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만에 가족 3대가 함께 가는 여행을 출발했다. 부모님과 우리 부부, 딸아이까지 다섯 명이 차 한 대로 움직인다. 하룻밤 자고 오는 여행이어서 짐도 단출하다. 도톰한 가방 네 개를 트렁크에 싣는다. 내가 운전대를 잡는다. 조수석에 아부지. 뒷자리엔 엄마, 아이, 아내 순서로 앉았다. 오랜만에 차가 사람 다섯을 태운다. 나와 아내는 회사에 금요일 휴가를 냈다.
목적지는 강원도 속초. 설악산 밑자락 H리조트 콘도에서 숙박한다. 속초 여행은 거의 매년 거르지 않는다. 특히 부모님과 동행할 때면 고민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강원도다. 아부지는 한국전쟁이 한창인 갓난아이 때 이북 평안북도에서 남쪽으로 넘어왔다. 강원도 영월에서 유년 시절을, 춘천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인맥의 대부분이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나 어릴 때 여름방학 바캉스(이 낱말도 참 오랜만에 써본다.)는 으레 강원도행이었다. 어른이 돼서 찾는 강원도가 내 고향인 듯 익숙하다. ‘親강원’의 DNA가 핏줄을 타고 흐른다. 그 줄기가 이제 3대째로 이어진다.
가평 휴게소에서
금요일 오전 이른 시간인데도 차가 많다. 연중 놀러 다니기 가장 좋은 때다. 내비게이션이 세 시간쯤 걸린다고 알려준다. 휴게소 한두 번 들르면 거기서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서울 벗어나는 데 한 시간 걸렸다. 가평 휴게소로 빠진다. 휴게소도 인산인해다. 차를 큰 트럭 세우는 먼 데 주차했다. 화장실을 갔다 나오는데 아이가 할머니 손을 잡고 웬 점포에 들어가 있다. 이동통신사 캐릭터 인형이나 굿즈 따위를 판매한다. 요즘 휴게소엔 별 게 다 있다. 엄마가 아이를 부른다. 가자는 말에 얼른 돌아 나온다. 남은 두어 시간을 더 달린다. 서울 양양 간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터널 길이다. 터널만 열댓 개를 지난다. 국내 최장 터널도 있다. 무려 11km 거리다. 서울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가 9km 남짓이다. 엄청나다. 터널을 뚫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했을까.
휴게소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첫 목적지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도착하니 딱 점심시간. 톨게이트를 빠져나와서 멀지 않은 한우 식당에 간다. 한우라니. 평소에는 언감생심 근처에도 못 가보는 메뉴다. 아내가 큰마음을 먹었다. 에라, 플랙스(flex)다. 냉장고 진열대에서 개별 포장된 고기를 골라오면 나갈 때 음료, 식사와 한꺼번에 계산한다. 한우 모둠, 채끝등심을 각각 한 팩씩 꺼내 왔다. 표고버섯과 키조개 관자도 구워 이른바 삼합을 만들어 먹는다. 고기는 그 이름도 찬란한 투뿔 등급. 비닐에 붙은 가격표를 본 모친이 입을 못 다문다. 괜찮아, 엄마. 어쩌다 한 번인데.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 서울서 먹는 것보다는 그래도 싸. 비싼 고기 탈 새라 심혈을 기울여 굽는다. 아이 빼고 어른들은 젓가락질이 소극적이다. 그러지들 말고 팍팍 드셔!
++A 등급 한우
삼합을 위한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
한우 삼합의 완성
아이가 서두르자고 보챈다. 아이와 아이 엄마, 모친은 리조트에 딸린 온천수 워터파크에 간다. 아부지와 나는 물놀이 취향이 아니다. 아부지가 나는 뭐 할 건지 묻는다. 체크인하고 잠이나 자죠 뭐. 아부지는 속초 시내를 둘러보신단다. 어떻게 다니시려고요? 버스 자주 다닌단다. 아서요, 아부지. 내가 차로 모셔다 드릴 테니까 나랑 같이 다녀요. 아부지가 그럼 중간에 차를 한 잔 사신단다. 그것도 됐고, 일단 타요. 가. 어디 가시고 싶으셔서?
