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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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 집은 늘 넉넉하지 못했다. 그래서 모친은 당신의 입이 닳도록 아들에게 늘 절약을 강조했다. 우리 집에서 절약은 미덕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는 항상 절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은 여전했다.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성인이 되어 나는 내가 믿던 미덕을 버렸다.
욕망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려 애쓰고, 소유한 것에 집착했다.
조금 더 갖기 위해 거짓을 팔았고,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깨닫지 못한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속여 잔고를 늘려갔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내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나는 내 안에 모순이 쌓여가는 것을 방관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쌓여가는 돈과 반비례로 나의 마음은 점점 더 가난해졌고, 궁핍해졌고,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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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만난 제주는 아주 작은 것에도 거짓이 없고, 화려한 것에도 속임수가 없었다. 가짜가 없는 자연, 그리고 그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사람들에게서 진짜로 사는 법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하루는 작고 소중한 것들로 만 삶을 채우고 사는 친구의 집에 초대받았다. 그의 서재에는 단 한 권의 책만이 꽂혀 있었는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자연철학 고전 <월든>과 나는 그렇게 만났다. 나와 비슷한 20대의 나이에 비슷한 고민을 안고 비슷한 환경으로 들어가 자연을 탐구하고 기록한 100년 전의 책이 오늘날의 나에게 보여준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그중 내 삶의 변곡점이 되었을 만큼 큰 감동을 준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나비의 일대기에 관한 관찰이다.
애벌레로 태어나 남의 농작물에 해를 끼치면서 까지 오로지 제 몸집 키우는 데만 혈안인 이 연약한 사냥꾼은 돈오의 시기를 거치며 비로소 완전한 나비가 된다. 완전한 존재는 더 이상 무언가를 지나치게 취할 필요가 없으므로, 가지고 있던 소화기관은 점점 쪼그라들어 퇴화한다.
오늘도 나비는 꽃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삶의 유일한 목적만 품고 가뿐해진 몸을 공중에 팔랑 띄워 들판을 둥둥둥 춤추듯 날아다닌다.
수억 년 동안 반복되어왔기에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성숙함에 이르는 진리를 가리켜 소로우는
<모든 인간의 삶은 사냥꾼으로 태어나 시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건 사고를 마주하게 된다.
이로 인해 타인의 가슴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내기도, 때로는 너무 아프다 소리치는 내 안의 성난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리고 인생의 전환기, 깨달음의 시기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마침내 명료한 하나의 문장으로 그 시간을 다독일 수 있을 때, 우리는 껍데기를 벗고 온전히 성숙해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채우려고 애쓰는 욕심은 퇴화하고, 나와 연결된 이 세상 모든 뿌리내리려 애쓰는 욕망들에게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
난 가끔 그런 생각해
작사 작곡_ 제주갑부훈
자전거를 처음 타는 아이의 작은 무릎에 새겨진
상처가 데려갈 세상은 경이롭지 않은가
난 가끔 그런 생각해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그렇게 아팠나 보다
붓을 든 늙은 사냥꾼의 시처럼 아름답게 들리네
바다 한가운데 뿌리내린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그 어떤 화원의 꽃보다 간절히 열매 맺지 않았나
난 가끔 그런 생각해
이 길 위에 서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나 보다
어제 보다 가벼운 오늘의 무게를 지고 다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