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사람, 그러나 결벽에 가깝지는 않은 사람을 알아보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 이런 사람은 우선 함께 일하기 좋다. 일처리가 매끄럽다. 시간 엄수는 기본이다. 결과물 완성의 마감 시한을 정하면 어지간해선 넘기는 법이 없다. 절차와 형식도 나무랄 데 없다. 그것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일정 수준의 요건을 충실히 갖춘다.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부류다. 때로는 개인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때도 있지만 내가 공연한 피해를 입는 것도, 그래서 남에게 해가 되는 것도 극도로 꺼린다. 다른 건 몰라도 협업의 관계에서 실보다 득이 많은 건 사실이다. 나만 잘하면 된다.
요상한 노하우 첫 번째. 벨크로, 흔히 ‘찍찍이’라고 불리는 옷이나 가방 따위의 부속을 본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두꺼운 오리털 패딩 점퍼 앞섬을 여미는 데에 이 벨크로가 달려있다. 벨크로에 먼지나 실, 머리카락이 엉켜있지 않은지 쓱 본다. 그런 것이 묻어 있으면 일단 외관상 좋지 않다. 지저분하다. 기능에도 문제가 생긴다. 벨크로의 정확한 결속을 방해한다. 찍찍이가 찍찍 붙었다 뗐다 하지 못한다. 패딩 점퍼 앞섬이 확실하게 여미어져 외풍을 차단하지 못하고 헤벌레 벌어진다. 분명 새 옷은 아닌데 벨크로가 깨끗하다? 이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니다. 애당초 옷을 더러운 곳에 막 던져두지 않는다. 고이 접어 포개거나 옷걸이에 잘 걸어둔다. 아니면 오물이 묻을 새라 아주 이따금이라도 떼어내고 단속한다. 자기 관리가 확실한 사람이다.
두 번째. 사무실 전화기 코드 줄을 본다. 무얼 말하는 것이냐. 탁상 전화기 본체와 수화기를 연결하는 꽈배기 모양의 전기선이다. 그게 단정한 모양 그대로인지, 아니면 두 번 세 번 거푸 꼬여서 뭉치지 않았는지 보는 거다. 배배 꼬이면 흡사 중학교 생물 수업 시간에 배운 허파꽈리 같은 모양새가 된다. 역시나 외관상 좋지 않다. 보지 않으면 안 보이지만 의식하기 시작하면 이것 또한 거슬린다. 기능에도 좋을 게 없다. 코드 선이 꼬이면 그만큼 길이가 짧아진다. 전화기 본체에 묶인 수화기의 자유도가 현격히 떨어진다. 편한 자세로 전화라도 받을라치면 본체가 막 따라온다. 문과생이라 잘은 모르지만 전류가 흐르는 케이블이 복잡하게 꼬이면 이른바 ‘간섭’이 생긴다고 알고 있다. 음질, 즉 통화 품질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한데 옆 팀 김 과장 코드 줄이 공장 출시 상태 그대로다? 둘 중에 하나다. 탁상 전화기 쓸 일이 없었거나, 매우 단정한 인사이거나. 전화 걸려오는 거 쓱 봤더니 능숙하게 업무 처리하고 반듯하게 수화기를 내려 논다. 어느 날은 꼬인 코드 줄을 풀고 있다면? 백퍼 깔끔쟁이다.
마지막 세 번째도 아낌없이 공개한다. 책상에 서류뭉치 쌓아둔 게 있는지 없는지 살핀다. 프린터로 출력한 인쇄물이 정신없이 흩어져 있다면? 최악이다. 데드라인 안에 매끄럽게 성과를 끌어내지 못할 확률이 높은 사람이다. 시한을 맞추려고 억지로 결과를 조합했을 가능성도 있다. 최소한 조리 있게 일하는 이는 아니다. 실력 있는 요리사는 조리 순서마다 주변을 정리한다고 들었다. 나는 방송사에서 벌이한다. 지금처럼 파일 기반의 '테이프리스 시스템(Tapeless system: 비디오테이프 없이 편집 제작하는 방송 체계)'이 아니라 비디오테이프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방송하던 시절 얘기를 해본다. 책상 위에 녹화나 편집용 테이프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PD가 있다. 높은 확률로 일 못하는 PD다. 후배 중에 책상 정리가 말끔한 PD가 있었다. 넌 어쩜 그렇게 책상 위가 깔끔하냐고 물었다. 언제든 다른 데로 튀려면 짐 많이 풀어놓으면 안 되잖아요, 선배. 기가 막힌 대답이다. 하긴 너처럼 일 잘하는 PD는 오라는 데도 많겠다. 예상외로 충성도 높은 후배는 지금도 다른 팀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무심결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얘기가 인상적이다. 미국 어느 대학이었나 연구소였나 거기서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분석했다. 절대다수가 아침에 일어나 침구류를 정리한단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 그런 얘기 들으면 나도 내일 아침부터라도 그렇게 해볼까 싶다. 그러다 애먼 데 힘 빼지 않기로 한다. 그거 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닐 테다. 말 그대로 성공한 사람들이 가진 여러 습관 중에 하나다. 될 사람이 된 거고, 그 사람이 그렇게 해온 것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가 덮었던 이불부터 잘 개는 사람이 다른 일 허투루 할 리가 없다. 요즘 말로 ‘될놈될, 안될안’인 것이다.
고백한다. 아니 자백한다. 앞서 말한 세 가지 선별 단계를 거뜬히 통과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결국 내 얘기다. 이제 좀 제발 잘 됐으면, 나도 성공의 먼발치에라도 근접해봤으면 하는 일종의 자기 암시다. 점퍼 찍찍이에 뭐 묻으면 고새를 못 참고 좀스럽게 떼어낸다. 전화기 코드 줄 꼬이는 거 보기 싫어서 틈나는 대로 풀고 있다. 책상 위 번잡한 거 싫어서 어지간한 건 다 서랍에 때려 넣는다. 서랍 속은 아비규환이다. 큰일을 도모하지 못하고 사소한 데 집착한다. 그런 사람이 나다. 사람이 좀 대승적으로 임해야지, 싶으면서도 잘 안 된다. 어디 나 같은 사람 또 없나, 있으면 서로 부둥켜안고 우리끼리 힘냅시다, 해보고 싶은 공감과 위로의 희구다.
회사 가까운 자리부터 눈여겨보기로 한다. 전화 코드 줄 안 꼬여 있는데 책상 위도 별 거 없이 단출한 사람 어디 없나? 허름한 외투 벗어놓은 것 봤더니 찍찍이에 먼지 터럭 하나 없이 깨끗하다면? 바로 당신이다. 내가 찾던 사람, 나와 같은 사람, 나를 이해해 줄 사람, 내 편! 찾기만 한다면 뭐든 쏜다. 밥, 술, 커피? 말씀만 하시라. 이 치명적인 깔끔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