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주갑부훈 Sep 06. 2021

그렇다고 패션디자이너가 될줄은 나도 몰랐지

내가 제주도에 버린 것들

-

버마난민음악학교를 다닌 지 6년,

줄곧 관찰해오며 느끼는 난민촌의 분위기는 양육과 교육 이 두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이곳에서 사치로 여겨진다. 대부분 난민학교의 커리큘럼에 예술교육이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이들이 사람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예술교육을 통해 공감능력을 키우고, 뿌리내리지 못해 불안한 정서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결국 돈이다. 그 험한 곳에서도 여전히 아이들은 태어나고, 제대로 된 의료 보건 시설 없이 자라나고 있으니, 교육은 그들의 처지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면, 양육은 그들에게 있어서 죽고 사는 생존의 문제다. 살아야 희망도 있는 것 아닌가.

 

내가 발 디디고 근거해 사는 지구별을 가장 오랫동안 정답으로 살아온 위인, 소라게.


그의 가르침 덕분에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괴롭힘 당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만큼> 해내며 차곡차곡 살아간다.

버마난민음악학교와 인연을 맺고 그간 내 집게발은 또 얼마나 커졌을까?


밤이 깊어서야 메쏫 난민촌 캠프를 벗어나 치앙마이 숙소에 도착했다. 해마다 버마난민음악학교를 마치고 이곳에서 보름 정도 지친 몸을 회복한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노푸(no shampoo)족인 나는 오랜만에 유기농 샴푸로 머리를 감고, 뜨거운 볕 아래서 수영을 즐기다 근처 노점에서 주문한 망고주스 한잔을 텀블러에 받아 마시며, 모처럼만의 달달하고 시원함을 만끽하며 오늘에 둥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첫해에는 이 행복한 시간이 괴로웠다. 같은 하늘 아래 국경이라는 선을 두고 아이들과 나는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돼?> <나만 이렇게 풍족해도 돼?> 하지만, 생각은 성숙해져,


<내가 좋아하는 망고주스를 아이들도 마음껏 마시게 해주고 싶어>

<하루 세끼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메홍쏜 맛집, 제임스네 쌀국수를 아이들도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기뻐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밥맛이 더 좋아졌다.


<내년에는 좀 더 많은 장학금을 마련해야겠다> 다짐하며 나는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만큼 괴로움 없이 찾아 나섰다.

 


-

어릴 적 난 있을 건 다 있고, 없는 건 없는 재래시장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 형편으로 소풍, 명절 같은 특별한 행사가 다가오면 백화점이 아닌, 시장 구제 숍에서 일본산 구제 옷 쇼핑을 했다. 그때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유행복을 입을 때, 나는 세관 방역 소독 냄새가 지독한 옷을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겨울이 다가와 교복 위에 입을 떡볶이 더플코트를 사러 구제 숍을 갔다. 주인아주머니가 이번에 러시아 짝(물건)이 들어왔다며 나를 반겼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겨울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옷들은 하나같이 커서 내게 맞는 것을 찾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몇 번을 입고 벗고를 반복하다 무더기 속에서 코트 하나를 발견했다. 배꼽 아래 단추가 반으로 또각 부서져 있다는 것 빼고는 내게 딱 맞는 기장과, 충분히 도톰한 안감도 좋았다. 뿐만 아니라 짙은 네이비 색감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단추가 하나 깨졌다는 이유로 꽤 좋은 더플코트를 5천 원에 사서 집에 왔다. 그리고 섬유유연제를 잔뜩 넣어 세탁기에 돌렸다.


다음날 아침 나는 기분 좋게 눈을 떴다. 나는 학교에서 나름 트렌드세터로 통했다. 그래서 새 옷을 입고 학교에 갔을 때 아이들에게 주목받을 생각에 긴 한 주의 시작 월요일임에도 학교 가는 것이 설렜다.

아침밥을 가볍게 차려먹고, 이제는 소독 냄새보다 섬유유연제 향이 더 지독해진 코트를 건조대에서 걷어입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눈썰미 좋은 친구 한 놈이 <오, 코트 샀데이> 운을 띄우자, 아이들은 몰려들어 유심히 옷 구경을 했다.


