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놀아달란다. 일요일 오후가 심심해 못 견디겠나 보다.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 만나서 노는 것도 여의치 않다. 뭐하고 놀려고? ‘부루마불’ 하고 싶단다. 하필. 그거 시작하면 기본 한두 시간인데. 그래, 밖에 나가서 술래잡기 하자는 것보다야 낫다. 하자, 해! 대신에 세팅은 네가.
천 원짜리부터 오십만 원 지폐까지. 게임 시작 전에 씨앗은행에서 두둑하게 지급받는다. 이게 한국은행 돈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는 노란색 비행기, 난 파란색 비행기. 가위 바위 보! 아싸, 나 먼저. 주사위 2개를 공중에 던진다. 같은 숫자가 나오면 더블, 한 번 더! 이스탄불 12만 원? 이걸 사 말아?! 푸하하, 따님은 시작하자마자 ‘무인도’가 웬 말? 주사위 같은 숫자 안 나오면 세 번 쉬어가기.
유경험자라면 아시겠지만 부루마불은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뉜다. 전반전은 세계를 한 바퀴 돌면서 여러 도시의 땅을 구입할 수 있다. 땅이 모두 팔리면 전반전 끝. 후반전은 그 땅에 돈을 들여 건물을 짓는다. 별장이나 빌딩, 호텔을 올릴 수 있다. 상대방 도시에 걸리면 건물 종류와 개수에 따라 이용료를 내야 한다. 현금이 부족하면 가지고 있는 땅 증서나 건물로 대신 지불한다. 그러다 마침내 요금을 낼 수 없게 되면 파산. 게임 탈락. 마지막 1명 남으면 게임 종료라지만 평생 한 번도 끝까지 가본 기억이 없다. 후반전 하다가 흐지부지 되거나 누구 하나 수틀려서 “나 안 해!”하면 끝이었다.
오랜만에 해보니까 게임에 태생적 한계가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서울’ 사면 끝난다. ‘제주도’도 ‘부산’도 아니다. 서울 산 사람이 그냥 승자다. 서울은 땅값이 조금 비싸지만 막대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뉴욕이나 도쿄가 35만 원, 30만 원이다. 서울은 100만 원이니까 고가이긴 하다. 헌데 통행료만 200만 원이다. 건물 지을 필요도 없다. 아니, 건물을 올릴 수도 없다. 이건 밸런스 붕괴다. 다른 도시는 건물이 없을 경우 통행료 몇만 원에 그친다. 50만 원 주고 빌딩 하나 겨우 올려야 이용료 65만 원이 고작이다. 재수가 없어서 서울 두어 번 걸리면 여지없이 파산이다. 어쩐지 아이가 서울 사려고 주사위 던질 때 주문을 외더라니.
현실 고증인 건가 싶기도 하다. 독점 자본가의 존재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돈이 돈을 벌어주는 그들만의 리그가 분명히 있는 것도 같다. 금수저 은수저가 어디서 나왔겠나. 아빠 찬스, 엄마 찬스란 말까지 있다. 또 하필 서울이다. 서울 땅값, 집값이 천문학적으로 비싼 건 우리 아이도 안다. 가지기만 하면 황금알 낳아주는 거위가 된다. 그래서들 그렇게 서울, 서울 하나보다. 서울 아니더라도 요새 입방아에 오르는 수도권 어느 토지 개발 투자자들도 스친다. 어린이들 장래 희망이 임대업, 건물주인 세상에 산다.
게임이 재미가 없다. 말했지만 서울 사면 끝난 건데 뭐. 더 볼 필요도 없다. 저노무 서울은 그동안 경쟁자들의 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다. 애초에 게임이 안 된다. 한두 시간 가만히 앉아서 주사위 굴릴 이유가 없다. 아, 너 서울 샀구나. 오케이, 패배 인정. 끝. 더 하면 뭐 해? 어차피 네가 다 쓸어갈 건데. 나머지는 쪽쪽 빨리고 고통받다 끝날 텐데. 네가 이겼어. 네가 다 먹고 1등이라고. 이래서는 곤란하다. 게임이 게임다워야지. 이거 우리 왜 하자고 했니? 즐겁게 놀려고 하는 거잖아. 금방 1등 가르고 끝, 이게 아니라 너도 나도 깔깔거리면서 한 바탕 구르고 재미난 시간 보내려고 하는 거잖아. 재밌는 건 오래 해야 하잖아. 오래 할수록 좋은 거잖아.
부루마불 업그레이드를 제안한다. 즐겁고 재미나게 오래 같이 놀자는 취지를 백배 살려보자. 일단, 균형을 회복하라. 서울은 반칙이다. 현실의 반영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다른 도시와 엇비슷하게 맞춰야 한다. 최소한 건물도 없이 통행료만 수백만 원인 건 당장 고쳐야 한다. 불로소득은 안 된다. 다음, 승자독식의 게임 방식도 문제다. 게임 개발자께선 분명 게임의 교육 효과도 염두에 두셨을 게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에 대한 가르침이 목적은 아니었을 거라 믿는다. 1등만 살아남는 잔인한 세상, 나머지는 먹이사슬의 희생양으로 마침내 파산에 이르는 결과는 잔혹하다. 그럴 게 아니라 가장 많이 공공의 선에 기여한 사람을 우승자로 하자. 많이 벌어서 크게 기부하는 사람을 1등으로 추어올리는 거다. 지금 부루마불에 있는 ‘사회복지기금’으로는 부족하다. 그건 사실상 벌칙 아닌가. “나, 이번 턴은 쉬고 기부하겠어. 300만 원 쾌척할 건데, 이걸로 다 같이 나누자. 가장 먼저 기부금 1,000만 원 달성한 참가자가 1등!” 이런 식의 대승적 변화가 필요하다.
즐겁게 오래 하려면 참가자 모두가 엇비슷해야 한다. 케네디 스코어, 야구 경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점수 결과는 ‘8대 7’이다. ‘8대 0’이 아닌 거다. 오해 마시라. 모두가 똑같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정당한 노력에 걸맞은 결과의 차이란 분명 있어야 옳다. 그래야 게임이 성립된다. 꼴등이 있어야 1등이 있는 법. 단, 그 1등이 영원한 1등, 꼴등은 만년 꼴등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딸아이와 협의를 마쳤다. 두 번째 판은 ‘서울’ 사는 사람 없기. 부산과 제주도까지는 인정. 이것도 지역 균형 발전이랄 수 있을까. 부루마불 시즌2가 나올 때까지는 우리만의 게임의 법칙을 따르기로 한다. 자, 주사위 던지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