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3년 전 입사했다. 면접장에서 처음 만났다. 스물한 살 앳된 얼굴. 수줍은 막내 여동생 같은 인상. 아니지 내 나이가 기준점이면 조카뻘이지.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먼저 작은 광고회사에 취직했단다. 그러기를 1년 남짓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계약 연장이 안 됐단다. 구직 활동 몇 달 만에 면접에 임한다. 유창하진 못하지만 조리 있게 답한다. 본인이 호소하듯 꼼꼼해서 업무 상 실수가 잦을 것 같진 않다. 마음에 들었다. 두 번의 면접 끝에 채용이 결정되었다.
사실 사람 한두 번 잠깐 보고 적임자를 골라낸다는 게 어불성설인 일이다. 오래 겪은 사이도 뜻밖의 상황에서 자기 진짜 모습이 나온다. 하물며 잘 준비된 가면을 들고 면접장에 들어오면 속아 넘어가는 게 당연지사다. 그래서 압박 면접을 한다고 하지만 그게 최고의 해법도 아닌 것 같다. 사람이 못할 짓 아닌가. 일자리 찾는 사람을 말로 궁지에 몰아넣는다니. 시쳇말로 갑질이다. 그래서 혜안을 길러야 하는 것인데 말처럼 쉽지 않다. 아주 이따금은 뽑아 놓고 아차 싶었던 순간도 있다. 다 내가 부족한 탓이다.
J를 선택한 눈은 옳았다. J는 예상한 대로 성실했고 업무 완성도도 높았다. 머리도 좋아서 업무 파악 속도가 남달랐다. J의 임무는 내가 속한 회사 본부의 행정을 살피는 것이다. 옛날 말로 경리 업무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숙련자의 반열에 올랐다. 한 번은 내가 J에게 이제 입사한 지 1년쯤 된 건가 물었다. 그랬더니 “아니에요, 팀장님. 저 다음 주면 만 6개월이에요.”라고 답했다. 새로 끼워 맞춘 톱니바퀴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듯 매끄럽게 구른다. J의 장점이다. 잘 뽑았다.
일전에 J를 모교 앞 돈가스 집에 데려갔다. 아, 겨우 대학가 돈가스 사주는 거냐 나무라지 마시라. 물가 비싼 회사 근처에서도 다른 맛있는 것 여러 차례 사줬다. 우연찮게 돈가스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마침 동행한 거다. 대학생 무리 속에서 나는 도드라졌고 J는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아, 또 오해 마시라. 단둘이 간 것 아니고 다른 후배들도 동석한 자리였다. J가 아주 맛있게 먹어주었다. 나의 루틴이 그렇듯 돈가스 먹고 캠퍼스를 한 바퀴 돌아 전철로 회사 복귀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J의 표정이 밝지 않다. J에게 어디가 안 좋으냐 물었다. 점심 먹은 게 체하진 않았는지 살폈다. 뜻밖의 말이 돌아온다. “저랑 비슷한 친구들은 밥 먹고 수업 들어가는데 저는 회사 들어가잖아요. 기분이 좀 그래서요.” 그 얘기에 마음이 털썩 내려앉았다. 그랬겠구나. 그럴 수 있겠구나.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구나. 말로 꺼내지 못하는 미안함이 엄습해왔다. 목구멍 너머로 신물이 올라온다.
내 미안한 감정의 실체는 이렇다. 난 내 기분만 챙겨서 J를 데려갔다. J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곧장 사회생활로 편입했다. 돈가스 한 조각, 입에서는 맛있었어도 삼키며 쓴 맛을 느꼈을지 모른다. 또래의 대학생 사이에 있으면서 나보다 몇 곱절의 이질감을 느꼈을 게다. 그것으로 그치지도 않았다. 상급자라는 작자에게 이끌려 대학교 교정을 통과했다. 평소 의식하지 않았던 진학에 대한 미련이 공연히 고개를 들었을는지 모른다. 이질감, 미련, 아쉬움, 부러움 따위의 감정이 섞여 J의 표정을 만들었으리라.
그렇다고 내가 느낀 미안함이 주제넘은 동정은 분명 아니다. 난 J를 어리지만 어엿한 후배, 동료로 인식해왔다. 대학교를 가지 않고 선뜻 직업인의 세계로 발을 내디딘 그 결심을 아주 높여 본다. 같이 ‘남의 돈 버는’ 입장에서 누가 누굴 낮춰 보겠나. J 역시도 스스로 항상 당당했다. 대학 졸업장 없이도 J는 인정받는 회사원이었다. 나는 J를 한 사람의 숙련된 프로페셔널로 대단히 존중한다.
다만, J의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보니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았다. 갓 스무 살 된 애지중지 키운 딸을 서슬 퍼런 사회로 내보내는 부모 심정이 편하기만 할 리 없다. 최대한 미루고 싶은 게 당연지사다. 어떤 사정인지 모르지만 딸의 결정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가족 생계를 위해 서둘러 취직해 달라 먼저 청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라도 엄마 아빠 심정으로 마뜩하지 않았을 것이다. 딸 가진 아비여서 내가 안다. 대학 졸업장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 그딴 얘기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사회로 나가기까지 얼마간이라도 내적 성장, 마음의 완충제를 구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지 못한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릴까 공감한다는 말이다.
그런 J가 며칠 전 퇴사의 뜻을 밝혔다. 어디 다른 회사로 가느냐 물었다. “그런 거 아니고요. ‘번아웃’이 온 것 같아요. 잠깐 쉬면서 뭘 하면 좋을지 찬찬히 고민해 보려고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팀장님.” J의 답을 수긍한다. J는 지금까지 아주 잘했다. 본부 살림살이를 맡아 사소한 ‘빵꾸’조차 없었다. 번아웃의 자격이 충분하다. 아직 젊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을 맡아도 충분히 잘 해낼 것이다. 준비해야 할 적절한 시점이다. 늦게라도 학업을 이어갈지, 다른 직업 경로를 탐색할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무엇이 되더라도 그 선택을 응원한다. J는 여봐란듯이 잘 해낼 것이다.
내주 초에 J에게 점심을 사주기로 했다. 돈가스는 먹지 않을 생각이다. 뭐 먹고 싶은지 미리 골라두라고 일렀다. 무엇을 먹든 조촐한 회자정리의 시간을 가질 셈이다. 분위기 봐서 거자필반(去者必返 :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됨)까지 바라볼 요량이다. J의 앞날에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 J 부모님께도 늦은 고마움을 전한다. 생의 변곡점을 맞이하는 J가 부러울 따름이다. 번아웃이라면 나는 댓 번은 넘게 왔다 간 것 같은데. 처자식 벌어 먹이려고 마음이 새까맣게 타서 다 없어진 지 이미 오래다. 번아웃부터 아웃시킨 세상에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