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인사 안 받는 사람 넌덜머리 난다고 글 썼다. 이쪽에서 호의를 가지고 인사했는데 못 본 척 그냥 지나친다? 상당히 약 오르고 불쾌하다. 절대다수는 아니겠지만 살면서 다양한 공간에서 마주쳐 왔다. 학창 시절 선생님 중에 일부 있었고, 군대 간부도 있었다. 가장 흔한 건 회사다. 나이 지긋한 중역만 그런 줄 알았는데 점차로 연령대가 내려온다. 다음부턴 나도 ‘쌩’ 까거나, 혹여 책잡힐 것 같으면 가장 경제적인 동작으로 목례만 한다. 소심한 복수다.
인사 안 받아주는 것만 열 받는 게 아니다. 인사 안 하는 것도 은근 신경 쓰인다. 옆 팀에 인턴사원이 셋 있다. 이 친구들은 절대로 먼저 인사 안 한다. 여봐란 듯 내가 먼저 인사하면 그저 어쩔 줄 몰라한다. 아니 다른 공간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이 건물에서 너희들이 가장 막내 아니니? 모르는 사람이어도 사원증 걸고 있으면 인사부터 할 태세 갖추는 게 도리지. 게다가 너희 나 모르냐? 코로나 때문에 전체 회식 같은 건 없었대도 매달 ‘줌’으로 본부 워크숍은 하잖아.
매달 말 돌아오는 온라인 워크숍이 있다. 거기서 같은 팀 아니어도 본부원들끼리 인사 좀 잘합시다, 한 마디 하려다가 말았다. 그랬다가는 본부 최강의 ‘꼰대’로 등극할 것이 명약관화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줄로 알았는데 아니다. 나도 부지불식간에 꼰대가 돼간다. 내 안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꼰대력이 자란다. 아마도 주니어 시절부터 보고 들었던 수많은 사례가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꼰대라는 기생충은 내세울 것 없는 나이와 경력을 먹고 자란다.
가까운 후배가 자기 사촌 형 얘기를 공유했다. 형은 글로벌 전자회사 팀장이다. 나랑 비슷한 또래란다. 그 형 스타일이 좀 수더분하고 원체 꾸밀 줄 모른단다. 하루는 임원이 주재하는 팀장급 회의에 들어갔다. 임원이 다짜고짜 형에게 면박을 주더란다. 아무개 팀장은 아저씨마냥 왜 그러고 다니나. 머리도 좀 까맣게 염색하고 옷도 세련되게 못 입나. 누구는 편하게 하고 다닐 줄 몰라서 그런 것 같나. 이 방에 있는 사람들 둘러보고 뭐라도 느껴볼 순 없는 건가. 그러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변신 전까지 회의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더란다. 형이 그 꼴을 당하려니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사촌 동생에게 하소연했다.
얘기를 듣고 덩달아 나도 분노가 치밀었다. 뭐 그런 상사가 있냐. 아니 아무리 아랫사람이래도 어떻게 그런 식으로 창피를 주나. 자기는 뭐 대단하게 꾸미고 다니나 보지? 그런 사람 밑에서도 첨단 전자제품이 잘만 개발되겠구나. 나랑 엇비슷한 연배가 당했다니까 전자동으로 감정을 이입한다.
꼰대란 무엇인가. 배 나오고 머리 허연 아저씨만 꼰대가 아니다. 바로 저 전자회사 임원 같은 사람이 꼰대 중에 ‘상 꼰대’다. 월급 많이 받아서 머리 염색하고 몸에 꼭 맞는 맞춤 양복도 입으시겠지. 운동 열심히 해서 배도 홀쭉할지 모르겠다. 자기 관리에 소홀하지 않는 소위 ‘꽃중년’으로 보일 것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아재’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 결과로 짐작한다. 스스로 얼마나 뿌듯할까. 허나 당신은 틀렸다. 겉보기에 아재는 아닐지 몰라도 이미 뼛속 깊이 꼰대다.
꼰대는 외모나 용모가 아니라 사유와 사고다. 꼰대는 개인적 체험을 쉽게 일반화한다. 심지어 타인에게 강요한다. 자기가 쌓아온 시간을 전체의 역사로 간주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당연히 너희도 알아야 한다. 옳다고 믿는 것을 예외 없이 강제로 수용하게 만든다. 전자회사 임원, 당신은 염색하고 옷 잘 입는 당신만의 사고방식을 휘하의 팀장에게 강요했다. 그러므로 당신은 꼰대가 맞다. 여러 사람 앞에서 무안 줄 것이 아니라 따로 불러서 “이봐 아무개 팀장, 내가 해보니까 이렇게 하는 것도 회사생활에서 효과가 좋더라고. 힘들겠지만 한 번 도전해보는 것 어때?” 했더라면 참 좋았을 일이다. 아니지, 그런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타인의 외양을 그 정도로 의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은 껍데기 속에서 빛나는 진짜 가치를 본다.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다. “올드한 조직일수록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진짜 젊은 조직에는 스스로 올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백번 타당한 말이다. 난 젊어, 이래 봬도 격의 없는 소통왕이야, 라고 자평하는 순간 꼰대로 가는 첩경에 들어선 거다. 이미 꼰대 병에 감염된 환자다. 자각 증상이 없을 뿐이다. 반대로 내 감각은 이제 옛날 것이지, 요즘 사람들 아이디어만 하겠어, 하며 스스로 의심하는 이는 그래도 생각까지 늙어버린 건 아니다. 예방 주사를 잘 맞은 사람은 감염병으로 고생하지 않는다. 조심하면 잘 안 걸린다. 몇 달 전 대통령 후보를 뽑는 어느 정당 토론회가 떠오른다. 스스로 꼰대라고 생각하느냐는 사회자 질문에 어떤 정치인은 자신 있게 X자 팻말을 들었다. 그가 가장 꼰대처럼 보였다. 머뭇거리며 O자 표시를 하고 ‘꼰대지만 꼰대가 아니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자평한 정치인이 개중 꼰대에서 먼 사람처럼 보였다.
꼰대라고 지적하는 것 역시 꼰대 짓일 수 있다는 확장적 사유를 해본다. 개방적 사고를 강요하는 것도 결국 강요다. 열린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행동 양식 안으로 대상을 구속한다. 인사 안 하는 인턴사원들도 그런대로 두겠다. 얘들아, 나는 큰 불만 없다. 내가 인사받을 만한 사람이었으면 너희들이 어련히 그렇게 했겠지. 부족한 내 탓이다. 전자회사 임원 양반, 당신도 하던 대로 하세요. 외모로 지적질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당신 마음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것이죠. 근데 말이지, 이래도 되는 걸까. 꼰대가 되지 않기란 참말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