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아저씨

by Hoon

병원에 자주 간다. 이번에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며칠 전부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했다. 시간이 지나도 낫질 않는다. 비루한 육신 가운데 그나마 튼튼한 것이 성대였다. 어릴 때 학교 수학여행 갔다 돌아오면 며칠씩 쉰 소리를 내는 친구들이 많았다. 무얼 얼마나 소리를 질러대며 놀면 목 상태가 저리 되나, 나로선 의아할 뿐이었다. 어른 돼서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도 나만 목이 쌩쌩했다. 외모만 받쳐 주었어도 록 밴드 보컬 해보는 건데. ‘쓸데없이 고퀄’인 목청이 나에게 와서 붙었다. 그렇게 알던 곳이 고장 났다.


병원 문을 열었더니 대기 인파가 많다. 접수대 간호사 선생님이 접종하러 오셨냐고 묻는다. 백신 주사는 맞았고 진료받으러 왔다고 답했다. 한참을 기다려 진료실에 입장했다. 의사 선생님께 며칠 전부터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말했다. 선생님 첫마디가 가히 충격적이었다.

- 후두암 검사는 해보셨나요?


나지막한 음성에 가슴이 철렁한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뇨..”라고 대답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내시경 같은 장비를 가져와 의사 선생님께 건넨다. 나더러 등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높게 쳐들란다. 그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혀를 죽 내밀고 있으라신다. 거즈로 덮어 혀끝을 잡는다. 내시경이 입 안으로 들어온다. ‘이’ 소리를 길게 내보란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기괴한 동작이다. 외계인들에게 납치되면 이런 식으로 유린당하지 않을까. 다행히 오래 걸리진 않았다. 바르게 고쳐 앉아서 촬영한 몸속 사진을 보았다.


- 음. 다행히 아주 나빠 보이지는 않네요. 이게 성대인데, 보시면 왼쪽과 오른쪽이 다르죠.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쪽이 붓고 빨간 상태네요. 혹시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신가요?

내가 말이 많은 놈이긴 하다. 사흘 치 약을 처방해 주신단다. 약 먹고도 차도가 없으면 다시 오란다. 짧은 진료 시간 사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난치병 환자가 될 뻔했다가 경증 환자로 재분류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암 검사 여부를 묻던 순간부터 심각하진 않다고 얘기해주는 순간까지,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인어공주’를 생각했다.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에서 인어공주는 사람의 다리를 얻는 대신 마녀에게 목소리를 내어준다. 두 다리로 걸어 꿈에도 그리던 사람 왕자에게 다가가지만 음성으로 소통할 수 없었기 때문에 끝내 거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는 동화. 안데르센은 어쩌자고 아이들한테 그렇게 사무치게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일까.


이번 버전은 공주가 아니고 평민 인어. 그것도 아저씨 인어. 회사 잘 다니던 40대 아저씨가 어느 날 목소리를 잃는다. 이달 말로 예정됐던 결혼식 축가는 진즉에 물 건너갔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생계가 곤란하다. 회사 일이라는 게 결국 다 말로 하는 건데 그게 불가능해졌다. 직접 만나서 하는 건 물론 전화 통화도 어렵다. 문서로 주고받는 일엔 한계가 있다. 어디 직장에서만 문제랴. 집에서도 큰일이다. 아내와 딸, 세 식구 사이의 대화가 원천적으로 소멸한다. 조용한 가족의 탄생. 연로한 부모의 걱정은 인어 아저씨의 더 큰 걱정이 된다. 가족의 해체, 풍비박산 일촉즉발의 상태다. ‘수어’라도 급하게 익혀야 한다. 근데 그게 어디 쉬운가. 나이가 들면 배우는 머리도 굳는다. 그걸 할 수 있게 됐다고 만사가 다시 형통하는 것도 아니다. 아기 걸음마 떼듯 하나하나 완전히 새로 터득해야 한다. 헌데 이것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어야 가능한 시도다. 불멸의 세포는 육체 이곳저곳을 무너뜨린다. 인어공주가 그러했듯 인어 아저씨도 언젠가 거품처럼 스러져갈 것이다. 중년의 잔혹 동화가 있다면 딱 이런 플롯이다. 비극 중의 비극이다.


약 아홉 봉지를 다 먹고도 낫질 않는다. 결국 병원에 다시 갔다. 외계인에게 두 번째 납치당하면 이런 그림일 것이다. 기괴한 자세로 목 사진을 또 찍었다. 의사 선생님이 입을 떼기까지 인어 아저씨 생각이 또 스친다.

- 완전히 낫진 않았는데 사진 상으로는 지난번에 오셨을 때보다 그래도 낫고 있네요. 다 나으시는 때까지 시간이 더 걸리시겠어요. 일주일 치 약을 더 처방해드릴 텐데 그거 다 드실 때쯤이면 완치되실 거예요.


인어 아저씨가 썩 물러간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게 핵심이란다. 무조건 말을 삼가란다. 목을 안 쓰는 만큼 회복이 빠르다. 선생님께서 아무래도 내가 다변가라는 걸 간파하신 것 같다. 거 말 좀 작작하쇼, 라는 얘기를 에둘러하신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 당분간 좀 닥치자. 말하기보다 듣자. 입을 닫고 귀를 여는 것, 경청의 자세만이 살 길이다.


진리는 단순하다. 잃어봐야 가진 것의 고마움을 안다. 돌기에 가깝도록 짧은 것이지만 난 이미 두 다리가 성하다. 목소리와 바꾸어 어렵게 얻을 필요는 없다. 소통의 부재, 그 끔찍한 상황과 실제로 당면하지도 않게 됐다.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머릿속 언어를 성대를 울려 음성으로 발화한다는 것, 그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중대한 행복의 조건임을 알았다. 더구나 의사의 소통을 넘어 노래할 수 있는 이들은 특별히 더 행복한 사람들이다.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마음을 담아 부르는 노래는 모두가 아름답다.


대한민국의 의술은 완성의 단계다. 선생님 말대로 약 한두 봉지 남을 때쯤 딱 목소리가 돌아온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되찾은 목소리로 이제부터라도 좋은 것만 말하고 싶다. 인어 아저씨라니. 해괴하고 망측하다. 아프지 말고 모두 건강합시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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