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본가에 들러 딸아이를 데려간다. 낮 동안 모친이 돌봐주신다. 밥 먹고 씻겨서 등교시킨다. 학교 파하면 간식 얼른 먹여서 학원 보낸다. 하원하면 저녁 먹여놓고 퇴근하는 장남을 기다린다. 마르지 않는 샘 같은 희생이다. 죄송하고 고맙다. 걸음이 빨라진다.
본가 현관문을 열었더니 아이가 할머니 무릎을 베고 뒹굴고 있다. 옷 입어, 집에 가자, 가방 메고. 아이가 주섬주섬 제 물건을 챙긴다. 그러더니 엇, 내 인싸 안경?! 하며 이곳저곳을 들춘다. 그게 뭐냐고 물었다. ‘인싸 안경’이라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 선글라스인데 빛에 반사된 것 같은 무늬가 그려져 있단다. 인싸, 인사이더(insider)들이 쓰는 안경이라서 그렇게 부른단다. 거 참 별. 잘 찾아보라고 했다.
소파 쿠션 틈새, 거실 탁자 밑, 주방 식탁 위, 안방 침대 이불을 다 뒤졌는데도 안 나온다. 할머니가 거든다. 학원 책상에 놓고 온 것 아니냐, 아니면 집 오는 길에 토스트 가게에서 흘린 건 아니냐 묻는다. 그랬더니 아이가 짜증을 있는 대로 부린다. “아, 집에 올 때까지 여기 앞주머니에 있었다고! 할머니는 알지도 못하면서!!” 모친이 몇 마디 더 거드는데 쌀쌀맞은 대답만 돌아온다. 할아버지는 안타까워서 물끄러미 보고만 있다. 아이가 발을 쿵쿵 구르면서 방금 봤던 자리를 다시 들춘다. 골났다고 표 내는 거다. 얼굴엔 심술이 잔뜩 묻었다. 아빠 나가 있을 테니까 찾으면 밖으로 나와. 화가 치미는 걸 억지로 참는다.
문제의 인싸 선글라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안경은 끝내 못 찾았다. 평소 같으면 부녀가 사이좋게 손잡고 중간에 편의점도 들른다. 오늘은 멀찌감치 떨어져 걷는다. 뭐가 그렇게 기세 등등한지 저가 저만치 앞서 간다. 아내가 먼저 와있다. 아이 엄마가 대번에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다. 무슨 일 있었냐고 묻는다. 내가 짧게 설명한다. 제 물건 자기가 잘 챙겨야지, 저가 잃어버려 놓고선 할머니한테 짜증을 부리더라며 일렀바쳤다. 네가 잘못했네, 왜 할머니한테 성질을 내, 아내가 아이를 나무란다. 그랬더니 아이가 소리를 높이며 앞뒤도 안 맞는 변명을 한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씻는다. 안에서도 엄마한테 앵앵 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씻고 나와서 머리 말리는 중에도 아이가 툴툴거린다. 인내의 방둑이 무너진다. “너 아빠가 다 봤는데 뭘 잘했다고 그래! 네 물건 네가 잘 간수해야지 어디서 버릇없게 할머니한테 짜증을 내! 네 옷 주머니에 들어있던 걸 할머니가 어떻게 알아! 알았어도 할머니가 무슨 상관이셔! 어른들이 오냐오냐 잘해주니까 저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알고 말이야! 아주 제대로 혼꾸멍이 나 봐야 정신 차리지!” 아빠의 일갈에 아이가 즉시 반응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서도 할 말이 더 있다는 투다. “내가 언제 잘했대? 나도 잘 찾아보려고 그러던 건데. 흑흑.” 아내와 자초지종을 더 나누는 사이에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가서 문을 닫는다.
십여 분쯤 지났을까. 방문을 열어서 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아이를 나오게 했다. 소파 한쪽에 앉힌다. 너 네가 잘못한 거 진짜 뉘우치고 있느냐, 반성하고 있는 거냐 물었다. 아이 눈을 봤더니 아직도 원망이 그득하다.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뭘 더 해야 하는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다시 말했다. 잘못했다는 사람이 태도가 그게 뭐냐, 눈 치켜뜨는 건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냐 몰아세웠다. 너 하는 것 봐서 아빠가 풀어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까지 말하고 있는데 아내가 난입한다. 지금 애를 혼내는 거냐, 달래는 거냐. 아빠가 그러면 애가 더 헷갈리지 않겠느냐 제동을 건다. 아 놔, 상황이 꼬여버렸다. 난 또 아내에게 받아친다. 아빠가 아이 꾸중하고 있는데 엄마가 끼어들면 내가 뭐가 되느냐. 이러니까 애가 어른들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 아니냐 반문한다. 부부싸움이 될 것 같은지 아내도 그런 뜻은 아니라고 수습한다. 에잇, 아내 말마따나 혼내는 거고 달래는 거고 뒤죽박죽 돼버렸다. 아이는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쉭쉭 거린다. “너 다시 들어가서 반성하고 있어! 마음 정리되면 네가 나와!”