내비게이션에 ‘영금정 전망대’를 찍는다. 영금정은 속초 동명항 근처에 있는 작은 정자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나는 소리가 마치 ‘신령한 거문고’ 소리와 같다고 하여 령금, 영금정(靈琴亭)이라고 부른다. 언덕 끝에 지은 정자가 바닷가의 가을 하늘과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아부지가 굳이 올라갈 필요는 없단다. 동명항 앞쪽 방파제를 한 바퀴 돌아 나오자신다. 아부지가 어깨에 멘 작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신다. 셀카봉이다. 능숙한 동작으로 휴대폰을 설치한다. 봉을 길게 뽑는다. 바다를 등지고 서서 셀카라도 찍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피사체를 향해 낚싯대처럼 드리운다. 기묘한 촬영법이다. 셀카봉 개발자도 몰랐을 사용법이다. 아부지랑 나란히 서서 걷는다. 아부지는 지금으로부터 오십여 년 전, 그러니까 스물한두 살 때 여기 처음 와보셨단다. 교육대학을 다니던 중에 근처 사는 친구 집에서 열흘 남짓 머무셨단다. 그때는 이런 그럴듯한 포구도 없고 회센터는 상상 밖이었단다. 속칭 ‘하꼬방’이라고 부르는 낡은 판잣집만 즐비했단다. 방파제에서 친구 둘과 강소주를 퍼마시는데 두 친구가 육탄전을 벌이며 싸웠단다. 맞은 놈(지금은 할아버지가 되셨을)이 때린 놈을 신고했다. 유일한 목격자로서 파출소인지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했다.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아주 곤혹스러우셨단다. 스무 살 철없는 아버지와 친구들 얘기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맞은 친구는 훗날 설악산만 그리는 유명한 화가가 되셨단다.
언덕 위의 영금정
동명항 방파제에서 본 영금정
차로 돌아와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아부지가 ‘장사항’을 들르잔다. 그 앞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단다. 해안도로를 느릿한 속도로 달린다. 차 앞 유리 밑으로 눈을 치켜뜨며 간판을 찾는다. 아무리 찾아도 아부지가 아는 곳이 안 나온다. 하는 수 없어 프랜차이즈 커피점 앞에 차를 댄다. 아부지가 아쉬워한다. 바닷가 앞 카페며 음식점이 큰 회사들 이름으로 덮인 지 오래다. 여기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딸기 셰이크, 아부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른다. 아부지가 공언한 대로 지갑을 꺼낸다. 됐어요, 아부지. 내가 살게요. 2층으로 올라가 계셔. 음료 받아서 갈게요. 창가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 아부지 첫 모금이 무지 시원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아부지와 커피점에 왔다. 남자 단둘이 커피라니. 그것도 부친과. 부자지간에 찻잔을 사이에 두기까지 사십 년이 더 걸렸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아부지가 수중에 돈이 궁하신단다. 마침 아내 모르게 가지고 있던 돈이 조금 있다. 정부 기관에서 대학교수들에게 연구 주제를 위탁하면 나 같은 방송 현업 종사자에게 설문 의뢰가 이따금 온다. 답변서를 성의껏 작성해서 보내는 대가로 ‘자문료’라고 명명한 수고비를 준다. 이럴 때 요긴하게 쓰라고 주는 돈 같다. 아부지에게 온라인 뱅킹으로 부쳐드렸다. 기분 좋으신지 얼굴이 상기됐다.
아부지와 난생 처음 단둘이 간 카페
‘영랑호’ 잠깐 갔다가 숙소로 가기로 한다. 영랑호는 속초 장사동과 영랑동, 동명동에 둘러싸인 호수다. 먼 옛날 바다였던 곳이 물길이 막혀 호수가 됐다. 아부지 말로는 그래서 호숫물을 떠서 맛보면 짠맛이 돈단다. 굳이 확인하진 않겠다. 아부지가 셀카 아닌 셀카봉을 다시 조립한다. 여기도 추억이 있으시다. 호수 산책로 중간에 호수 쪽으로 큰 바위가 면하고 있다. 저기 앉아서 나중에 속초여고 교장이 된 친구와 술을 드셨단다. 속초 시내 곳곳에 아부지 젊은 날 음주의 추억이 어렸다. 가을볕이 물 위에 부서진다. 나도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켜는데 아부지가 그만 가잔다.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을 조작한다. 목적지는 H리조트. 차로 가는 중에 아부지가 한 마디 한다. 큰아들이랑 처음 둘이 다녀보는데 별로 할 얘기가 없구나. 아부지 이 정도면 진짜 많이 얘기한 거거든요.
체크인을 하고 카드 열쇠를 받는다. 설악산 울산바위 보이는 방향으로 방을 달라고 했다. 아부지 특별 오더다.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부지랑 엄마가 안쪽 방 쓰세요. 우리는 여기. 엄마와 아내 가방도 홀가분하게 내려놓는다. 넌 한숨 자라, 난 한 바퀴 돌고 올게. 아부지가 도로 나가신단다. 511호예요 아부지, 잊어버리시면 전화하시고. 침대에서 큰 대자로 팔다리를 뻗는다. 잠깐 눈 좀 붙일까 싶다가 핸드폰을 더듬는다. 저녁 먹으러 갈 횟집에 전화를 건다. 좋은 점이, 횟집에서 리조트로 픽업 차량을 보내준다. 그 덕분에 나도 회에 술 한 잔 곁들일 수 있다. 오후 일곱 시에 로비 앞에 나가 있기로 한다. 그때쯤이면 여성 3대도 물놀이를 마치고 나올 거다. 몸이 노곤해지면서 눈꺼풀이 내려온다. 딩동! 산책 나간 아부지가 돌아오셨다. 몸을 일으켜 문을 열어 드린다.
