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지독하게 고독한 나의 생일」이란 제목을 붙여 사유의 파편을 정리했다. 제목 그대로다. 내 생일은 지금껏 외로운 날들이었다. 아, 장가들기 전 한정. 생일이 학창 시절 중간시험 기간과 딱 겹쳤다. 제대로 된 생일잔치도 하기 어려웠다. 모친이 한 일주일에서 열흘 남짓만 좀 참았다 나아주시지. 망상에 가까운 염원도 바랐었다. 그때가 연중 가장 놀기 좋은 때니까.
한데 내가 그렇게 바라던 운명을 타고 난 이가 바로 지척에 있었다. 딸아이다. 아이 생일이 11월 초다. 놀기 맞춤한 계절이다.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만추(晩秋)의 정취까지 있다. 올해는 예년보다 기온도 높다. 얇은 옷만 입고도 야외활동이 버겁지 않다. 초딩 신분이라 엄격한 중간시험은 아직 없다. 내후년에 중학교 가면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왐마, 내 생일 진짜로 아슬아슬했네. 시험기간에 묻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지나갈 뻔했으이! 시험 끝난 해방감과 더불어 더욱 신나는 생일날이 될 테다. 내가 태어난 날로 그토록 소망했던 때가 바로 딸아이 생일이다.
아이가 생일잔치 명분으로 주말 점심에 친구들을 초대했다. 집 말고 동네 퓨전 분식집으로 불렀다. ‘위드 코로나’라고 해도 친구들 부모님이 남의 집 거실은 꺼림칙할 것 같다. 작년엔 코로나 불안이 더 극심했다. 친구들 없이 가족끼리만 케이크에 촛불을 붙였다. 올해는 아이가 친구 여섯 명을 초대했다. 요즘 분식집은 별거 다 판다. 떡볶이에 피자, 파스타와 김치볶음밥, 음료수까지 넉넉하게 주문한다. 촛불 부는 사진만 찍어주고 엄마는 빠진다. 아이 엄마가 사진을 보내왔다. 귀한 공주님들 일곱이 옹기종기 모였다. 하얀 구름 같은 마스크 위에 초승달 눈웃음이 떴다. 이렇게 귀엽고 예쁠 수가. 순수한 영혼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광경을 보아서일까. 문득 처연한 생각마저 든다. 순수하지 못한 어른의 상념일지도 모른다. 사진 속 일곱 친구 중에 이 담에 크면 몇이나 딸아이 곁에 남을까. 몇 명이나 오늘 오붓한 만찬을 추억으로 함께 나눌까. 먼저 중학교 가면서 한 번 멀어질 것이다. 같은 학교로 진학한다고 해도 어울리는 무리들이 달라진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그 사이 이사라도 가는 친구들은 더 소원해진다. 통신 기술의 발달이 관계 자체를 보장하지 않는다. 고등학교부터는 인생 경로가 조금씩 다른 각도를 보인다. 어떤 친구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다른 친구는 일찍 정한 직업을 위해 학교에 다닌다. 스무 살 되면 본격적으로 인생 항로가 달라진다. 학문적, 직업적 재능의 차이만큼 사회인으로서 삶을 준비하는 모습도 다르다. 그러다 취직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혹은 하지 않고. 일곱 사람 중 오늘 사진이 기억의 끄트머리인 친구도 필경 생겨나게 마련이다.
중요한 건 오늘 생일 모임이 어떤 기억으로 남느냐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이제 가까운 곳에 없다. 그렇더라도 따뜻한 추억만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언젠가 아이는 오늘 엄마가 찍어준 사진을 보며 새길 것이다. 아, 내가 어릴 때 친구들과 더불어 저렇게 빛났구나. 친구들과 어울려 환하게 웃었구나. 친구들이 나 태어난 날 축하해주려고 저렇게 부러 모였구나. 미소의 근원은 연대감이다. 나는 홀로 외떨어지지 않았다. 동무들과 한 덩어리로 뭉쳐 든든하다. 그것은 관계 형성의 훌륭한 자양분이 된다. 이제 완전히 새로운 무리에 속한대도 그렇다. 유년기에 경험한 연대감은 무던하게 관계 맺는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세대 물림을 통한 청출어람을 믿는다. 자식은 부모보다 어디가 나아도 낫다. 지독하게 외로웠던 아빠의 생일이 딸은 모르는 일이다. 그것이 꼭 태어난 날의 우주적 변화 때문은 아니다. 아이는 중간시험 정도가 아니라 국가적 비상사태 중에 생일을 맞아도 아빠와는 달랐을 것이다. 짐짓 포기하고 위축되지 않는다. 얘들아, 내 생일인데 우리 다 같이 모이자. 맛있는 음식도 많이 준비해 놓을게. 선물 같은 건 가져오지 않아도 돼. 난 너희들과 그날 최고로 재미나게 놀고 싶거든. 내가 생일에 바라는 건 딱 그것뿐이야. 그러고도 남을 성격이다. 딸아이는 요즘 애들 말로 ‘인싸’ 중에 ‘핵인싸’다.
가수 ‘아이유’ 씨가 예전에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다. ‘외로움’에는 반대말이 없다고. 좋음의 반대말은 나쁨이다. 외로움이란 말은 그런 게 없다. 누군가는 반대말이 ‘사랑’이라고 하겠지만 아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따로 있다. 이를 테면 증오, 아니면 더 가혹하게는 무관심. 외로움에 반대말이 없는 건 인류가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녀의 착안이다. 그만큼 고독이 인생의 난제라는 말이다. 나는 오늘 그 해답을 찾았다. 외로움의 반대말은 연대감이다. 생일날 분식집에 모인 초등생 공주님들이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 연대의 감정이 분식집 구석자리에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피어났다.
아이 친구들이 가능하면 오래 친구 사이를 유지하면 좋겠다. 이사 가거나 중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가더라도 계속 친한 친구로 남기를 바란다. 마음만 있으면 못할 것도 없다. 지구 반대편에 가서도 손쉽게 연락 주고받는 세상이다. 와이파이만 터지면 공짜 영상 통화도 가능하다. 그래, 아빠가 약속 하나 한다. 10년 뒤 오늘 모인 친구들 다시 모이는 날, 크게 한 턱 쏜다. 그때쯤이면 너희들도 술 한 잔쯤은 할 테고, 맛있는 음식에 시원한 생맥주 사준다. 아, 눈치 없이 오래 있진 않을게. 첫 잔만 짠하고 카드 주고 갈게. 간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