아이를 들여보내고 아내와 둘이 얘기한다. 엄마가 중간에 끼어들면 아빠의 권위가 뭐가 되느냐 물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재차 부인한다. 옆에서 보기에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그랬단다. 아빠도 너무 서툰 거 아니냐 나무란다. 아이를 한 번 꾸중했으면 가만히 생각하고 스스로 뉘우치게 둬야지 얼마나 지났다고 애를 다시 앞에 세우냐, 아빠는 혼냈으니까 감정 불편한 거 얼른 풀고 싶을지 몰라도 혼난 아이는 아직 준비가 안 됐을 수 있지 않느냐, 게다가 여자애 아니냐, 초등학교 5학년이어도 감정 다 느끼는 여자다, 남자인 아빠가 여자 아이에게 맞춰서 커뮤니케이션해야 하지 않느냐 말한다. 우쒸, 다 맞는 말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뼈 맞았다. 무지 아프다. 내가 생각해도 어설펐다. 이런 아마추어 아빠가 없다. 자존심은 세서 아내에게 또 한 마디 한다. 맞는 말인데 그러면 나를 다른 방으로 불러서 얘기하지 그랬느냐, 애 앞에서 그러면 또 혼란스러워할 것 아니냐 말했다. 아내가 금방 수긍한다. 그럴 걸 그랬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사과한다. 으잉? 이렇게 나오니 또 싸움은 안 되네, 다행이구만 싶다. 나도 아내에게 어설픔을 인정한다.
한참 있으려니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얌전히 걸어와서 소파에 앉는다. 내가 그 옆에 앉았다. 아이에게 생각이 정리됐느냐고 물었다. 아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묻는다. 자기가 잘못했고 이제 다시는 할머니한테 괜히 짜증 내지 않겠단다.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단다. 전화를 걸어서 스피커폰으로 켰다. 할머니 내가 아까 짜증 부려서 미안해, 하면서 다시 눈물을 뚝뚝 흘린다. 모친이 괜찮다며 우리 손녀 울음 그치란다. 너 울면 할머니 가슴이 미어진단다. 내가 같이 듣고 있는 걸 아는지 이제 그만 아이 달래주라고 하신다. 전화를 끊고 아이를 품에 안는다. 아이도 아까랑은 눈빛이 다르다. 아내도 아이를 안아준다. 엄마만 들리게 뭐라고 얘기한다. “아빠는 엄마처럼 나 혼내는 방법을 몰라.” 다 들렸다. 아우 저 쪼끄만 게.
아이 키우는 거 너무 어렵다. 딱 하나 기르는 데도 진이 빠진다. 둘서넛 다둥이 부모들은 진짜 대단하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아들 둘 키운 우리 엄마 아부지가 그렇다. 난 아직도 멀었다. 이거 이렇게 어설프고 서툴러서 아빠의 자격이 있을까 싶다. 티브이에 자주 나오는 아동 심리 전문가, 반려동물 훈련사의 인기가 괜한 것이 아니다. 그분들은 아이처럼 사고하고 반려동물 입장에서 유추한다. 잘못된 훈육은 대상을 더 엇나가게 만든다. 알고 보면 모두 부모와 주인 잘못이다. 돌이켜보니 아이는 몰라도 반려견 경험은 나도 있었다. 어릴 때 강아지를 길렀는데 배변을 못 가렸다. 오줌 자국 보고 혼을 내니까 배변 가릴 생각은 못하고 아무 데나 누고 나서 숨는 버릇이 생긴다. 유명 훈련사 얘기를 나중에 들으니 개가 잘못했을 때는 즉시 아주 짧게 꾸중해야 한단다. 시간이 지나면 왜 혼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주인에 대한 경계심만 커진다. 눈높이에 맞춰 사고해야 하는 게 핵심인데 그걸 몰랐다. 아이 문제가 되니 더 모르겠다. 나는 아마추어도 아니고 무자격 아빠다.
자기 전에 아이를 이불속으로 부른다. 팔베개를 해주고 누워서 스마트폰을 만진다. 아이에게 아빠가 인싸 안경 새로 사줄까 물었다. 응, 좋아, 멋쩍게 웃는다. 실은 갖고 있던 안경이 코가 부러졌었단다. 인터넷 쇼핑몰을 보니 판매하는 컬러가 다양하다. 아빠가 까만색이랑 핑크색도 사줄까. 끄덕끄덕. 저녁때 얼마나 울었는지 아직도 어깨가 들썩들썩하다. 호흡 중간에 컥 컥 소리가 섞인다. 아빠가 아까 심하게 혼내서 미안해. 대답 없이 품 안으로 파고든다. 이제 그만 자자. 잘 자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