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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Jun 16. 2016

처음으로 야근이 괜찮았던 날

며칠 전 우리 부서는 대표 이사님으로부터 업무지시를 하나 받았다.

 

소비자 트렌드에 대한 동향을 보고하시오


막연하고 광범위한 주제였다. 대표 이사님께 의중이나 방향을 물어보면 좋겠지만, 자유롭게 질문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부장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구성원들은 모두 40대 중후반. 트렌드에 대해 관심이 있을 리 없다. 자연스럽게 젊은 나에게 시선이 집중됨을 느꼈다. 고민을 했다. 입을 열까? 말까?


회의시간에 의견을 잘 내지 않았다. 다소 보수적인 분위기상 떠드는 것보다 묵묵히 시키는 것을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조용히 있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왠지 이 업무는 재밌을 것 같았다. 새로운 업무라 신선하고, 관심 있는 분야라 자신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아이디어를 툭 뱉었다. 선배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표정이고, 부장님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모시고 있는 상사(부장님)는 부하직원의 말을 경청한다. 게다가 합리적인 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거 좋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 그거지, 더 이야기해봐


부장님의 추임새에 신이 나서 1시간을 혼자 떠들고 있었다.  


"오케이. 회의 끝. 다 나왔네. 어떻게 나눠서 작성할래?"


'뭘 어떻게 나눠? 나 혼자만 떠들었는데'

제가 작성하겠습니다.


아차 싶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덕분에 며칠간 야근을 해야 했다. 야근시킨 사람도 없고, 보고서를 쓰는 동안 태클을 거는 사람도 없었다. 진행사항을 보고 드리면 '그런 게 있구나'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혼자 사무실에서 야근을 했지만 힘들거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쾌감이 느껴졌다. 




꽤 열심히 했다. 하루 4~5시간씩 꼬박 4일을 작성했으니 20시간정도 투자한 셈이다. 최종보고를 앞두고,  부장님께 검토를 부탁드렸다. 깐깐하신데, 의외로 몇가지만 수정하고 제출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고생했어. 오늘 일찍 퇴근하고, 낼 아침에 출근하면 마무리해


그랬으면 좋겠지만, 내일은 연차를 쓴 날이었다. 어쩔 수 없이 또 야근을 했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 전력투구한 11장짜리 보고서. 기분이 홀가분했다.


입사 후 단독으로 작성한 보고서 중에 이렇게 공을 들인 것은 처음이었다. 대표님, 부장님 마음에 차지는 않겠지만 자발적으로 재밌게 일했다는 것에 스스로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번 일을 통해서 느낀 점이 있다.


1.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면 힘들지도 않고 성취감이 있다.

2. 부장님처럼 일을 잘 시켜야겠다.


야근에 대해 무조건적인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의 상사 밑에서 지금 같은 업무라면 야근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대표 이사님께 '매우 좋습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오늘 부장님께 칭찬을 받았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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