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하는 아들 내외를 대신해 낮 동안 친모와 장모님이 딸아이를 봐주신다. 오늘은 친할머니 당번이다. 아침 일곱 시면 어김없이 문밖 도어록이 뚜뚜뚜 소리를 낸다. 엄마가 들어온다. 머리 말리던 아내가 드라이어를 잠깐 끄고 인사한다. 어머니, 오셨어요. 그때쯤 나는 욕실에서 나온다. 엄마, 왔어? 불혹을 넘긴 아들이지만 어머니 말고 엄마라고 부른다. 아버지는 아버지인데 어머니는 엄마다. 어머니 소리가 수십 년째 입에 안 붙는다. 그건 그렇고. 엄마 손에 항상 작은 도시락 가방이 들려있다. 손녀딸 먹일 아침밥이다. 나와 아내는 아침 출근 준비하기 바쁘다. 아이 밥 준비하는 건 엄두도 못 낸다.
엄마가 가방을 내려놓는데 아야야 한다. 엄마, 어디 아프셔? 응, 오십견이 이제 왔나 보네. 올해 칠순 노모가 오십견이란다. 무려 이십 년이나 늦었다. 기왕에 늦은 거 그냥 들르지 말고 가면 좋았을 것을. 애써서 굳이 왜 왔나 모르겠다. 엄마가 허공으로 팔 상박을 치켜올린다. 이거 봐, 여기까지 밖에 안 올라가잖아. 그러지 말고 병원에 가시라 일렀다. 병원 가도 뾰족한 수 없단다. 가만히 있으면 낫는단다. 그런 게 어딨어, 병 키우지 말고 병원 가시오, 카드 드릴게. 대꾸도 없이 손녀가 자고 있는 방문을 여신다. 다음 장면은 안 봐도 빤하다. 침대에 대각으로 엎드려 자고 있는 손녀딸 볼에 뺨을 비빈다. 잠옷 윗도리로 당신 손을 넣어 등을 긁어준다. 아이는 할머니가 등 긁어주는 걸 좋아한다.
엄마의 오십견이 그만큼 늦은 데는 이유가 있다. 엄마는 또래보다 젊다. 십 년은 젊어 뵌다. 내 엄마여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렇다. 엄마 친구들 뵈면 그제야 실감한다. 울 엄마 나이가 저렇게 됐구나. 비결은 일단 운동이다. 엄마는 나 중학교 때부터 수영장에 다녔다. 아버지도 아침 집안일 끝내 놓고 한두 시간 엄마의 수영장 외출을 군말 없이 동의하셨다. 엄마의 수영 실력을 보고 놀란 적도 있다. 엄마가 가족 여행 가서 바다 수영을 했다. 인어공주가 할머니가 되면 저렇겠구나 싶었다. 그게 전부도 아니다. 수영장 가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계신다. 가사 스트레스를 물리치는 데 수다만큼 좋은 게 없었을 게다.
엄마의 더딘 노화에 긍정적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내는 지금도 시어머니를 두고 얘기한다. 어머니는 진짜 해맑으셔. 걱정이 없으시잖아. 얼마간의 핀잔이 섞인 얘기인진 모르겠다. 실제로 그렇다. 엄마는 최고 수준으로 긍정적이다. 집에 이런저런 우환이 생기면 늘 주문처럼 말했다. 다 지나가게 돼있어. 제아무리 나쁜 상황도 언젠가 반드시 끝나. 천천히 다시 하면 돼. 간악한 운명의 시험대도 엄마 앞에선 기세가 시들었다. 90년대 말 IMF 때 아버지가 갑자기 직장을 나오게 됐다. 그때도 엄마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주 나중에 엄마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물었다. 엄마 말하길, 아버지 건강하고 다 키운 아들 둘 있는데 뭐가 걱정이겠어.