영랑호의 가을
시간 딱 맞춰서 아내와 아이, 엄마가 왔다. 빨래 건조대를 펴서 젖은 옷가지를 넌다. 헤어드라이어로 딸아이 머리를 말려준다. 강원도는 강원도네. 해 넘어가니까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다섯 사람 모두 두툼한 외투를 입는다. 여섯 시 오십 분에 방을 나선다. 우리 식구는 칼 같이 시간 약속을 지킨다. 좀처럼 누구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얼마 없는 좋은 유산이다. 로비 앞에서 잠깐 서있으려니 저기 회색 승합차가 한 대 들어온다. 차 옆구리에 예약한 횟집 이름이 박혔다. 차량 기사님도 시간 약속이 철저한 분이다. 육중한 승합차 문을 밀어 닫는다. 출발! 차량 센터패시아 전자시계에 숫자 7과 0 두 개가 선명하다.
차로 십여 분 달린다. 낮에 왔던 장사항 근처 횟집이다. 단골이라면 단골집이다. 아내와 신혼 초, 아이가 젖병 빨던 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왔다. 쓰키다시, 우리말로 ‘곁들인 안주’가 훌륭하다. 난 본래 코스로 나오는 바닷가 횟집을 기피한다. 분홍 소시지, 콘버터 따위로 가짓수를 늘려 가격을 올려 받는 게 영 못마땅하다. 이 식당은 다르다. 허투루 나온 음식이 전혀 없다. 전복회, 삶은 고둥, 가리비 구이, 멍게, 연어회, 문어숙회, 새우 찜과 튀김, 양념 게장에 물회까지. 기본 찬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이것만 먹어도 술꾼들은 소주 몇 병씩 비울 수 있다. 오늘은 다른 날 먹던 모둠회 코스로 끝이 아니다. 노총각 동생 녀석이 저녁때 푸짐하게 먹으라고 모친께 본인 신용카드를 들려 보냈단다. 딸아이는 대게라면 자다가도 일어난다. 1킬로그램 조금 넘는 대게도 찜으로 한 마리 주문했다. 모둠회에는 광어, 우럭, 노래미에 계절 생선으로 부시리가 올라왔다. 나는 전갱이과 생선을 특히 좋아한다. 부시리 두 점을 집어 고추냉이 간장에 찍는다. 횟집에서 나오며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베푸는 기쁨은 해본 사람만 안다. 동생이 나보다 더 좋아한다. 리조트로 돌아가는 차에 오르기 전에 근처 해변으로 나갔다. 예전 어느 여행에서 샀다가 쓰지 못하고 가져온 폭죽을 챙겨 왔다. 횟집에서 빌린 라이터로 불을 댕긴다.
장사항 횟집의 튼실한 기본찬
부시리, 광어, 우럭, 노래미 모듬회
딸아이의 사랑, 대게
숙소로 돌아왔다. 자기 전에 영화 한 편 보기로 한다. 캠핑 갈 때 들고 가는 빔 프로젝터와 스크린, 스탠드를 부러 가져왔다. 객실 큰 방을 영화관으로 꾸민다. 하얀 벽에 비쳐서 보는 영화와 스스로 색을 내는 모니터로 보는 그것은 묘하게 질감이 다르다. 모친은 공포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 영화 볼 때면 엄마가 꼭 늘어놓는 사연이 있다. 있잖아, 며느리야. 내가 얘 가졌을 때 테레비에서 <전설의 고향>을 하는데 얘 아빠는 밖에서 술 마신다고 늦고, 밖에 장맛비는 내리고. 내가 아주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오컬트나 호러 장르를 향한 내 애정은 그날 태중에 흡수된 것인지 모른다. 벌써 몇 번은 들은 레퍼토리에 며느리도 아들도, 특히 아부지가 겸연쩍다. 엄마는 그 밤 아부지의 부재가 한으로 맺혔나 보다. 그러면서 무서운 영화는 왜 좋아하신대. 김강우 배우가 출연한 <귀문>을 보았다. 귀신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뜻의 무시무시한 제목이다. 내용은 더 무서웠다. 지루해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 꿈자리 사나운 일 없이 잘만 잤다.
