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명의 구독자님 감사합니다!

by Hoon

엊그제 ‘브런치 결산 리포트’라는 것을 받아보았습니다. 한 해 동안 작가 활동을 소상하게 정리해서 보내주더군요. 브런치에 글 올린 지 480일 됐답니다. 세월 참 빠르네요. ‘감성 에세이’가 키워드인 글을 가장 많이 썼답니다. 하긴 하잘 것 없는 일상의 기록 정도가 제가 쓸 수 있는 전부입니다. 유용한 정보, 고귀한 철학, 참신한 비전 같은 건 다룰 주제가 못 되거든요. 발행한 글은 일흔 편이 조금 넘었습니다. 누적 조회 수는 33만 회 정도 되고요. ‘좋아요’에 해당하는 ‘라이킷’이 상위 7%라는 것이 무척 흡족했습니다. 등록한 글이나 구독자 숫자로만 줄을 세우면 보이지도 않는 뒤쪽에 서 있을 사람인데 말입니다.


리포트 아래쪽 ‘구독자 100’ 글자가 빛납니다. 저에게는 무척이나 크고 벅찬 숫자입니다. 누추한 글방에 자그마치 백 분이나 들어와 계시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조아려집니다. 한 분 한 분 따뜻한 아랫목으로 모시고 싶은데 마음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무더웠던 작년 여름, 7월 말경이었을 겁니다. 대학원 동기들 모여 있는 단체 톡방에 쓰잘머리 없는 ‘똥글’을 이따금 올려왔습니다. 동기가 권하더군요. 요즘 뜨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중에 ‘브런치’라는 것이 있다고요. 블로그 같은 것인데 철저하게 활자 위주다, 아무나 글 올릴 수 없고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고도 알려줬습니다. 그래, 애꿎은 동기들 그만 괴롭히고 큰 물로 나가볼까. 그렇게 ‘작가 되기’ 신청을 했습니다. 톡방에 썼던 글 세 편을 간추려 보냈습니다. 제가 다른 건 없어도 시험 운은 있나 봅니다. 단번에 통과했습니다. 그때부터 넓은 곳에 ‘똥글’을 살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구독자 숫자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우직하게 내 길을 가겠노라 다짐했습니다. 한동안 제가 올린 글 개수가 구독자 수보다 많았습니다. 마음속에서 작은 소망이 싹텄습니다. 그래, 내가 쓴 글보다만 구독자가 많으면 좋겠다, 그거면 된다. 그렇게 치면 제가 정한 목표를 기준으로 아직 스물몇 편은 더 글 써도 됩니다. 모두 백 분의 구독자님 덕분입니다.


내 길을 가겠다고 해서 아무 의미도 없는 일기장 낙서 같은 글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작가 소개에 밝혔듯 ‘익숙하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좋을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정성껏 담으려고 애썼습니다.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니까 또 가능하면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더라고요. 사람 욕심의 씨앗이 이렇게 자라나 봅니다.


어느 날은 브런치 작가 추천 메뉴를 봤습니다. 거기 아는 얼굴이 있더라고요. 몇 해 전 다른 방송사로 이직한 후배였습니다. 너도 브런치 하고 있구나, 반가웠습니다. 구독자 수가 어마어마합니다. 천백 명이 넘습니다. 등록한 글 숫자는 저랑 비슷합니다. 이런 것이 빈부격차구나. 반가움이 금세 위화감으로 변합니다. 무얼 주제로 글을 쓰나 봤습니다. 본인이 연출하고 있는 유명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취재 뒷이야기를 다루더라고요. 매력적인 주제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정신승리’라고 하나요? 제가 그쪽에 재능이 있습니다. 부러운 마음을 발로 밟아 꺼뜨립니다. 쟤는 자기가 속한 큰 조직, 이름 있는 방송 프로그램 내세워서 사람 모은 거잖아. 난 그렇게 안 해. 정말로 그랬습니다. 저는 자연인으로서 제 얘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방송사나 방송 프로그램 이름을 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고 익숙하지만 진짜로 소중한 것들은 거기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솔직한 말씀으로 그 후배만큼 내세울 것도 없습니다. 이런 게 바로 정신승리잖아요. 다만 나쁘지 않은.


대학교 때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며 본격적인 글쓰기 훈련을 받았습니다. 전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국문과 교수님이 글쓰기 지도를 맡아주셨습니다. 어떤 글이든 양비론(兩非論), 양시론(兩是論)은 안 된다, 분명한 네 입장을 정해라, 한 문단에는 하나의 주제만 담아라, 각 문단의 첫 문장만 읽어도 전체 글이 보여야 한다, 문장은 최대한 짧게 써라, 그러려면 겹문장이 아니라 홑문장이어야 한다, 주술 호응은 반드시 지켜라, 접속어는 쓰지 마라, 한자어나 외래어도 필요한 곳만 써라, 무엇보다 글은 쉬워야 한다, 메시지가 선명한 글은 단연코 읽기에 어렵지 않다 등등의 작문 원칙을 그때 배웠습니다.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강의실에 모여 글쓰기 첨삭 수업을 합니다. 교수님 포함 열댓 명이 모입니다. 제가 써온 글을 최소한 열몇 명이 읽어줍니다. 그냥 읽는 것도 아닙니다. 첨예하게 분석하고 토론합니다. 공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작자와 독자의 입장에서 마음을 헤아립니다. 진정 하나가 돼야 가능한 소통입니다. 브런치 활동의 가장 큰 소득을 그때 미리 맛보았던 것일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무려 백 분의 공감이라니요, 감사할 뿐입니다.


제 글이 구독자를 모으기 쉽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전술했듯 읽어서 당장에 도움 얻는 주제도 아니니까요. 성공하는 법, 돈 버는 요령, 직장생활 처세술, 그것도 아니면 건강이나 다이어트 비법 정도는 돼야 구독 버튼으로 손가락이 움직일 걸로 압니다. 학문이나 직업으로 몸담은 분야에 일견 정통한 내용은 있어야 할진대 전 그러지도 못합니다. 그냥 별 볼 일 없이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한눈에 띄지 않는 글에 호오의 입장을 취하려면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어봐야 합니다. 더욱이 이 사람 하는 얘기 더 들어볼 만하네 싶으려면 천문학적인 확률을 바라야 하고요. 백 분의 구독자께 더 고개 숙여 감사 말씀 올립니다.


브런치 운영진에 바라던 것이 있습니다. 간단한 메시지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한 분 한 분 구독을 시작하신다고 알림이 올 때마다 그랬습니다. “보잘것없는 똥글을 구독하신다니요, 정말 감사합니다. 생의 작은 의미라도 새삼스럽게 발견하면 최선을 다해서 공유하겠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 못난 문장 어디가 개중 나으셨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러면 조금씩 나아질 것 같았거든요. 바쁜 하루 중에 저따위가 써놓은 똥글 읽으시는 단 몇 분의 시간도 낭비하시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활자매체 구독자 한 사람은 동영상 플랫폼의 구독자 백 명 이상의 무게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감각의 수용부터 다릅니다. 심드렁하니 눈과 귀만 열어도 저절로 들어오는 메시지와 내가 능동적으로 애써야 하는 그것은 등가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감성 차이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구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전 앞으로도 구독자 규모와 상관없이 제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익숙하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좋을,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길 너무나 간절히 원합니다. 삶은 유한하고 그 가운데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한 의미라도 애써 확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깊게 허리를 숙여 한 분 한 분 구독을 결심한 분들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여러분의 일상에 평안과 행복이 깃들길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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