그래서 엄마는 인기가 많다. 인덕이 많다고 해야 할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무척 많다. 그 사람들이 늘 엄마를 찾는다. 부모님은 몇 해 전 내가 장가들며 살게 된 지금 동네 근처로 이사 오셨다. 요즘도 옛 동네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일 때마다 엄마를 부른다. 아주머니들 시골집에서 먹을 게 올라오거나 김장이라도 담그시면 꼭 엄마에게 가져다주신다. 정작 나는 전화 왕래가 뜸해진 고등학교 친구 놈들 어머니들이랑 엄마가 더 친하다. 그분들과 찜질방 가서 다음 날 오전 돌아오는 게 엄마가 가장 고대하는 외출이다. 요즘 말로 하면 엄마는 인싸다.
엄마의 칠십 평생이 꽃길뿐이었느냐. 그건 아니다. 엄마는 글쟁이, 예술가의 아내였다. 정확하게는 글 쓰며 회사도 다니는 남편이었다. 아버지 고된 벌이도 짐작 못할 게 아니다. 그래서일까. 아버지는 강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좋게 말해서 기분파다. 좋을 때는 더없이 자상하고 온화한 남편이다. 그러다가 어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틀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고약한 성질을 엄마는 작은 몸뚱어리로 다 받아냈다. 이번엔 아내가 묻는다. 어머니, 아버님 성격 어떻게 견디셨어요? 엄마 말한다. 뭘 어떻게 참니, 예술하는 사람들은 원래 그런가 보다 했지. 막 올라가다가 한없이 꺼지고 그러잖아. 그런 게 예술이려니 싶었어.
그런 엄마가 뒤늦은 오십견을 앓는다. 칠순 잔치를 못 해드려서 그런가. 다른 생일보다 조금 두툼한 봉투로 때워서 그런 건가. 요새 촌스럽게 누가 그런 거 하냐는 엄마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탓일까. 겉보기 등급 낮은 엄마여서 늙는다는 걸 좀처럼 체감하지 못해 왔다. 또래보다 젊은 엄마에게도 기어이 올 것은 오고야 만다. 한참을 지각한 오십견이 엄마 어깨에 앉아 심술을 부린다.
오래전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다. 입관 앞두고 마지막 인사하는 차례가 왔다. 외할머니가 곱게 화장을 하고 누웠다. 손 한 번 잡아드리고 인사드리란다. 옆으로 가려다 무심결에 할머니 다리쯤을 살짝 짚었다. 물렁거리려니 싶었던 손끝의 예감이 완전히 빗나갔다. 차갑고 딱딱한 그 감촉은 내게 생과 사의 선명한 경계로 남았다. 그러고 할머니 얼굴을 보았다. 편안한 표정에 일순간 저기 흐느끼는 모친이 포개진다. 아주 오랜 훗날, 엄마가 날 떠날 때에도 이런 얼굴일까.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와서 얼른 몸서리치며 떨쳐냈다. 울고 있는 엄마를 부축해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국민학교 다닐 때 집에 차 있으면 부자였다. 지금은 빈부를 가르는 나만의 기준이 바뀌었다. 집에 안마의자 있으면 부잣집이다. 우리 집엔 아직 없다. 엄마 아부지 사시는 본가에도 들여놓지 못했다. 아버님 집에 귀뚜라미, 아니 안마의자 하나 놔드려야 하는데. 못난 아들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그것을 목표로 열심히 벌이 해 보련다. 아쉬운 대로 이따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안 하던 짓 한 번 하겠다. 울 엄마 어깨 주물러 줘야지. 우리 집 남자 셋 평생 돌보느라 애쓰셨다고. 그 어깨에 온 식구가 매달렸으니 고장이 안 나고 배겨. 이십 년 늦은 오십견이 딱하고 안쓰럽다. 아, 그거도 사가야겠다. 엄마 좋아하는 거. 나 뱃속에 가졌을 때 아부지가 처음 사들고 오셨다는 무교동 낙지. 콩나물 많이 넣어 달래서 2인분 포장해가야지. 엄마의 오십견은 일단 이걸로 달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