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같이 먹던 후배가 물었다. “형, 그 얘기 들으셨어요?” 후배는 회사 동료이면서 모교 동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같은 분야 취업을 준비하던 ‘시험 준비반’ 출신이다. 학연, 지연이 구태하다지만 끌어당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짬짜미로 나쁜 짓만 안 하면 된다. 나와 후배는 그럴 깜냥도 못 된다. 후배 말하길,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에서 소란이 있었단다. 우리 회사 말고 다른 회사 젊은 직원이 엊그제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우리 학교 졸업생이던데 혹시 준비반 후배는 아닐는지 싶단다. 혹시 형이 알 만한 사람은 아니냐고 묻는다.
궁금한 건 못 참는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쪽 회사에 다니는 다른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케 받는다.
- 어, 형! 어쩐 일로 전화를 다..
- OO아, 너희 회사에서 엊그제 직원 하나 안 좋은 일 당했어? 혹시 우리 아는 사람이야?
- 아, 그거. 우리 학교 졸업생이고 들리는 말로는 우울증이 심했다고 하더라고.
- 나도 아는 친군가? 혹시 준비반 후배야?
- 응, 맞아. 우리보다 대여섯 학번 후배니까 형이 직접 본 적은 없을 걸. 나는 회사에서 오며 가며 이따금 봤어. 선배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언제 식사 한 번 같이 하고 싶습니다, 했었는데 이렇게 됐네. 학교 지도교수님들 나한테도 전화 오고 난리였어.
- 그렇구나. 안 됐네. 그 좋은 회사에서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런 결심을 했을까. 얼굴 모르는 후배지만 나도 마음이 많이 안 좋다. 그래, 너도 잘 추스르고 조만간 만나자.
타인의 절명을 막 전해 듣고 생의 원동력인 밥술을 마저 뜬다. 밥알이 한알 한알 따로 구른다. “맞대요?”라고 묻는 맞은편 후배에게 들은 대로 전했다. 후배도 좀 전 나와 똑같은 반응이다. 그 좋은 회사에서 어쩌다가. 아이고, 안 됐네요. 후배 말로는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직장내 괴롭힘이나 부당 인사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하는 댓글도 달린단다. 만에 하나 그게 사실이라면 고인에겐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몬 최악의 회사다. ‘그 좋은 회사’가 아니라. 일터에서 생긴 문제 때문이 아니라도 그렇다. 망자에게 좋은 직장이 다 무슨 소용인가.
얼마 전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가 큰 원인이 되어 세상을 등진 자동차 디자이너의 사연이 뉴스에 나왔다. 그 얘기로 친구들 단체 톡방도 잠시 들썩였다. 여러 말 끝에 친구 하나가 한 얘기가 머리에 박혔다. “You're not your job.” 직역하면 “너는 네 직업이 아니다.”다. 살을 붙이면 당신이 가진 직업이 곧 당신 자신은 아니라는 뜻이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라는 사람 자체를 대변하지 못한다. 입장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도 있다. 네가 남들이 우러러보는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자만하지 마라. 아니면 비록 지금 네가 하는 일이 너에게 마뜩잖더라도 좌절하지 마라. 일은 일일뿐 일이 곧 너일 수는 없다.
인간에게 직업이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현실을 보자. 하루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보낸다. 심지어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온다는 이들도 있다. 하루 세 번 먹는 밥도 적어도 한두 번은 일터에서 먹는다. 말을 주고받으며 감정을 나누는 대상도 상당수 직장에 있다. 일이란, 직업이란 분명 우리 삶에서 적지 않은 무게를 가진다. 일해야 벌고 벌어야 먹고 산다. 우리나라 제도권 교육의 커리큘럼은 또 얼마나 충실한가. 나는 국민학교 ‘도덕’ 과목, 중고등학교 ‘국민윤리’ 수업에서 직업은 인간의 자아 실현을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된다, 라고 배웠다. 그러면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도 가르친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그것에 새삼스럽게 반대한다. 직업은 직업일 뿐이다. 그것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다. 내가 곧 내 직업이라는 등식은 위태하다. 일터에서 일어난 균열이 삶 전체를 흔들게 두지 말자. 일은 인생의 충분조건이어야지 필요조건이면 안 된다. 너무 오래전에 배운 거라 기억 안 나신다고? ‘벤다이어그램’이라고 동그라미를 그려서 설명하는 게 있었다. 먼저 직업이라고 이름 붙인 작은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것 둘레에 삶이라는 제목의 큰 동그라미를 두른다. 그러면 직업이라는 동그라미를 지워도 인생의 영역이 여전히 남는다. 절대로 반대로 그리면 안 된다. 일 말고도 삶의 의미,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
일이 삶의 충분조건이길 원하는 이들에게 취미의 발견을 강력 추천한다. 취미를 가지시라. 어디 딴 데 마음 둘 수 있는 구석을 찾으라는 말이다.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어도 좋다. 남들이 들었을 때 감탄할 만한 어떤 것일 필요가 전혀 없다. 꼭 돈 많이 드는 것만 취미가 아니다. 시간은 제법 써야 할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떠한가. 그것에 몰두하는 동안 마음이 신비한 자정 작용을 거친다. 옛날 자기소개서에 써넣기 차마 낯부끄러웠던 독서, 음악 감상도 얼마나 훌륭한 취미 생활인가. 어쩌면 당신은 오렌지 빛으로 번지는 저녁노을 보면서 공원 벤치에 앉아 ‘멍 때리는’ 걸 좋아할지 모른다. 그것 역시 탁월한 취미 활동이다. 제발 일 말고 다른 좋아하는 것을 찾으시라. 어렸을 때, 지금보다 젊을 때, 이렇게 삶이 복잡해지지 않았을 때 내가 좋아하던 것. 그것들 중에 당신에게 맞춤한 답이 분명 있다.
나는 취미 부자다. 삶이 여유로워서 그러한 게 결단코 아니다. 살려고 버둥거린 결과다. 마음이 약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진통제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통기타를 치고, 만화방엘 가고, 영화를 닥치는 대로 본다. ‘혼코노’라고 아시는지. 혼자서 코인 노래방 가는 것에도 맛이 들렸다. 몇 해 전엔 캠핑족 대열에도 합류했다. 아내와 딸, 세 식구 함께 다니며 다시 못 올 시간을 추억으로 쌓는다. 중학교 때 부모님이 처음 사주셨던 추억 때문에 수십 켤레 농구화를 모은다. 이건 좀 돈이 들지만 형편 안에서 유지한다. 술자리 몇 번 줄이는 것으로 가능하다. 회사에서 잘 나가고 승진 빠르지 않으면 어떠냐. 억대 연봉 아니래도 먹고살 만큼만 벌면 된다. 잘리지 않을 만큼 성실하려고 노력한다.
영원한 마왕, 가수 신해철을 생각한다. 그가 깊은 밤 진행하던 라디오에서 나지막이 꺼낸 얘기였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태어나는 거였고 우린 그 목적을 다 이루었다. 지금은 보너스 게임을 사는 거다. 결국 사는 건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게임이다.” 직업이 인생에 있어 무시 못 할 요소인 건 맞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비참하다. 보너스 게임은 유쾌하다. 무엇을 이루든 말 그대로 여유로 주어진 것이다. 일이 우리 삶을 짓누르게 두지 말자. 유 아 낫 유어 잡. 당신은 ‘직업’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