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능력시험은 1993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나 중학교 3학년 때다. 게다가 수능 첫 해는 시험을 두 번이나 봤다.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어려운 시험을 두 번이나 치렀으니 두 배로 힘들었을까. 아니면 기회를 한 번 더 준 셈이니 여유가 됐을까. 난 싫다. 아픈 주사는 한 번만 맞고 싶다. 딱 하루 단판 승부로 깔끔하게 끝내는 게 내 스타일이다. 대한민국에 처음 도입되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대입 시험. 그것도 시험 날 두 번. 94학번 선배들이 느꼈을 압박감을 짐짓 헤아려본다.
여름방학 말미쯤이 사상 첫 수능 시험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중학교가 수능 고사장으로 선정됐다. 개학날 교실 문을 열었더니 책걸상 대형이 평소와 다르다. 중간, 기말 시험 볼 때처럼 한 줄로만 늘어놓았다. 아, 형 누나들이 우리 반에서 시험 보고 갔구나. 친구들과 평상시 교실처럼 돌려놓았다. 무심결에 책상 서랍에 손을 넣는데 무언가 톡 만져진다. 꺼내보니 종이돈 크기의 납작한 초콜릿 하나. 노란색 메모지가 붙었다. 친구야 네 책상 잘 썼다, 고마워서 작은 선물 남긴다, 맛있게 먹으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반듯하고 예쁜 여자 글씨다. 누나도 시험 잘 봤길요. 그랬을 거다. 글씨체만 봐도 안다. 초콜릿이 유달리 달콤했다.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우리 학교가 고사장이 되었다. 서랍 속 초콜릿이 생각났다. 기특한 일 한 번 하기로 한다. 담임선생님 지시로 책상 의자를 시험 대형으로 바꾼다. 내 것이던 책상 서랍에 매점서 사온 초콜릿을 깊숙이 넣어둔다. 아, 너무 깊어서 모를 수도 있겠네. 다시 조금 입구 쪽으로 당긴다. 메모지도 붙였다. 누가 앉으실지 모르지만 시험 잘 보세요! 얼굴 모르는 예전 그 누나한테 돌려주는 기분이 들었다. 아으, 수능이라니. 떨려. 언젠가 닥칠 나의 미래.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수능 시험 날이다. 어제 학교 일찍 파하고 고사장인 다른 학교에 예비 소집을 다녀왔다. 그 학교로 이른 아침 길을 나선다. 아들, 실력대로만 보고 와. 도시락을 들려주며 엄마가 인사한다. 응, 까짓것. 호기로운 말로 받고 집을 나왔다. 예외 없는 수능 한파. 엊그제까지 푹하던 날씨가 매섭게 얼어붙었다. 우리 반과 닮은 듯 다른 남의 교실이 무척 생경하다. 수험장 안엔 아는 친구도 있고 모르는 얼굴도 많다. 다른 학교 아이들이구나. 머리가 긴 저쪽은 재수생 형일 것이다. 다들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성당 성실하게 나가지도 않는 주제에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을 찾는다. 제발 준비한 만큼만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1교시 언어영역, 2교시 수리탐구영역1이 끝났다. 모의고사보다 어려웠다. 자꾸 아리송했던 지난 과목 문제가 생각난다. 에잇, 그러지 말자. 머릿속에서 지우자. 앞으로 남은 시험만 생각하자. 점심시간이다. 우리 반 교실이었으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먹었을 거다. 오늘은 내 자리에서 혼자 먹는다. 엄마가 싸준 보온 도시락을 책상 위에 올린다. 겉 뚜껑을 열고 밥통을 들어낸다. 스테인리스 쇠그릇이 밥 온기를 머금어 따끈하다. 얼른 열지 않고 잠시 손안에 가둔다. 밥통 뚜껑을 열었더니 뜨뜻한 증기가 피어오른다. 김이 서린 안경을 잠시 벗는다. 흐린 눈으로 뽀얀 밥을 푸는데 밥통 안에 집에 있을 엄마 얼굴이 들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 먹으면서 엄마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해본 적이 있었던가. 한 숟갈 한 숟갈 꼭꼭 씹어서 삼킨다. 계란말이 하나 집으며 유치원 데려다주던 젊은 날의 엄마를 떠올린다. 김치 한 조각 들어 올리며 중학교 교복 사러 가던 날 엄마를 생각한다. 늘 아들 위해서 지극 정성이던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꼭꼭 씹어서 삼켰다. 적당히 배를 채웠다. 졸리지 않을 만큼이다. 그래, 오늘 내 12년 학교생활이 결판난다. 이제 절반 왔다. 든든히 엄마 밥도 먹었으니 남은 절반도 차근차근 가보자. 엄마 밥 먹고 나니까 신기하게 긴장이 사라진다. 차분해진 마음에 남은 3교시 수리탐구영역2, 4교시 외국어영역은 제대로 실력 발휘가 될 듯하다. 밥이 아니라 약을 먹었다.
시험이 끝났다. 어려웠다. 썩 잘 보진 않은 것 같다. 아무튼 끝난 거다. 오늘 하루를 위해서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열심히 다녔다.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일견 허무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내 손을 떠난 일이다. 난 내가 할 일을 다 했다. 결과는 그것대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학교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합쳐진다. 몇몇은 노래방엘 간단다. 또 어떤 녀석들은 어른들 몰래 술도 먹을 거란다. 그래, 알아서들 놀아라. 나는 아무것도 안 할 거다. 집에 가서 세상 가장 편안한 자세로 쉴 거다.