<이거 이번에 러시아에서 들어온기다. 어대 봐라, 내 유러피안 긋제> 하며 으쓱하던 때, 내 등 요추 3-4번 구간에 뭔가 콕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뒤 돌아보니 한 친구가 말했다.


<야, 이 뭐고, 여 코트 뒤에 구멍 하나 뚫맀네>


진짜였다. 짙은 네이비 색이라 실내 형광등에서는 안보이던 것이 코트를 벗어 파란 하늘 위로 쫙 펼쳐보니 정말 검지 손가락 정도 굵기의 구멍으로 한 줄기 빛이 통과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구멍은 공교롭게도 부서진 단추와 나란히 뚫려 있었다.

 

러시아, 마피아. 구멍, 나란히.

 

방과 후 구제 숍을 다시 찾았다. 내 옷을 발견한 옷더미에는 손가락 크기만 한 구멍이 앞뒤로 나란히 관통한 옷들이 여럿 있었다. 개중 색이 밝은 옷 주변에 뭔가가 급작스럽게 안에서 밖으로 흥건히 넘쳐흘러 생긴듯한 모양의 얼룩이 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머리 끝이 삐쭉 서더니, 온몸으로 닭살이 돋아 한참 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명량한 러시아 친구, 애나스테이시아를 사귀기고 러시아와 오해를 풀기 전까지 내게 러시아는 마피아와 관통한 더플코트 두 가지 오싹한 키워드로 기억되었다.

지금은 웃으며 회상하는 이런 오싹한 경험도 있었지만, 그 덕분에 정형화되지 않은 패션 감각과, 다양한 색감을 공부할 수 있었다. 두드러지게 외모에 신경 쓰기 시작한 때부터는 언젠가 나만의 의류 브랜드를 만들어 보겠노라 장래희망 칸에 적어내기도 했다.

 


-

제주에 들어와 노래하기 시작하며, 한 번은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담당 PD가 말했다.


<훈이씌는 제주도 자유 영혼이 컨셉이니까, 제주스러운 복장으로 와주세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피디님, 제주스러운 복장은 어떤 게 제주스러운 거죠?>

명료한 답을 내지 못하고 우리는 대화를 주고받다가, 결국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나갔다.

 


-

키가 큰 야자수 두 그루가 만들어 놓은 그늘 아래서 옛 생각에 잠겨 기분 좋게 둥둥둥 떠다니다, <내년 장학금은 내가 직접 디자인한 옷을 팔아서 마련해보면 어떨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에 닿았다.


그리고 생각은 <오래전부터 상상해오던 나만의 의류 브랜드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때? 그래, 제주스러운 의복을 만들어 보자!>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제주스러운 의복이란 뭘까?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제주의 모습 그대로, 내가 해석하는 옷의 효율성 그대로 옷을 만드는 것이다. 싱그러운 웃음을 닮은 귤, 지친 몸밖에 없었던 나의 입도를 조건 없이 반겨주었던 그날의 푸른 하늘, 바람에 맞서지 않고 흘려보내는 유연한 돌담, 도시락 싸들고 소풍 오라 손짓하는 볕 잔뜩 머금은 금잔디. 아무도 듣지도 보지도 않고, 내 마음껏 춤추고 노래할 수 있도록 오로지 나만 비밀스럽게 초대해준 광활한 들판. 그리고 그 순간을 빛내준 별과 달. 이 풍경을 닮은 옷을 만들어야지.

 






**

이보쇼제주갑부는 제주에 버려진 쓰레기로 아트상품을 제작 판매하는 업싸이클링 브랜드이며 창업자의 이름을 건 휴먼브랜드이다. 이보쇼제주갑부는 이보쇼와 슮, 제주갑부 세 명의 업싸이클링 디자이너가 업싸이클링 액세서리를 제작 판매하고 수익으로 제주지역 소아암 환아를 후원하는 펀드레이징 브랜드를 시작으로, 2018년 의류라인을 추가해 버마난민음악학교의 장학금을 마련하고 있다.


**

버마난민음악학교(현 대한민국 외교부 산하 사단법인 사람예술학교)는 기획자 제임스와 국내 연출, 기획, 예술가들로 구성된 단체이며, 2013년부터 지금까지 미얀마(버마의 현재 이름)와 태국 국경에 위치한 메쏫(maesot) 난민촌에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예술교육과 장학금을 지원해오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사냥꾼과 시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