 값이 얼마고 땅값이 얼만지 난 모르겠고. 이게 우리 동네 클라스다. 난 우리 동네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