아들, 어땠어? 응, 어려웠어. 거기서 문답이 더 나아가지 않는다.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엄마는 저녁밥을 지었다. 지금 먹을래, 이따 먹을래? 응, 좀 이따가. 일찍 퇴근한 아부지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계셨다. 전국 수능 고사장에서 시험이 끝났다, 오늘 전체 수험생은 얼마였다, 하는 내용의 뉴스가 흘렀다.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는데 궁금해서 못 참겠다. 집 근처 서점에서 오늘 본 수능시험 정답지를 사 왔다. 방에 들어가서 가채점을 했다. 모의고사 때보다 한참 모자란 점수다. 잠시 막막해졌다가 다시 사고를 다잡는다. 그래, 재수다! 재수하면 되지 뭐. 한 번 본 시험, 두 번은 못 볼쏘냐.
거실로 나와서 엄마, 아부지와 저녁을 먹었다. 첫 술을 뜨며 선언하듯 얘기했다. 엄마, 아부지, 나 재수할래요! 집안에 흐르던 적막이 깨졌다. 엄마가 먼저 말했다. 그래, 하면 되지. 1년 금방 가. 오늘 한 번 분위기도 익혔으니 다음에는 더 쉽지. 아부지도 거든다. 너 좋을 대로 해라. 일단은 느긋하게 쉬어. 너 좋아하는 만화책도 빌려 보고. 엄마 아부지 반응이 덤덤해서 일단은 마음 놓였다. 근데 좀 지나서 생각해보니 속으로는 내심 실망하셨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더 죄송했다. 밥 먹는 중에 친구 어머니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들 시험 잘 봤느냐 묻는다. 당신은 아들내미랑 외식하러 간단다. 응, 우리 아들은 시험 어려웠다네. 얘는 어디 안 나가고 집에 있을 건가 봐.
수능 성적표 나오는 날이다. 우리 반 친구들 절반쯤은 수능 끝나고부터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뭐라 하지 않는다. 나는 전과 다름없이 매일 등교했다. 나처럼 한결같은 친구들과 교실에서 실컷 만화책 돌려보고 카세트 플레이어도 들었다. 학교생활 12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자유였다. 오늘은 성적표 나눠주는 날이니까 오랜만에 교실이 찰 것이다. 그마저도 의미 없다고 안 나오는 친구도 있겠지만. 집 문을 나서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볍다. 분명 망친 시험, 그 결과가 나오는 날인데 신기할 정도로 편안하다. 엄마가 말한다. 아들, 성적 안 좋아도 너무 실망하지 마. 괜찮아.
내 이름이 호명되고 일어나서 교탁 앞으로 나간다. 담임선생님에게서 하얀 종이 한 장을 받아 든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킨다. 화투장 쪼개 보듯 실눈을 뜨고 조심스럽게 숫자를 헤아린다. 두둥! 예상보다 나쁘지 않다! 모의고사보다 못 본 것은 맞는데 백분위는 봐줄 만하다. 가채점 결과랑은 다르다. 시험 본 날 저녁 채점할 때 아리송했던 문제는 모두 틀린 걸로 쳤었다. 말하자면 보수적으로 카운트한 것인데 실제 결과는 그것보다 나았던 것이다. 집으로 한 걸음에 달려갔다. 이 기쁜 소식을 엄마에게 먼저 알리고 싶었다.
그 덕분에 ‘재수 없게’ 대학교에 갔다. 다른 친구들보다 합격도 먼저 했다. 나 때는 수능 점수로만 대학에 가는 특차 전형과 나중에 논술 시험까지 더 치르는 정시가 따로 있었다. 나는 논술 시험 없이 합격했다. 일찍 대학교에 붙어서 정시 결과를 기다리는 친구들 눈치를 봐야 했다. 추가 합격자라고 연락을 받고 턱걸이로 대입에 성공한 친구 녀석과 만나 그날 저녁 생애 첫 만취를 경험했다. 집에 못 가고 친구 집에서 잤다. 아, 시험 날 저녁 엄마랑 외식하러 갔던 친구 녀석은 어떻게 됐냐고? 재수했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걸까 아니면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한 걸까. 그 친구도 이듬해 수능 잘 보고 원하던 대학교에 들어갔다.
한파 없는 수능 날이다. 과목도 많이 바뀌어서 이 시간쯤엔 어떤 문제를 풀고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이 땅의 모든 수험생을 응원한다. 준비를 많이 했던 그러지 못했든, 공부를 잘 하든 그러지 못하든, 수험장에 가 있는 것 자체로 위대하다. 우리 요행 따위를 바라지 말자. 딱 내 실력대로만 겨루고 나올 수 있기를 소원하자. 태어나 가장 큰 삶의 이벤트를 치르는 날일 것이다. 이것만 기억하자. 형이 살아봤는데 오늘이 끝이 아니더라. 이적, 김동률 가수 형들이 부른 노래 <그땐 그랬지>에 나오지. “시린 겨울 맘 졸이던 합격자 발표 날에 부둥켜안고서 이제는 고생 끝 행복이다 내 세상이 왔다 그땐 그랬지” 그것도 잠깐이다. 대학교 가면 곧 군대 가야 하고 전역해서 복학하면 취업 준비해야지. 회사 들어가면 끝인가? 사회생활해야지, 뜻있는 사람은 시집 장가도 가야지. 세상 번거로운 결혼식도 올려야지, 또 뜻있으면 아이 낳아야지, 키워야지. 노쇠한 부모님 모셔야지. 그러다 가까운 어르신들 세상 떠나시면 장례도 치러야지. 인생이 큰 관문의 연속이다 연속. 노래에 그다음 가사가 진짜다. “참 세상이란 만만치 않더군 사는 건 하루하루가 전쟁이더군. 참 옛말이란 틀린 게 없더군 시간이 지나가면 다 잊혀지더군.” 꼰대 같은 소리였고. 오늘 태어나서 가장 마음 졸였을 인생의 후배들에게 감히 말씀 올립니다. 모두 애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