장사항 해변에서 불꽃놀이
저녁때 먹은 음식이 짰나 보다. 온 식구들이 밤새 냉장고에서 찬 물을 들이켰다. 화장실 등과 환풍기가 같은 빈도로 점멸했다. 아침밥은 체크아웃하고 나가서 사 먹기로 한다. 대게 콘도 조식 뷔페를 먹었는데 오늘은 다르다. 숯불 생선구이 식당에 간다. 딸아이가 결정했다. 이제 제법 컸다고 음식 취향이 확고하다. 엄마 아빠 따라가서 몇 번 먹더니 그 맛에 이끌린다. 이 식당에 올 때마다 궁금했지만 한 번도 주인장께 물어보지 못했다. 88년에 창업하셔서 식당 이름이 그런 건가. 고등어, 열기, 꽁치, 도루묵, 오징어, 삼치, 가자미, 청어, 메로를 숯불에 굽는다. 싱싱한 생선을 강한 불에 빠르게 익힌다. 불향 입힌 생선살이 입에서 크림처럼 녹는다. 원래대로 라면 그런 맛이어야 한다. 어제 횟집에서부터 아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낮에 야외 수영장에서 입술이 파래지도록 오래 놀았단다. 배가 차서인지 탈이 났다. 엄마가 발라주는 생선살을 찔끔 먹다가 숟가락을 놓는다. 아프다며 배를 움켜쥐더니 눈물을 뚝뚝 흘린다. 내가 가자고 해서 생선구이 먹으러 왔는데 나는 먹지도 못하고, 엉엉. 할아버지 할머니가 안절부절못한다. 아내는 식당 주인께 물어 가까운 약국으로 달려갔다. 다음에 다시 와서 또 사주겠다고 아이를 달랜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어찌어찌 밥 한 공기는 비웠는데 배가 부른지도, 맛도 모르겠다.
숯불에 익힌 고등어, 삼치, 꽁치, 오징어 등 생선구이
올라가는 길에 주문진 시장을 들르기로 했는데 취소한다. 아이가 빨리 집에 가고 싶단다. 엄마가 동네에서 못 사는 찬거리를 사 가고 싶어 했다. 대신에 생선구이 식당에서 파는 오징어 젓갈을 사드렸다. 아부지가 맛있게 드셨다. 내 입맛에도 좋았다. 오징어 자체가 달디달다. 여느 오징어젓처럼 미끄덩거리고 질겅이는 식감 없이 차지고 부드럽다. 두 통을 사서 한 통은 엄마 손에, 나머지 한 통은 장모님께 드릴 셈이다. 어제 내려올 때 들른 가평 휴게소 상행선 방향에 들어선다. 휴게소 상행선과 하행선은 완벽한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내려갈 때 본 점포가 올라갈 때에도 반대편에 똑같이 있다. 할머니가 배탈이 난 아이에게 어제 점찍어 둔 인형을 사줬다. 금방 병세가 호전된다. 졸음을 쫓으려 청량음료를 사서 마셨다. 다른 어른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통일이다.
올라가는 길은 어제보다 훨씬 덜 걸렸다. 토요일 오전 서울 춘천 고속도로 하행선은 일찌감치 거북이걸음이다. 못된 심술일까. 두 방향의 극명한 대비에 묘한 승리감마저 든다. 아휴 이래서 언제 강원도 입성하시겠어요 들. 얼마 안 걸려서 동네에 도착했다. 먼저 부모님 사는 아파트 단지 앞에 차를 세운다. 쉬세요 어머님, 아버님. 아내가 인사한다. 그래, 다들 수고했고 즐거웠다. 아부지가 받는다. 아이 아프면 곧장 병원 데려가란다. 상태를 보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이따 약이나 한 번 더 먹이고 재우면 되겠다. 차를 돌려 우리 집으로 향한다.
리조트에서 본 설악산
하룻밤 신기루 같은 여행이 끝났다. 인생 살아질수록 생각이 짙어진다. 남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여행의 추억뿐. 이 시간을 오래도록 붙잡아두고 싶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더라도 대단히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가주라. 어제 아내가 아이 좋아하는 대게살을 발라주는데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부지가 말씀하신다. 이다음에 우리 손녀딸이 크면 지금 며느리 같은 모습으로 또 그 2세를 먹이겠지. 모친께 말을 붙이시며 그때쯤이면 당신도 나도 없고 얘들이 우리처럼 할아버지 할머니가 돼 있겠네. 그 얘기가 생각나서 짐짓 울컥한다. 아부지 말씀 대로일 것이다. 세상 가장 절실한 사랑, 가족애가 핏줄을 타고 흘러가리라. 2021년 가을 어느 날 아부지의 고향, 강원도로 향한 짧은 여정이 거기 녹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