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고독한 나의 생일

My very lonely birthday

by Hoon

귀 빠진 날 돌아온다. 한 살 더 먹는다. 늙는다. 생일 반갑지 않은 지 좀 됐다. 산타클로스가 세상에 없다는 걸 알게 된 날, 뒷설거지가 성가셔서 물놀이를 꺼리게 된 때, 그리고 더 이상 생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즈음 성큼 어른이 됐다. 어른은 재미없다. 어지간한 일도 심드렁하기만 하다. 지난 주말 초등생 딸아이 친구들이 학교 과제한다고 집 거실을 차지했다. 작은 방으로 쫓겨나 감금된 신세가 됐다. 밖에 아이들 노는 소리가 자지러진다. 뭐 하고 있나 빼꼼히 봤다. 겨우 얌체공 하나를 두고 웃음이 쏟아진다. 어린이는 즐겁다. 부럽다.


생일 얘기하다 말았다. 생일 반갑지 않은 건 어쩌면 학습 효과일 것이다. 생일에 대한 가장 먼 기억. 그것부터 유쾌하지 않다. 지금은 없는 ‘백합 유치원’ 다닐 때다. 반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같은 반에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엄마가 집에서 생일잔치를 열어준단다. 그 아이를 초대했다. 우리 집에 와서 케이크며 떡볶이, 김밥에 과자, 음료 따위를 맛있게 먹어주었다. 난 안 먹어도 배불렀다. 돌아가는 길에 내가 너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다른 남자애 좋아한단다. 친구들 보내고 엉엉 울었다. 엄마는 그 일로 중학교 때까지 놀렸다.


외로움에 사무치는 내 생일. 거기엔 기가 막힌 우주적 우연까지 작용했다. 차라리 운명이라 부르겠다. 내 생일은 이맘때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학교 중간시험 기간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단 뜻이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시험과는 영 담쌓은 녀석들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나 보다. 이 기간만큼은 자숙 모드다. 유희에 관한 그 어떤 것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얘들아, 내일 내 생일인데 우리 집 갈래? 아니면 떡볶이나 돈가스 사 먹으러 갈래? 내가 낼게.(‘쏜다’는 표현은 그 시절엔 없었다.) 말도 꺼내지 못했다. 심지어 집에서도 ‘간소화’ 되었다. 엄마는 말했다. 일단 시험부터 잘 봐봐, 끝나면 너 사고 싶은 거 다 사줄게. 난 물욕이 없는 청소년이었다.


대학교 들어가서는 억울함의 끝이었다. 캠퍼스의 중간시험은 교복 입던 시절의 그것과 비교할 바 못된다. 중고등학교 중간시험은 길어야 일주일이면 끝난다. 대학교는 천차만별이다. 전공이나 학년의 문제를 넘어 대학생 저마다의 수강 시간표에 따라 다르다. 운 없으면 보름도 걸린다. 남들 다 시험 마치고 술 마시러 가는데 썰렁한 도서관을 지켜야 한다. 그러면 나는? 역시나 생일 맞은 티도 못 낸다. 얘들아, 내일 내 생일인데 호프집 갈래? 아니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는 건 어때? 내가 쏠게.(대학교 때 이 표현이 처음 생긴 것으로 기억한다.) 말도 꺼내지 못했다. 집에서는 이제 아예 무관심이다. 알아서 술 먹고 놀다 들어오겠지.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네가 과외 알바비 모아서 사. 난 물욕은 있으되 용돈이 궁한 대학생이었다.


그때는 엄마를 원망했었다. 기왕에 나아줄 거 일주일만 참지. 딱 그 정도면 완전히 분위기 반전인데. 중간시험만 끝나면 세상의 모든 기운이 되살아난다. 이보다 더 좋은 계절이 없다. 맑은 하늘, 선명한 햇볕, 기분 좋은 바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연중 가장 놀기 좋은 때다. 중간시험 딱 끝나는 날부터 학생들은 제도의 중압감을 벗는다. 동네 오락실, 만화방, 놀이터가 활기를 찾는다. 대학가 술집, 노래방, 당구장도 적막을 깬다. 한데 내 생일은 일주일 남짓 세상의 침잠, 그 한가운데 있다. 며칠 상관으로 영원의 운명이 갈렸다.


사회생활 시작하니까 가장 좋은 점. 중간시험, 기말시험 없다는 것.(시험만 안 볼 뿐이지 인사평가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시험대에 오른다는 건 직장인 되고 알았다.) 생일 가까워 와도 중간시험 같은 것에 구애되지 않는다. 이제라도 성대한 파티를 열어볼 만 한데 그렇지가 않다. 생일 자체에 열정이 식는다. 직장인이 무슨 생일잔치야. 회사 다니고부터는 생일날 바라는 것 딴 거 없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무도 나 괴롭히는 인간 없기만 바란다. 상급자에게 불려 가 싫은 말 듣는 것도, 옆 부서에서 달려와 난감한 업무 협조해달라는 것도, 후배 팀원들 사고 친 것 뒷수습하는 일도 오늘만은 열외면 좋겠다.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무사 무탈하게 일하다 퇴근하는 것. 그게 내가 받고 싶은 가장 큰 생일 선물이다.


장가들고 나서부터는 생일에 대처하는 자세가 또 다르다. 가족들과 오붓하게 저녁 한 끼 나누면 그게 최고다. 연로하고 수고한 부모님, 부족한 남편 만난 가여운 아내,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 같은 소중한 딸아이까지, 사랑하는 이들과 소박한 식사면 대만족이다. 나 태어난 날 기념하는 것으로 이보다 더 큰 기쁨이 무엇이랴. 마침 아버지가 생일날 저녁 동네 돼지갈비 집 가자고 하신다. 아내와 나 퇴근하고 곧장 식당으로 오란다. 딸아이 학원 끝나는 것 기다렸다가 데리고 가신단다. 거기서 만나자고 하신다.


귀 빠진 날의 어원이 그렇단다. 출산 과정에서 산모가 가장 고통스러운 때가 바로 아기 귀가 산도를 빠져나오는 순간이라고 한다. 둥그런 머리통에서 귀만 톡 튀어나왔으니까. 생일이란 말엔 태어난 ‘나’만 있다. 귀 빠진 날에는 몹시 아팠을 ‘엄마’가 숨었다. 엄마가 오래도록 아프지 않고 건강하면 좋겠다. 생일을 맞이하야 바라는 것 그것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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