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만물의 작동 원리가 대체로 비슷하다. 나이가 들면서 크고 작은 경험이 쌓이니까 더 그런 것 같다. 그런 생각을 자동차 종합 검사소에서 거푸 했다. 자가용 승용차를 검사 라인에 밀어 넣고 결과를 기다린다. 어, 이거 굉장히 익숙한 시추에이션이네. 전에 없던 기시감이다.
서너 달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회사에서 해주는 몇 없는 복지 혜택이다. 마흔 살 전에는 격년으로 받았다. 불혹 딱 되니까 그때부터 매년 받으란다. 회사도 아는 거다. 그 시점부터는 몸 고장 나는 빈도와 확률이 높다. 나라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도 만 40세에 받는 걸로 안다. 나도 몇 해 전에 국가 건강검진 받으라고 우편 봉투를 받았다. 속지에 ‘생애 전환기 건강검진 안내’라는 제목이 시선을 당겼다. 생애 전환기라. 내 인생이 반환점을 돌았구나.
오래된 SUV 자동차가 한 대 있다. 딸아이 태어나기 한두 해 전, 그러니까 아내와 데이트하던 시절에 구입했다. 내 돈 벌어 처음 산, 아직까지 유일한 차다. 차 나이를 한자어로 차령이라고 부른다. 차령 몇 세쯤부터 ‘올드카’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차는 확실히 ‘영(young) 카’는 아니다. 자동차 세계에 생애 전환기가 있다면 그 시점은 예전에 지났다. 차 사면 4년 동안은 정기 검사가 면제된다. 사람은 태어나서 40년 되면 첫 검사받으니까 차 나이 1년은 사람 나이 10년인 셈이다. 내 차는 백 살 넘은 할아버지다.
나 건강검진 받는 거랑 똑같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잡는다. 늦지 않게 집에서 출발한다. 나는 공복으로 갔는데 차는 기름 넣어준 것만 다르다. 검사소 정문에서 안내를 받는다. 큰 화물차 옆에 승용차 대기 줄이 따로 있다. 가장 짧은 줄로 눈치껏 차를 몬다. 잠시 기다리면 내 차례다. 검사 직원이 앞으로 오라고 수신호 한다. 대시보드에서 자동차 등록증을 꺼내 보여준다. 주민증 검사 같은 거다. 주차 변속 기어에 놓고 키 두고 내리란다. 대기실로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결과가 나온다.
2년 전 검사만 해도 별생각 없었다. 이번엔 조금 걱정이 된다. 경유 차니까 배기가스 나쁘다고 할까 봐. 공기 질 흐리니까 이제 그만 탈 때 됐다고 할까 봐 말이다. 폐차하라는 말 들을까 싶어 걱정이다. 아니면 동력 계통이나 현가장치에 이상이 있다, 큰돈 들이는 대대적인 수리를 각오해야 할까 싶어 가슴 졸였다.
단계를 거치며 차가 앞으로 나아간다. 처음엔 밖에서 눈으로 이것저것 살핀다. 라이트 중에 안 들어오는 거 없는지, 좌우 사이드 미러는 온전한지 점검한다. 사람으로 치면 본격적인 검사에 앞서 키, 몸무게 재고 그런 거다. 직원분이 탑승해 차를 조금씩 앞으로 전진시킨다. 보닛을 열어 엔진오일 상태를 본다. 타이어가 얼마나 닳았는지도 살핀다. 가속 페달을 밟아 제 자리에서 바퀴가 구르게 만든다. 운전대 조향과 실제 달리는 방향이 다르진 않는지, 제대로 멈추는지 확인한다. 이번엔 엔진을 끝까지 몰아붙인다. 배기가스에 오염물질이 얼마나 섞이는지 본다. 어느덧 마지막 검사다. 헤드라이트를 켜서 밝기, 빛이 나아가는 각도를 점검한다. 사람 시력 검사 비슷하다. 나 건강검진 받을 때 이방 저방 돌면서 서세요 앉으세요 누우세요 했던 게 떠오른다. 사람 손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자동차를 대기실 유리창 너머로 바라본다.
차량번호 OOOO 차주 나오세요. 결과가 나왔다. “크게 이상 없네요. 엔진 상태도 좋고 소모품도 교체하신 지 얼마 안 됐고요. 단 하나, 왼쪽 후미등 안 들어오는 거 모르셨나 봐요. 정비 코너에서 몇 천 원 주면 갈아주니까 그것만 재검사 받고 가세요.” 기다리던 합격 소식이다. 잠시지만 조였던 마음을 느슨하게 푼다. 최소한 2년은 더 탈 수 있다. 큰 문제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자동차는 사람이 만든 여느 기계장치와 다르다. 차가운 기계에 어울리지 않는 생명력까지 부여한다. 오죽하면 애(愛)지중지하는 말(馬)이라고 부를까. 특히 우리나라 사람에겐 더 각별하다. 운전하다 사소한 시비라도 걸어오면 부아가 치민다. 짧게 울린 경적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아니라 달리는 기계장치를 보고 주의를 알린 거다. 상대방 운전자는 나를 모른다. 요즘 차 유리는 색깔이 짙어서 안에 누가 탔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근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내가 무시당했다고 여긴다. 나에게 위협을 가한 거라고 받아들인다. 이게 다 차와 나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또, 집은 없어도 차는 그럴듯한 걸로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요즘 나오는 자동차의 주거 편의성을 고려하면 차를 달리는 집으로 여긴다 해도 이상한 게 아니다.
나 역시 낡은 내 차를 아낀다. 총각 시절 나 혼자 타던 차에 연인인 아내가 동승하더니 어느 순간 둘 사이에 낳은 아이까지 셋이 탄다. 차 안이 점점 비좁아진다. 그 차로 부모님 모시고 외식도 하고 여행도 갔다. 누추하지만 장가가서는 장인 장모님도 태워드렸다. 우리 애 태어나던 밤, 장인어른 위독하시다는 비보를 들었던 새벽을, 모두 그 차로 달렸다. 생의 관문들이 덜컥 앞을 막아설 때마다 내 낡은 자동차가 함께 해주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린다. 잘했어, 속으로 새기며 차 궁둥이를 쓰다듬는다. 손바닥이 시커멓다. 비 많이 온다는 핑계로 세차 한 번 못 하고 여름을 지났다. 말 못 하는 기계에게 미안한 감정이 움튼다. 에잇, 안 되겠다, 손 세차 맡기고 오자. 너도 오랜만에 때 빼고 광 좀 내야지. 주차장에서 지상으로 도로 나오는 자동차 엔진 소리가 우렁차다. 생애 전환기를 똑같이 지난 차와 차주가 나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