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막 오려던 참이었다. 아득한 저 너머로 카톡, 카톡, 알림이 울린다. 아내가 핸드폰 확인해 보란다. 이 시간에 누구야.. 침대 머리맡에 둔 안경을 찾아 손을 더듬는다. 잔뜩 눈을 찡그려 전화기 화면을 본다. 퍼런 불빛이 침실 천정을 도려낸다. 얼마 전에 입사한 팀원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다.
[팀원] [오전 12:03] ㅓ어싱신타려러
[팀원] [오전 12:07] 야이
[팀원] [오전 12:07] 천자마자ㅣ잠
[팀원] [오전 12:07] 전화파줘ㅕ
보다시피 외계어다. 술 쳐 먹고 잘못 보낸 게 틀림없다. 짜증이 확 몰려온다. 난 가벼운 정도로 불면증이 있다. 사르르 잠이 오는 잠깐을 놓치면 쉬 다시 잠들지 못한다. 네 번의 ‘카톡!’ 알림으로 숙면은 완전히 물 건너갔다. 처음 한 번에서 그칠 수 있었다. 그랬으면 잠결에 못 들었을 것이다. 팀원은 자정 넘어 12시 3분에 저지른 첫 번째 실수를 이후 4분 동안이나 알아차리지 못했다. 뒤이어 세 번의 잘못이 쐐기를 박았다. 숫자 ‘1’은 없어진 상태다. 그 후로 팀원이 더 보낸 메시지는 없었다.
침대로 돌아간다. 아내가 무슨 일 있냐고 묻는다. 으이그, 새로 들어온 팀원 녀석이 톡을 잘못 보냈네. 술 먹고 있었나 봐. 아내가 말한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 팀장한테 무슨 그런 실수를 한대. 나도 맞장구친다. 누가 아니래. 요즘 애들이라 그런가. 일단 잡시다, 출근해서 자초지종 들어봐야지. 그래 봐야 빤하겠지만. 에휴.
라떼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었다. 오밤중에 부서장한테 일 없이 잘못 연락하다니. 그것도 취중에. 그래 놓고 감감무소식이다. 물론 뒤늦게 실수를 인지했을 수도 있다. 차마 잘못했다는 메시지도 못 보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엎질러진 물이다, 일단 흥겨운 술자리 망치지 말자, 나중에 혼나고 말지 뭐, 하는 중일지도 또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찜찜하고 불편한 밤을 보내고 있으려니 싶다. 네가 잘못 놀린 손가락으로 너도 나도 불면이다. 짜샤.
십몇 년쯤 전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출근했더니 팀 분위기가 흉흉하다. 알고 봤더니 선배 하나가 어제 늦은 밤 팀장한테 전화했다가 호되게 꾸중을 들었단다. 술 먹고 실수로 연락한 것도 아니다. 방송 중에 문제가 생겼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다. 팀장에게 전화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 큰맘 먹고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저 아무개인데요, 이런 상황이 생겼는데 어떻게 할까요? 욕지거리가 답으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에 연락해놓고 관등성명도 정확하지 않다, 수화기 너머 상대방이 전화받을 수 있는 상태인지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죄명이라고 들었다. 그땐 그랬다. 옛날 회사는 지금보다 엄혹했다. 훨씬.
나는 그런 것도 아니다. 업무 때문에 연락을 받지도 않았다. 누가 봐도 술 먹고 친구한테 갈 것을 잘못 보낸 메시지다. 사과도 없다. 아무리 취중이래도 숫자 ‘1’ 없어진 건 봤을 테다. 불편한 밤을 보내고 있다면 응당 치러야 할 대가다. 팀장인 나는 걱정까지 되기 시작한다. 이 녀석 과음하고 어디 가서 더 큰 실수하는 거 아냐. 이제 막 뽑아서 가르치고 있는데 다시 뽑아야 하는 건 아닌지 최악의 상황도 가정해본다. 잠을 완전히 망쳤다. 아내는 또 무슨 죄인가. 뒤척거리는 나 때문에 아내도 선잠을 잤다. 이누므시키. 아주 그냥 혼꾸멍을 내놔야지.
다음날 오전 9시 좀 넘어서 팀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녀석은 오늘 휴무다.
- 여보세요.
- 예, 팀장님 아무개입니다.
- 어.
- 어젯밤에 카톡 잘못 보냈습니다. 죄송합니다.
- 너 어제 술 먹고 있었지?
- 예, 맞습니다. 친구한테 보낸다는 걸 팀장님께 잘못 보냈습니다.
- 그래, 잘했다. 네 덕분에 우리 식구들 막 잠들려다가 다 깼다.
- 죄송합니다.
- 퇴근하고 술 먹는 거 네 자유인데 더 큰 실수하지 않게 조심해라. 회사 옮겨서 출근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녀석이 그게 뭐냐. 긴장 좀 해야겠다, 너.
- 예, 죄송합니다.
- 이번 한 번은 너그럽게 넘어가 주겠어. 다시 얘기하지만 술 먹고 실수하지 마라. 너 잘못되면 내가 아주 수고스러워. 너 위해서 하는 소리 아냐. 내가 날 위해서 아주 이기적으로 하는 거지.
- 죄송합니다.
- 잘 쉬고 내일 출근 잘하도록.
통화 끝내려던 걸 다시 불러 세웠다.
- 참, 너 나한테 카톡 잘못 보냈다는 거 언제 알았어?
- 지금 막 일어나서 핸드폰 보다가 알았습니다.
- 어젯밤에는 몰랐고?
- 예..
불면의 밤은 이쪽뿐이었다. 녀석은 만취에 단잠을 잤다. 숫자 ‘1’ 없어진 것도 내 쪽에서만 안 것이다. 녀석은 범죄의 사실에 대해 까맣게 모른 채 편안하고 달콤한 안식의 시간을 가졌다. 이 사실이 가장 약 오른다. 앞에 있었으면 한 대 꿀밤을 쥐어박았을 일이다. 실제 행동에는 옮기지 못했을 일이기도 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보상 심리가 작동한다. 우리 때는 선배 알기를 진짜 어렵게 알았는데. 게다가 팀장이면. 그림자라도 밟을까 두려움과 경계의 대상이었는데 말이다. 2021년의 팀장은 팀원이 술 먹다가 실수로 카톡 잘못 보내는 존재다. 그것도 자정 넘어서 네 번이나. 그러고도 꿀잠 자고 일어나서 쿨하게 잘못했다고 얘기만 하면 그만이다. 고작 그 정도의 무게감이다. 수평적 기업 문화 확립을 위한 노력이 팀장의 불면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는지 모른다.
소심하고 치밀한 복수를 계획한다. 너무 당장이면 티가 나겠고, 금명간 실행하련다. 나도 술을 먹는다. 취한다. 녀석에게 실수인 척 카톡을 보낸다. 녀석처럼 외계어는 아니다. 또박또박 정확한 맞춤법과 띄어쓰기로 총기 있게 쓴다. “네 죄를 알렸다. 내일 보자. 내 자리로 오도록.” 숫자 ‘1’ 없어진 것 확인하고 침대로 들 것이다. 나도 똑같이 말해주겠다. 술 먹고 친구한테 보낸다는 걸 잘못 보냈네, 미안!
아니다. 포용력 있는 리더가 되어야지. 안 한다,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